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소학, 채근담,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인생길의 등불 같은 고전들이다.’

유명한 학자가 이렇게 말한대도 젊은이들의 반응은 보나마나 이럴 것 같다.

‘됐거든요. 케케묵은 옛 꼰대들의 넋두리인 줄 이미 알고 있거든요.’

박하 시인

꼬집어 누구라 할 것도 없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시작하여 온종일 포로가 되어 사니까 말이다. 그러니 책 읽기는 고사하고, 고전공부는 까마득한 전설 같이 여겨질 법도 하다. 설령 책을 열심히 본다고 해도 그건 분명 취업을 앞둔 학생들일 테고. 그들이 보는 책들 역시 고전과는 거리가 멀 게 분명하다. 이렇듯 제 코가 석자인 사람들더러 무슨 고전공부란 말인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뀔 것 같다.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본래 이공계 출신 건설기술자이기도 하거니와, ‘노는 물’이 주로 건설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기술자들이란 항상 ‘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값싸고, 더 안전하고’가 지상 목표! 따라서 과거의 철학이나 방식은 일단 타도(?) 대상, 좋게 말해 개혁의 대상쯤으로 여기는 편이니까 말이다.

이처럼 고전에 대해 ‘소 닭 보듯’ 했던 필자가 지금은 180도로 달라졌다. 그렇다고 만사를 작파하고 고전공부에 매달린다는 뜻은 아니고, 단지 고전에 대한 선입견이 바뀐 나머지, 고전 우물에 가서 종종 물을 얻어먹는 날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 계기는 삼십 대 초반, 4년여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 근무를 끝내고, 곧장 중동(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현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현장 감독관들은 영국, 미국, 독일인들이 많았는데, 그들과 2년 남짓 한 현장에서 부대끼며 지낼 때다. 현장에서 검측을 끝낸 뒤 잠시 쉴 참이면 그들은 곧잘 내게 묻는 것이었다.

‘당신 나라에는 어떤 문화유산이 있느냐?’

‘오래된 건축물들로 자랑할만한 것은 무엇이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당시에는 내게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뭐랄까? 산 속에 들어 있으면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멀찌감치 산을 벗어나서 바라보면 산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는 법. 우물 속 개구리 같은 국내 현장을 벗어난 뒤에야 비로소 우리나라, 우리 문화에 대한 내 무지가 백일하에 드러났던 것이다.

마치 소동파가 ‘내가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가 없는 것은 내가 이 산 속에 있기 때문(不識廬山眞面目/只緣身在此山中)이라고 읊었던 것처럼(題西林壁). 그때 이후 아주 조금씩 우리 문화에 대한 공부를 해오다가, 고전공부에 진입하기는 마흔 중반이 되고서야 시작을 했다. 부산교육대 사회교육원의 고전강독반에 다닌 지가 이제 꼭 12년째에 접어든다. 이는 지식이나 교양을 위해서라기보다 최상의 인생공부라고 생각한다.

고전은 넓고 넓은 바다와 같다. 당신이 이 바다에 오시기만 하면 당신이 찾는 고기들도 널려있다. 하지만 고전의 바다로 가려면 어디서 배를 타야할 지를 모르시는 분들도 의외로 많다. 내친김에 부산 시민들을 위한 무료한문고전 강좌로 매주 월요일 6시부터 100분간 열리는 부산교육대 부설 <석음서당>을 강추!해 드리며, 필자의 졸시 한편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참고로 이 시는 2년 전 석음서당 500회 기념식에서 낭송을 한 시임.)

그저 환한 데 좇아/오래 전에 떠나온 곳/ 초라했던 우리네 고향 같은 그곳// 떠돌다, 떠돌다 돌아와도/ 한마디 나무람도 없이 토닥토닥/ 등 두드려 주는 어버이마냥// 석음서당, 지난날을 새겨/ 다가올 새날을 밝혀주는 곳/ 우리 영혼의 군불 같이 훈훈한 강좌, 어언 500회// 묵은지 같이, 막걸리 같이/ 이내 그리운 말씀과 사람들/ 오늘은 저만치 물러앉은 산도/ 너털웃음으로 화답하는 날// 캄캄한 인생의 행로/ 환히 비추는 등대 같이/ 두렵게 시들어가지 않고/ 즐거이 익어가는 그길// 그대여 오소서, 고전(古典) 속의 길-졸시 <고전 속의 길>

부울경뉴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