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의 한 마리 토끼가 고민 중이다. 산중에서 제일 약한 놈은 자기뿐이라고. 힘세고 성질 고약한 놈들이 제일 부럽다. 산중호걸 호랑이, 억센 발톱의 곰, 박치기 왕 산돼지, 난폭한 살쾡이 등등. 맹수는 아니지만 동작이 재바른 놈들도 부럽기는 마찬가지. 신출귀몰 여우, 쏜살같은 족제비, 땅속을 헤집는 두더지까지.......

- 박하 시인

토끼는 날로 우울해진다. 밤잠을 설치느라 양쪽 눈알도 발개진다. 늘 푸성귀로 연명하는 인생, 아니 토생!, 이마저 마음 편할 때가 없다. 한순간에 힘센 놈이 덮치지 않을까, 사냥꾼의 표적이 되지나 않을까, 투두둑!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에도 간이 떨어질 지경이다. 자나 깨나 눈치만 보는 삶, 아! 이다지도 비굴한 삶이여!

지지리 궁상으로 살 바엔 차라리 죽자! 마침내 토끼는 비장한 결론을 내린다. 연못에 빠져죽기로 작정하고, 살금살금 계곡을 내려와 연못가로 다가갔다. 바로 그때, 갑자기 장대비 쏟아지듯 첨벙첨벙 물소리가 난다. 토끼는 간이 콩알만 해져 납작 엎드린다. 자세히 보니 개구리 떼, 토생원의 발소리에 놀라 혼비백산 연못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아하! 이 숲 속에 나를 무서워하는 놈들도 있군! 푸 하하하!

토끼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다시 살아보기로.

이처럼 세상은 층층시하(層層侍下)다. 소위 먹이사슬이지만, 강한 놈만 살고 약한 놈이라 다 죽어라 는 법은 없다. 사람 사는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각설하고, 지난 번 우유대리점 파동 이후, ‘갑을’ 사이 갈등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사람들은 관행적으로 계약 주체를 갑(甲), 계약 상대자를 을(乙)로 구분한다. 갑을 사이는 분명 신의성실에 의한 평등 관계이다. 하지만 어디 그렇던가? 갑은 언제나 우월하고, 일감을 받는 을은 갑에 종속되기 십상이다.

한편 필자가 몸담고 있는 건설 분야 역시 비슷하다. 오래 전에 건설현장에서 들었던 우스개가 생각난다. 소위 을의 자세로, 을이 준수해야할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갑이 시키는 대로 한다. 둘째, 갑이 주는 대로 받는다. 셋째, 언제나 술도 사야한다.

옛날에 비해 많이 맑아졌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한 것도 같다. 그 이유가 뭘까?

첫째, 갑은 갑질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오래 겪어 봐서 아는데,’ 대체로 한번 갑은 영원한 갑이고, 한번 을은 영원한 을이다. 소위 대기업과 영세상인, 발주기관(정부기관)과 용역업체, 제조업체와 하청업체 식이다. 세월이 가도 크게 변하지 않는 구도이다. 따라서 갑은 을에 비해 ‘갑질의 노하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을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갑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속으로는 ‘노(NO)!'하면서도, 후환이 두려워 마지못해 ’YES!'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 밀리면 두 번 밀리고, 두 번 밀리면 세 번 밀리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을의 자세’가 몸에 배이게 된다. 과연 그 종착역은 어디일까? 다음의 비유가 제격일 것 같다.

‘달떡 만들어 줄 테니, 한입만!, 별떡 만들어 줄 테니 한입! 꿀떡 만들어 줄 테니 한입!’

갑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그래, 누가 옳은지 한번 따져보자!’하고 소송도 불사하는 배짱이 필요하다. 그런 뜻에서 지난 번 우유대리점 점주의 고발은 분명 용기 있는 행동이다. 알고 보면,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제대로 따져서 제몫을 챙기 자가 살아남는다.

우리 속담에 ‘가재가 바위가 깔려 죽는 것 봤느냐?’라는 말이 있다. 가재가 바위 아래 빌붙어 산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위풍당당한 가재의 풍채를 보시라!

‘건드리기만 해봐라! 단번에 요절을 내버릴 거야!’ 하는 집게발의 위용!

가재는 바위를 지붕삼고 계곡물을 안마당 삼아 대대손손 안락한 삶을 누리지 않던가.

힘내라! 세상의 을들이여! 모름지기 가재의 지혜를 배울 일이다.

글/박하시인

* 외부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취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