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는 통고무신을 신었다. 시커먼 색깔에도 만능 장난감이었다. 모래사장에서는 기차로 냇가에서는 송사리나 미꾸라지를 담는 어항으로도 변신했다.

박하시인

지금 같으면 트랜스포머(합체로봇)이다. 1960년대에는 고무신이 국민신발이라 할 만큼 보편적인 신발이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중학교에 들어가자 운동화를 신었고,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 1970년대 초반, 운동화는 이미 고무신을 밀어내고 국민신발에 등극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조선조 조상님들은 무얼 신었을까? 수천 년을 내려온 짚신이다. 대다수 백성들은 짚신을 신었고 어림잡아 상위 15%는 가죽신을 신었다. 그림 속 나그네를 보라. 등에 진 걸망 아래로 짚신 몇 켤레가 달랑거리지 않던가.

짚신을 신고 길을 간다면 한 시간에 십리(4km)쯤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고무신을 신고 간다면? 약 6km 정도는 될 것이다. 고무신은 짚신에 비길 바가 아니다. 바닥이 잘 닳기를 하나, 쉬이 벗겨지기를 하나, 물에 씻기는 또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운동화 시대가 도래 했다. 운동화는 끈을 조이는 한 벗겨질 염려가 없다. 또한 색깔은 얼마나 찬란한가. 기분까지 개운하다. 아마도 한 시간에 10km 넘게도 너끈히 갈 것이다. 이처럼 신발은 개인의 보행속도를 결정한다. 보행속도는 곧 개인의 활동량에 비례하고, 이는 곧 경제활동 속도로 귀결된다. 따라서 그 시대 국민의 대표 신발이 곧 그 시대의 경제속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 중반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운동화 수출국이었다. 우리 국민이 운동화의 속도로 달렸다고 할 수 있다. 80~90년대,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60km, 자동차의 속도로 변했다. (물론 70년대부터 꾸준히 건설한 고속도로의 덕을 보았다.) 빨라진 속도는 곧 우리보다 느린 나라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 덕에 우리는 한 많은 보릿고개를 단숨에 넘어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 그 성취가 세계 11위권의 무역대국이다.

한편 로마제국은 A.D 1세기가 전성기였다. 그들은 그때 벌써 가죽신을 신었다. 로마제국에 의한 세계평화, 팍스로마나(Pax Romana)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 거미줄 같은 도로망이 깔려있었다는 말이다. 그 위로 병사들을 태운 전차(戰車)나 우편마차도 시속 20~30km로 달렸다. 당시 로마인의 평균속도가 세계 최고로써 세계 제패를 했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다. 그들도 가죽신을 신었다. 항시 말을 타고 쏜살 같이 기습작전을 감행했다. 그 속도로 중세유럽을 무찔렀다. 팍스 몽골리아(Pax Mongolia) 역시 속도로써 세계 제패를 했던 것. 이처럼 고대의 제국들은 그 기동성으로 세상을 제패했다.

요즘은 어떤가? 여전히 속도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프랑스가 선진국이 된 이유는 패션이나 예술 때문만이 아니다. 초고속열차 ‘테제베(TGV)’ 때문이다. 독일 역시 아우토반(autobahn)과 초고속열차 이체(ICE)가 있다. 미국 역시 미 대륙을 바둑판처럼 누비는 아이젠하워 고속도로가 있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나무의 뿌리 같은 인프라를 잘 보지 못할 뿐이다.

이제 선진국들은 개인의 보행속도보다 인프라의 수준에 따라 국가간 승패가 갈린다. 2013년 현재,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OECD 회원국 중에서 도로율 꼴찌에 있다. 도로보급률 지표는 국토면적과 인구 모두를 고려한 지수(도로스톡)로도 34개국 중 29위라고 한다. 그러고도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을 유지하는 게 기적 같다. 그 이유가 뭘까? 인프라가 부족한 부분을 국민 평균 보행속도로써 만회하는 건 아닐까.(선진국 국민들은 우리에 비해 대체로 뚱뚱보니까 보행속도가 한참 느리다.)

어느 스님의 책 제목처럼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 분명 있다. 평소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금과옥조다. 하지만 평소 느린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오히려 뒷걸음을 치도록 권유하는 꼴이 될까 우려된다. 느림도 미덕이지만 속도 역시 미덕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몸이 느려야 시간도 느리게 가는 줄 안다. 미안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옛 성현들도 ‘촌음(寸陰)’을 아끼라고 했다. 또한 20세기 위대한 과학자도 이를 증명했다. ‘속도를 높일수록 시간은 느리게 간다!’ 아인슈타인(1879~1955)의 상대성이론이다.

젊은 그대여, 느림의 과일보다는 속도의 과일이 훨씬 더 향기롭다. 우리나라 역시 부족한 인프라 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 모름지기 달려야 더 잘 보이고, 시간도 느리게 가는 법이다.

글/박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