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이 애비 말 좀 들어봐라. 이제 대선이 며칠 안 남았다 아이가. 이번 대선에 니는 누굴 찍을라 카노? 니가 누구를 찍든 내는 상관 안한다. 우짜든동 니 선택을 존중하마.

박하시인

하지만 애비로서 당부가 하나 있다. 니는 명색이 사회 초년생 아니냐? 그만하면 니 나이 때, 이 애비보다 확실히 니가 낫다! 배포도 크고 영리한 거는 맞다 이 말이다. 근데 말이다. 니는 이 애비를 닮아 너무 솔직한 기 탈이다. 그래서 내 하는 말인데, 그 뭣이냐?

남들 앞에서 니가 누구 편입네, 누구를 찍을라카네, 그런 식으로 제발 떠벌리지는 말아다오. 물론 총명한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마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몽땅 까발리지는 말아라 이 말이다. 남들이 줏대 없다 캐도 무시하고 살아라. 그 뭣이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 니도 들어 봤재. 이런 때 꼭 맞는 말인 기라. 그러니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대선 때는 우짜든동 양다리 걸치는 기 최고다.

어허! 이 놈 좀 보게, 뭣이라? 이 애비가 비겁한 거 같다고? 야! 이 놈아! 니 인자 다 컸다고 그라나? 환갑 넘은 지 애비를 능멸할라 카는 기가. 양다리는 비겁한기 아이고, 유식한 말로 하모, 거기 바로 ‘위험관리’라 카는 기다.

이 애비가 그 동안 숱하게 봤다. 사업 깨나 하는 양반들이 줄 한번 잘못 섰다가 쫄딱 망하는 꼴 말이다. 한두 번이 아이라 카이. 선거 끝나자마자 세무조사 디립따 닥치고, 졸지에 탈세범이네, 추징금 폭탄이네, 난중에는 지 마누라까지 정신병으로 몸져눕더라 이 말이다.

어디 그 뿐이것냐? 소위 잘나가는 배우들(연예인) 중에도 그런 화상들 숱하게 봤다. 그 뭐시냐? 선거판에 몇 차례 광고네 후원 연설이네 하고 설치다가 결국은 쪽박 차더라. 물론 개중에는 줄 제대로 잡은 덕에 대박 터지고, 한동안 사업이 불 같이 일나는 경우도 있더라. 근데 그것도 얼매 못가더라. 얼매 안 되서 세상이 확 뒤지피지니깨 말짱 도루묵, 일장춘몽이더라.

이 애비, 미리 말해 둔다만 설령 니가 민 후보가 안 된다 캐도 낙심하지마라. 기왕이면 요렇게 생각하는 기 안 좋컷나, 그 뭣이냐? 대한민국주식회사의 사장이 새로 바낐다! 그리 생각해라. 니는 햇병아리 종업원 아이가. 찍소리 말고 사장 방침에 따라라 이 말이다.

애비가 이 나이 되고 보니깨 인자 좀 알 것 같다. 모름지기 지도자란 멀리 내다봐야 하고, 강단이 있어야 하고, 산전수전 겪어봐야 하는 기다. 소위 카리스마라 카는 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기 아이다 이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니가 정치판에 뛰 들지 않는 한은 말이다. 정치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인기라. 우짜든동 니 밥그릇은 니가 챙기는 기다 이 말이다. 아들아! 근데 말이다. 대체 니는 누굴 찍을끼고?‘

위 대화록은 순전히 상상으로, 내게 만약 아들이 있었다면 이런 넋두리를 했을 것 같다.

끝으로 얼마 전, 필자는 어느 세미나에 갔다가 뒤풀이로 선술집에까지 참석하게 되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대선이 안줏감이 되었다. 좌장 한 분이 건너편 원로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전공이 정치학이시니까, 이참에 한 말씀, 이번 대선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 분이 빙그레 웃으시다가 자세를 고쳐 앉으시며 낮지만 굵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셨다.

‘우리나라 정치, 이만하면 많이 발전한 거지요? 세 후보 모두 이전 어느 때보다 훌륭하신 분들이잖습니까? 걱정 마세요. 누가 되더라도 좋아질 겁니다.’

‘에이~ 교수님, 지금 선문답 하시는 겁니까? 누가 아니랄까봐, 너무 정치적이십니다.’

개중에는 어깃장을 놓는 이들도 있었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그 분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믿기로 했다. 우리 주변에는 실속도 없이 핏대를 올리고, 편 가르기에 혈안(?)이 된 분들을 종종 본다. 어쨌든 하루 빨리 후보들의 막판 토론이 열렸으면 좋겠다. 누굴 찍을 지는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글/ 박하시인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늘 날아오르는 노고지리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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