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메말라있던 내 마음 밭에 모처럼 봄비가 내린다. 지난 주말(3/20) 국립부산국악원에서 창극 <심청>을 본 소감이다. 신토불이, 우리 것의 화려한 귀환이랄까. 민속국악원 개원 20주년 기념작(연출 김홍승)으로 출연진이 무려 100여 명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이다. 예전의 마당놀이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마당놀이는 마당놀이대로 아주 흥겹긴 하지만, 너무 원작을 비튼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이번 창극 <심청>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흡족한 작품이었다. 시종일관 울다가 웃다가 어느새 2시간 반이 후딱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토종 문화공연의 권토중래(捲土重來)를 환영하며, 아직 못 보신 분들에게 강추! 하는 뜻에서 창극 <심청>에 대한 관람 소감을 적어본다.

첫째, 창극 <심청>은 토종 국산품이다. 요즘에는 온통 외국 뮤지컬 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공연 중인 것만 꼽아도 부지기수다. 레미제라블, 지킬 앤 하이드, 어메이징 요셉, 레베카, 삼총사 등등....... 수입 대 국산 비율이 얼추 9대 1 정도는 될 것 같다. 물론 글로벌 시대에 글로벌 교양이니, 작품성이 뛰어난 수입 뮤지컬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정도가 너무 심한 편이다. 이런 때에 창극 <심청>은 우리 정서의 화끈한 복원 같이 반갑기 짝이 없다.

둘째, 창극은 남녀노소 연령층을 폭넓게 아우른다. 알다시피 판소리는 일부 호사가를 제외하고는 대중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창극은 한국판 뮤지컬로 소리꾼이 소리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연기까지 한다. 뻔히 아는 줄거리지만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통곡을 하는 심봉사를 볼 때는 모두 눈물을 훔치고, 봉사들의 각설이타령 장면에서는 어린이들도 다함께 손뼉을 쳤다. 신명난 가락에 어린이부터 호호백발 어르신들까지 몰입의 경지 그대로였다.

셋째, 연기, 의상, 무대, 조명 등 잘 조화를 이룬다. 절제보다는 여러 요소가 두루 균형을 잘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수년 전에 초연을 한 뒤로 그동안 지속적으로 다듬어진 모양이다.) 전체적으로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적절히 안배된 것 같았다. 특히 심청이 인당수에 빠진 후 용궁으로 가는 장면도 몽환적으로 처리하여 격조 높았다. 국립국악단의 연주도 훌륭했고, 분홍빛 의상으로 심청의 환생을 연출한 것도 놀라웠다. 또한 맹인들이 황궁 잔치에 초대를 받아가는 도중에 벌이는 장기자랑 한마당이랑, 뺑덕어미의 익살 연기도 압권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초반부 곽씨부인의 장례행렬이 약간 지루한 편이었다.

내친 김에 옥에 티처럼 느껴지는 부분 한 가지. 원전을 충실히 따르다 보니 간간이 등장하는 한자말들은 한글 자막에도 불통이었다. 일테면,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의 초입이다. ‘범피중류(泛彼中流) 등덩실 떠나간다. 망망헌 창해이며 탕탕헌 물결이라. 백빈주 갈매기는 홍요안으로 날아들고......’ 느낌은 전달이 되지만 뜻은 깜깜했다. 요즘 어법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 또한 외국인 관객도 더러 있었는데 그들은 영어 자막이 없어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자막은 영어로만 하고, 한글 자막은 없애는 편이 몰입을 위해서도 바람직하겠다.

이날 공연은 전석 균일 1만원.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가격 대비 만족도에서 본다면, 이미 검증된 어느 외국 뮤지컬보다도 훨씬 컸다. 이번 창극 <심청>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바라건대, 이런 토종 창극 공연이 기왕이면 연중 시리즈로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앞으로 국립민속원에서 만든 공연이라면 만사작파하고 달려가고 싶다. 창극 <심청> 만세! 민속국악원 만만세!

글/ 박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