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지고 가는 나무 지게에/ 활짝 핀 진달래가 꽂혔습니다.// 어디서 나왔는지 노랑나비가/ 지게를 따라서 날아갑니다.// 아지랑이 속으로 노랑나비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따라 갑니다.

박하 시인

봄이 되면 용케도 떠올리는 동시이다. 시골 촌놈, 내 어릴 적에는 나뭇짐을 진 노인들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당시만 해도 땔감 마련은 끼니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나뭇짐에 못 보던 진달래가 한 송이! 이는 새봄이 왔다는 신호였다. 촌놈들에게 진달래는 더욱 반가운 꽃이다. 진달래는 참꽃, 철쭉은 개꽃! 진달래는 따먹어도 되지만, 찐득한 진이 묻어나는 개꽃은 먹어서는 안 되는 꽃! 보릿고개라서 그랬을까? 꽃도 먹는 꽃, 못 먹는 꽃으로 늘 구분을 했다. 찔레꽃 역시 쌀밥 같고 순을 먹을 수 있어 더욱 반갑지 않았을까?

우리 집은 양지바른 언덕바지의 초가집으로, 작지만 앞마당도 있고 돼지우리와 통시(화장실)가 붙어있는 헛간채도 있었다. 가난했어도 마음만은 넉넉하던 시절, 우리 집에는 안팎으로 나무들이 많았다. 장독간 앞에는 앵두, 헛간 옆에는 무화과, 울타리는 탱자나무, 집 뒤란은 산비탈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도 온갖 유실수들이 있었다. 풍개(자두)나무, 살구나무, 배나무, 감나무, 복숭아, 사과나무, 고욤나무, 밤나무, 벽오동 등등. 과수원으로 불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릴레이 경주처럼 꽃을 피우는 이들로 인해 꽃 대궐이 따로 없었다.

살구나무는 매실이 열리는 매화나무랑 꽃이 흡사하다. 꽃은 일제히 박산을 터트리듯 핀다. 얼마나 눈부시게 꽃을 피우던지, 그 아래서면 어린 마음에도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꽃그늘에 서있어도 좋았고, 꽃잎이 눈처럼 휘날려도 좋았다. 내 몸이 두둥실 하늘로 떠오르는 기분이랄까, 황홀! 어느 날인가 꽃 그림 숙제를 한답시고 우리 반 친구들을 선동하여 불러 모으기도 했다. 꽃그늘 아래 무슨 장난, 무슨 꿍꿍이로 놀았는지, 해가 지는 줄을 몰랐다.

뒤란의 늙은 감나무도 가족 이상이었다. 마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와 소년 제제 사이처럼 말이다. 노란 감꽃이 피는 것도 신기하지만 질 때는 더 놀랍다. 감꽃이 떨어지면 하늘에서 노란 별들이 땅으로 내려온 듯 했다. 하늘에서는 감꽃으로 땅에서는 별꽃으로! 감나무 아래가 흥건한 은하수 같았다.

감꽃은 달착지근해서 요기가 된다. 감꽃을 주워 무명실에 꿰면 멋진 목걸이, 팔찌를 만든다. 사내자식이 꼭 계집애처럼! 하겠지만, 순전히 어린 여동생들을 위한 배려였다. 감꽃이 진 자리에는 어느새 앙증맞은 아기감이 안겨있다. 감잎이 날로 무성해지면, 그 그늘은 훌륭한 차일(遮日)이기도 하다. 그늘 아래 평상을 놓고 온 여름을 보냈으니 말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한번은 동무들이랑 삐비꽃을 따러 나섰다. 학교 앞에 야트막한 당산, 당산은 서낭당이 있어 당산이라고 불렀다. 당산 자락에는 유독 삐비꽃이 많았다. 책 보퉁이는 어디다 팽개친 채 경쟁하듯 삐비꽃을 딴다. 삐비꽃도 달달하고 풋내가 좋다. 손이 빠른 녀석들은 어느새 삐비꽃을 둘둘 말아 씹는다. 자기 입 속의 하얀 껌(?) 자랑을 하는 판인데, 나는 늘 동작이 굼떠서 조바심을 내었다.

정신없이 놀다가 아차! 놀라 집으로 돌아온다. ‘먹기 싫은 개떡’으로 점심을 때우고서, 허둥지둥 염소를 몰고 풀밭으로 나간다. 돌아올 때는 꼴망태 가득 토끼풀도 뜯어 와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일이라기보다 꽃놀이에 가까웠다.

이제 생각해보니, 1960년대 초반, 그 당시 봄철이 바로 보릿고개였다. 무지렁이 농군, 부모님은 가파른 보릿고개를 넘느라 뼈골이 쑤실 정도였겠지만, 우리 철부지들은 들판을 쏘다니며 온갖 꽃놀이에 취한 채 보냈다. 봄날만 되면 부모님이 더욱 그립다. 그때의 풍요로웠던 기억들 덕분에 지금도 봄날은 향기롭기만 하다.

글/ 박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