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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여행은 일종의 퍼즐 맞추기이다. 머리 속에 커다란 세계지도가 있고, 한 나라를 갈 때마다 퍼즐 조각을 하나씩 제자리에 끼워 맞추는 식이다. 지도를 맞출 때마다 더불어 하는 일은 우리나라와 그 나라의 관계, 특히 역사적 교류를 더듬어보는 일이다. 한 국가의 지리적·역사적 배경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연초에 다녀온 오키나와로의 여행 역시 그런 여행이었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외딴 섬이지만,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해상의 독립왕국인 유구국(琉球國)이었다. 그러다가 태평양전쟁의 종전과 함께 동북아 최대의 미군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가, 최근에는 ‘동양의 하와이’로 주가를 높여가는 중이다. 인구 130여만 명, 크기는 제주도의 3분의 2 정도(1201㎢). 이곳 풍물은 일본 본토는 물론 대마도와도 전혀 다르다. 언어도 풍습도 일본 쪽보다는 중국(福建省)이나 우리나라 쪽에 더 가깝다. 한자 발음, 줄다리기, 사자춤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당초 예정에 없던 곳, 이토만시의 평화 기념공원(1995 조성)을 찾아갔다. 우연히 가이드북에서 본 정보 때문이었다. 오키나와는 ‘1945년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가장 치열한 전장이었으며, 당시 희생자 25만여 명 중 조선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내용이다.
오전 9시 30분, 택시를 타고 한적한 시골길로 20여 분쯤 달려 평화공원 광장에 도착했다. 공원 면적은 무려 60여만 평으로 꽤나 넓었다. 거대한 향로 모양의 위령탑 아래에는 종합안내소가 있었는데, 실내로 들어가자 창구에는 ‘1/3일까지 휴무’라는 글귀가 보였다. 실망하려는 찰나, 전시실에 놓인 한글로 된 안내 전단을 발견했다. 전단의 배치도에는 나라별 희생자들의 묘역(刻名碑)이 나와 있었다. 각명비에는 전체 희생자 24만여 명이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중에 한국인 365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82명으로, 우리 한민족 희생자들이 447명이나 적혀있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약도를 보고 찾아 나섰다. 외국인 비석의 가장 끄트머리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나왔다. ‘姜猛根, 高光日, 金鳳煥.........’창씨개명이 아닌 한자로 된 이름들이 즐비했다. 등골에 짜르르해졌다. 필자의 아버지 역시 징병에 나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왔기에 느낌이 남달랐다. 일행은 비석 앞에서 잠시 묵념을 드렸다.
참배 이후 중앙에 있는 ‘평화의 불’에서부터 언덕을 따라 다양한 위령탑들을 둘러보았다. 아쉬운 점은 신정 연휴라 오키나와 전투의 참상을 소개한 자료관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돌아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자료관 쪽으로 갔다가 뜻밖에도 숨겨진(?) 비석을 발견했다. ‘韓國人 慰靈塔 公園(한국인 위령탑 공원)’, 전단에도 없던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우리 소매를 끈 것처럼. 입구에는 ‘영령들께 바치는 노래’가 있었다. 소리 내어 읽어가자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안으로 들어가자 돌로 쌓은 한국식 봉분이 나타났다. 제단 앞에는 ‘韓國人 慰靈塔', 그 아래에는 고국의 팔도에서 가져온 돌들이 향수를 달래주고 있었다.
뼈아픈 역사일수록 기억하면 소중한 교훈이 되지만, 잊으면 부메랑이 되어 뒤통수를 친다는 사실. 노산의 시구와 함께 가슴 속에 뜨거운 메아리로 남을 것이다.
영령들께 바치는 노래
바라보면 조국은 원한의 먹구름/ 첩첩이 쌓이고 가린 천리만리/ 역사의 흙탕물 폭포 같이 쏟아질 적에/ 양떼처럼 희생의 제물이 되어/ 바다 하늘 맞닿은 곳으로 끌려와/ 광풍에 생명의 등불 꺼지던 날/ 하늘도 울고 파도도 울고....(중략).......죽은 씨알에서 열린 광복의 열매/ 그 열매 제단 위에 올려놓고/ 겨레의 정성과 이름으로 바치는 위로/ 넋들이여 웃으며 여기 내려와/ 영광스럽게 받으시라./ 맺혔던 원한 연기 같이 사라진 오늘/ 조국이사 단숨에 달리는 지척일네/ 산천이 울리게 승리의 합창 부르며/ 돌아가 그 품에 안기시라/ 그 품에 안겨 겨레의 힘이 되시라/ 1975년 8월, 글 노산 이 은상, 글씨 평보 서 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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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늘 날아오르는 노고지리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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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뉴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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