남의 이야기일 때는 한낱 우스개다. 하지만 당사자라면 결코 쉽지 않은 일. 결혼을 앞둔 청춘남녀들의 마지막(?) 관문, 궁합 이야기다. 요즘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일테면 부모님은 역술가의 말을 신탁(神託)인양 맹신하고, 당사자는 지금이 어느 시댄데 그딴 것에 목을 맨단 말입니까, 하는 경우 말이다. 이런 때 갈등 조정은 정말 어렵다. 이제껏 여러 사람 보았다. 훼방꾼 궁합 때문에 꿩도 매도 다 놓치고, 인생의 황금기를 눈물로 지새우는 경우 말이다. 얼마 전 이웃에서 들은 두 편의 이야기가 있다.

#1. 미정(가명) 양은 초등학교 여선생이다. 당시 29세, 키가 보통보다 약간 작은 편이지만 귀여운 인상이다. 미정이 소개팅으로 청년 강석(가명) 군을 만났다. 나이는 미정보다 세 살 많고, 키는 보통 이상이고 성격은 화끈한 편이었다. 건설 현장에 근무하는 기술자라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긴가민가했지만 서로 자석 같이 끌렸대나 뭐래나....... 둘은 계속 만났고 새록새록 정이 들기 6개월쯤, 드디어 강석 군이 청혼을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미정의 어머니가 궁합을 주장했다. 강석 군은 ‘요즘 세상에 궁합이 무슨 소리?’냐 하고 펄쩍 뛰었지만 허사였다. 미정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강석도 투항하듯 자신의 사주를 고백했단다.

미정의 어머니가 둘의 사주를 들고 냅다 달려간 곳, 00철학관! 결과는 끔찍했다.

‘두 사람은 물과 불이오! 당장 헤어지는 게 좋겠소! 만약 억지 결혼을 하게 되면, 둘 중 한 사람은 급사할 것이오!’ 미정은 아연실색이었다. 그날 이후 모래알 밥을 씹으며 염불처럼 중얼거렸다. ‘이 일을 어째, 이 일을 어째’ 하고, 며칠 동안 불면의 밤을 지새운 뒤, 마침내 강석을 만났고, 심호흡을 한 뒤 털어났다. 그러자 뜻밖에도 강석은 빙글거리며 말했다.

‘내 그럴 줄 알고 대충 엉터리 사주를 대주었지. 솔직히 말해 내 사주를 잘 모르기도 하고, 또 그때는 어머니가 몸이 편찮으셔서 경황이 없던 때라......’ 하면서 껄껄 웃는 게 아닌가.

미정은 덥석 강석을 껴안고 뽀뽀를 했다. 순간 강석도 황당했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미정은 며칠 뒤에 강석이 다시 불러 준 사주를 어머니께 말했다. 이번 결과는 천생연분이라고 나왔다. 얼마 후 그들은 결혼에 골인했고, 5년이 지난 지금은 아들딸 놓고 잘 살고 있다. 미정과 강석, 당시에는 둘만의 비밀이었지만 두 번째 사주도 역시 가짜였다는 사실!

#2. 민정(가명)은 00병원 원무과에 다니는 아가씨다. 그의 애인 동호는 동갑내기로 물류회사의 직원이다. 소개팅으로 만나 1년여를 사귀었다. 민정의 모친도 사윗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단다. 예의바르지, 직장 확실하지, 무엇보다도 자기 딸을 끔찍이 아끼는 태도라니! 아직 결혼 날짜도 받지 않았는데도 친구들에게 사윗감 자랑이 늘어졌을 정도니........닭살커플! 민정의 모친의 평소 소신에도 딱 들어맞았다고 한다.

‘결혼 전에는 총각이 엎어져야지, 처녀가 울며불며 매달리는 식이면 절대 안돼!’

상견례를 앞두고 궁합을 봤다. 이 경우 역시 결과는 끔찍했다. ‘둘이 결혼을 하면 한쪽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운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민정 어머니의 태도가 돌변했다.

‘안 좋다는데 뭣 하러 억지 결혼을 해? 니는 아직 나이도 있으니 괜찮아! 이 에미 말대로 당장 헤어져!’ 민정은 울면서 포기해야만 했다. 동호 역시 자존심 센 부모에게 등 떠밀려 떠나갔다. 죽고 못 살 것 같았는데도 그걸로 끝이었다. 그 뒤 풍문으로 동호는 새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고 들었다. 민정은 여전히 혼자이다. 벌써 3년이 다지나가는데도.......

박하 시인

한편 조선조 궁궐에도 점술가가 있었다. 소격서·관상감 등에 어엿한 공무원 신분으로! 점술가는 선왕의 묘자리 지정에서부터 세자빈의 간택, 심지어는 기우제 날짜까지 시시콜콜 조언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왕들은 하나 같이 제 명에 못 돌아갔을까? 일례로 구한말 고종과 명성황후는 진령군이라는 무당을 수석비서로 부렸다. 그 결과가 어떠했던가? 뮤지컬 ‘명성황후’만 보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허투로 하는 말이 아니다. 왕조실록에도 있고 매천야록(황현)에도 속속들이 실려 있는 이야기다.

확실한 것은 자신의 의지다! 인생 최대의 선택이자 축제, 결혼을 앞두고서 특히 남자 쪽이 강단이 있어야 한다. 피 끓는 청춘의 사내대장부가 공갈협박 같은 말에 휘둘리다 보면, 인생행로가 뻔할 뻔자다. 평생 꼭두각시 신세!(확률 상으로!)

여자라고 뒷짐만 서도 안 된다. 될성부른 총각이라면, ‘과속스캔들’을 불사하고 붙잡을 것!(인생 바쁘게 살다보면 순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잖은가?) 기왕이면 평강공주처럼 멀리 내다보고 키워(!) 볼 수도 있잖은가. 세상 천지에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 다만 자기 의지로 밀고 나갈 때 후회는 가장 적게 남을 뿐이다.

글/박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