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사람들마다 희망찬 계획을 세우리라. 누구는 금연, 누구는 결혼, 또 누구는 새로운 사업 구상 등등.........해가 바뀌면 으레 새해 운세, 즉 재미 삼아 점쟁이를 찾아가 신수(身數)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역술가’라는 호칭이 있지만 나는 점쟁이라 부른다. 그렇다고 홀대의 의미가 아니다.

박하 시인

‘역술가’라는 호칭에는 거북한 권위가 느껴지고, 친근함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점쟁이를 찾는 이는 꼭 비단 어른들 만이 아니다. 앞날이 불안한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사주카페’는 대학가 앞에까지 진출하여 버젓이 성업 중이다. 솔깃한 얘기는 ‘족집게’처럼 딱 맞는 것 같고, 께름칙한 얘기는 전혀 터무니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점쟁이의 예언이 틀렸다고 하여 복채를 돌려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그래도 깡그리 틀리지는 않았다며 관대하다. 필자도 점쟁이에 대해 일종의 신비감을 갖고 있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들었던 아버지 이야기 때문인 것 같다.

일제강점기 말,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때였다. 스무 살 청년, 아버지가 징병에 끌려갔다고 한다. 아버지는 청상에 홀로 되신 할머니 슬하에서 사남매의 막내로 자랐는데, 가난한 살림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징병에 나간 지 6개월쯤 지나자 일제가 갑자기 항복을 했고, 전쟁이 끝이 났다고 한다.

그러자 징병 갔던 동네 청년들도 하나둘 씩 귀국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사통지서도 없었는데, 일 년이 지나도 종무소식이었다. 면사무소에도 호소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족들은 하루하루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그때였다. 삼천포 어느 마을에 용한 할매 점쟁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할머니와 고모님이 함께 하루 종일 버스를 갈아타고 그 집을 찾아갔더란다.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에 사는 할매 점쟁이, 그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아버지에 관한 자초지종을 다 말했다고 한다.

이윽고 점쟁이는 손에서 까만 팥알들을 소반 위로 ‘또르르, 또르르’ 굴리더란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입으로 ‘휘이 휘이’ 휘파람을 소리를 내면서.........

“문 좀 열어 주이소! 내 지금 올라가 볼라요.”

점쟁이가 휘파람을 불며 소매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품이 마치 선녀처럼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윽고 점쟁이가 점괘를 쏟아내었다고 한다.

“보이네, 보이네, 하얀 밭에 주저앉아 양팔을 흔들고 있네. 흥부가 박을 켜는 것 같네”

이윽고 맨 정신으로 돌아온 점쟁이, “아들은 분명코 살아있응깨, 더 이상 어디 가서 물어보지 마이소! 얼매 안 있어 사립문을 열고서 ‘어매요!’하고 돌아올 날이 있을 끼요!“

그 점쟁이 말에 얼마나 안심이 되었던 지 할머니는 그때 이후, 더 이상 다른 점쟁이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내 아버지는 징병에 나간 지 삼 년 만에 기적처럼 돌아오셨다. 사할린에서 소련군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갔다가 그곳 눈밭에서 벌목작업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2인1조로 큰 톱을 마주잡고서, 마치 흥부가 박을 타는 것처럼.......

용한 점쟁이는 인공위성 같은 영매를 거느리고(?) 있다는 말이 정말이지 실감이 갔다.

그 점쟁이가 아니었더라면 우리 할머니는 어떻게 그 한 많은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할머니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냥 재미로 신수를 보지는 않다. 답답해서 미칠 정도가 되면 모를까 말이다.

‘운명을 거역하면 신이 멱살을 끌고 가고, 운명에 순응하면 무동을 태워간다.’ 니체의 말대로 그냥 운명이려니 하고, 닥치는 대로 산다. 팔자(八字)면 어떻고 운명이면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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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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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뉴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