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 시인

‘인문학 르네상스’, 요즘 미디어들마다 즐겨 부르짖는 구호다. 경향 각지 대학들도 무슨 경쟁이나 벌이듯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이랴, 얼마 전 부산의 벡스코에서는 ‘제 2회 세계인문학포럼’도 성황리에 열렸단다. 바야흐로 인문학 부흥이 시대의 화두가 된 느낌이다. 그 배경이야 십분 짐작이 간다. 그 이유로는 세상의 흉흉한 분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이랄까. 말하자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살벌한 사건들로 인해, 자녀들과 함께 TV 뉴스를 보기가 겁날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따라서 인문학 교양 쌓기를 범국민 운동으로 벌이기만 하면, 우리네 마음 밭도 세상살이도 한결 여유로울 것이라는 진단에서 연유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처방의 일환으로 ‘인문학 르네상스’를 주도하는 단체들에게 한 말씀드리고 싶다. 무척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뭔가 균형을 잃은 것 같다. 공학 쪽 사람으로서 그 이유를 겸해 제안 사항 몇 가지를 적어본다.

첫째 ‘인문학 르네상스’만 강조하면 편견(偏見)을 불러올 수 있다. 말인즉슨, 세상을 굴리는 두 바퀴가 있다면 한 쪽은 인문학이고, 다른 한 쪽은 과학과 공학(이하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인문학이 감성이라면, 과학은 이성과 논리 쪽이다. ‘인문학 르네상스’의 실천 강령으로 으레 인문학 고전 강좌나 도서목록이 뒤따르는데, 그 내용이나 도서 목록들은 대체로 순수 인문학 고전들로 채워져 있다. ‘인문학 르네상스’라고 하여 과학을 무시하자는 뜻은 아닐진대, 자칫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에만 올인 하자는 뜻으로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둘째, 인문학과 과학의 조화가 절실하다. 인문학이 마음의 양식일수는 있지만 현실의 방향 감각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실이란 눈앞의 펼쳐지는 변화이다. 감성보다는 이성, 감정보다는 논리와 경쟁이 세상 변화를 주도하게 마련이다. 변화무쌍한 현실을 읽고, 방향 감각을 위해서는 인문학 강좌 속에 일부일망정 과학 전문가에 의한 과학 교양 강좌도 포함시키기를 권하고 싶다. 일찍이 인류의 스승 공자도 육예(六藝)를 강조했다.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인문학과 과학을 아우르는 통섭의 교양을 강조해야 할 때다.

셋째, 인문학 쪽 사람들도 ‘과학 교양’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이란 본시 ‘사람답게 사는 법’이 아니던가. 따라서 2,500년 전 공맹(孔孟)의 시대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이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이 바로 고전읽기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은 정신없이 변하고 있다. 옛날에는 걷거나 나귀를 탔다면 지금은 차를 타고, 때로는 비행기로 움직이는 게 대세이다. 이처럼 문명의 발전이란 곧 시대의 평균속도가 빨라진다는 말이다.

인문학도 공부를 통해 더 나은 경지가 열리듯이, 과학 교양 역시 공부를 하지 않고 그저 얻을 수는 없고 하물며 변화무쌍함에랴. 달리 말해, 현실의 방향 감각을 위해서는 과학 교양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마치 그 옛날 나루를 건너던 선비가 자신의 칼을 강물에 빠트리고 뱃전에 금을 그었다던 일화(刻舟求劍)와 흡사하다.

넷째, ‘보다 낮은 자리’의 인문학 르네상스도 절실하다. 요즘 ‘인문학 르네상스’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들은 수익사업 쪽으로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것 같다. 아시다시피 인문학 르네상스의 수혜자는 잘나가는 대기업의 사장들(CEO)이나 일부 상류층(?)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당장 잘나가는 사업이라도 인문학적 상상력이 빈곤하면, 머잖아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경제 불황이 오고, 덩달아 사회 분위기도 나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인문학의 단비는 골고루 내려야 한다.

정작 인문학의 단비가 당장에 절실한 쪽은 외롭고 팍팍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경제 불황으로 직장을 잃은 가장, 결손가정의 청소년들, 교도소에 복역 중인 재소자들 등등.......

따라서 이쯤에서 인문학 르네상스에 대한 근본 취지에 대해, 다시 말해 정말 부족한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글/ 박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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