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중국어 배우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일본어 인기가 시들해지고 그 자리를 중국어가 밀고 들어오는 모양새다. 오년 전쯤, 중국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당시 일행은 동양고전을 취미로 공부하는 분들이었고, 알음알음으로 오신 분 중에는 한문학 전공교수도 있고, 한문에는 까막눈인 사업가 분도 여럿 계셨다.

박하 시인

첫 번째 일화. 여행 첫 날 저녁, 상하이 와이탄(外灘) 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속으로 들어갔다. 요란뻑적한 창밖을 내다보며 누구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또 누구는 뜨덤뜨덤 간체자 간판을 읽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로 앞쪽에서 누군가 대뜸 한문학 교수님에게 질문을 했다.

“교수님, 저기 네온사인 간판에 쓰인 글자가 무슨 뜻입니까?”

그 사람이 가리키는 간판에는 ‘桑拿’라는 글씨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뽕나무 ‘상’자에, 사로잡을 ‘나’자인데.......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나는 속으로 설마 ‘한문학 교수님이 저걸 모르실까?’ 했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아! 저거요. ‘사우나’라는 뜻입니다. 영어를 중국발음으로 음차를 한 거랍니다.”

대답을 한 사람은 한문학자도 아니고, 취미로 그때 막 중국어를 시작했던 필자였다.

두 번째 일화. 강행군으로 답사를 하느라 저녁이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물 먹은 솜 같이 되었다. 한번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단체로 마사지를 갔다. 난생 처음 마사지를 받는 이들은 처음에는 꽁무니를 빼듯 쭈뼛거렸지만, 대형 마사지장의 밝은 분위기에 이내 적응이 되었다. 가운을 걸치고 안마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곧 이어 ‘낭랑 18세’ 아가씨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필자는 떠듬거리는 중국어로 아가씨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아가씨는 고향이 어디요? 부모님은 뭐 하시냐? 근무시간은 어떠냐?”

그 아가씨 역시 한국에 대해 호기심 천국이었다. TV 드라마 ‘대장금’, ‘사랑이 뭐길래’를 재미있게 봤다는 둥,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는 둥, 아저씨는 따님이 몇 살이냐는 둥.......급기야는 주변 아가씨들까지 끼어드는 바람에 장내가 ‘하하, 호호, 까르르’ 때 아닌 웃음꽃이 만발했다. 마사지도 받고, 중국어 연습도 하고, 덤으로 젊은 기운까지 전해 받은 것 같았다.

마사지가 끝났을 때, 일행 중 노신사 한 분이 고백처럼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난다.

“내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그때 이후 한문 공부를 한 지가 근 삼십 년이 넘었는데 오늘처럼 자극을 받은 적은 없었다네.” 넋두리처럼 이어지는 말,

“통하고 싶을 때 통하지도 못하는 공부, 한문 종주국 중국에 와서 그저 필담으로 몇 마디 끼적일 뿐, 말 한 마디도 못하는 바보 같네. 돌아가면 당장 중국어공부를 시작해야겠네.”

요즘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부모님들이 흔히 있다. 자기 자식들에게 한자공부는 억지(?)로 시키면서도, 그 한자공부가 중국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여기는 분들 말이다.

‘중국어 배워 어디 써먹으려고?’ 하며,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배우고 나면 써먹을 곳이 저절로 생기기 마련이다.

머지않아 우리나라는 중국·일본과 함께 동북아경제권으로 통합이 이뤄질 것이다. 마치 유럽경제공동체(EU)처럼. 그때를 미리 준비하는 기분으로 어린 자녀들에게 중국어 학습을 강추! 하고 싶다. 중국어를 배우면 한자도 절로 익혀지고, 동양문화의 원류에 대한 이해도 덤으로 얻게 된다.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는 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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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뉴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