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愛玩犬)이란 이름에는 ‘살아있는 노리개’라는 뜻이 풍긴다. 요즘에는 반려견(伴侶犬)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들 이름에 대해 견공(犬公)들이 단 한 번도 싫다 한 적이 없는 데도, 인간들이 알아서 이름을 귀티 나게 바꿔주었다. 예전에는 노리개였지만, 지금은 가족 같이, 또는 의좋은 친구 같이 변했으니 응당 ‘인생의 동반자’라고 대우해준다는 것이다.

박하 시인

불과 삼사십여 년 전, 아파트가 대중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개들은 그냥 개였다. 개의 임무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인집 문간을 지키고 그 댓가(?)로 밥을 얻어먹는 일이 전부였다. 이제는 방범 업무는 거의 면제 받고서 일약 친구 또는 반려자의 지위로까지 승격 되었다. 비유컨대, 한때 마당쇠가 일약 정삼품 당상관(堂上官)의 지위에 오른 거나 진배없다.

개들의 호칭 변화도 눈부시다. 오래 전 개들은 ‘바둑이’, ‘복실이’ ‘독구’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면서 바뀌었다. ‘꼬마’, ‘차돌이’, ‘순둥이’, ‘밍크’ ‘귀염이’ 등등으로 거의 인격 수준의 이름들이 부여된 셈이다. 그 정도는 약과이다. 개들이 칭얼대면 마치 갓난아기에게 대하듯 ‘엄마가 밥 주랴, 과자 주랴?’하며 어르고 달래니, 신분상승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오늘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견공 선조들의 수고를 생각해 보면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들은 수수천년 문간의 수문장 노릇으로부터 삼복더위 복날의 보신탕까지, 인간을 위한 충성과 숭고한 희생을 감내해 오지 않았던가? 적덕지가 필유여경(積德之家 必有餘慶)이란 말 그대로, 이제는 그들 후손들이 빛을 보는 건지도 모른다. 개 눈에 눈곱만 끼어도 전담 수의사에게 달려가고, 급기야 생을 마감할 때는 엄숙한 장의 서비스까지 받는 개들도 등장했다고 하니 말이다.

가끔 부부동반 모임에 가면, 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 안주인뿐이 아니라 아저씨들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개 키우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보니,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숫제 왕따 신세가 되기도 한다. 개 때문에 사람이 찬밥신세가 되는 꼴이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개 때문에 친구 사이까지 소원해 질 판이니 이건 정도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항변 삼아 최근에 들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예순 중반의 어느 부부는 ‘흰둥이’라는 푸들 암컷 한 마리를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살던 아들 내외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통에, 세 살짜리 손자를 이(2) 주 정도만 맡아달라고 했단다. 부부는 가끔 주말에 보는 손자가 좋지, 두 주나 손자에 붙들려 사는 것은 내심 마뜩찮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자를 맡아보게 되었단다.

둘 째 날이었다. 할머니 품에 안겨 한참 재롱을 부리던 손자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흰둥이를 밀쳤다. 그 순간에 일이 터졌다. 흰둥이가 성난 늑대처럼 달려들어, 귀염둥이 손자의 입술이 물어버렸던 것이다. 손자가 비명을 질렀고, 입술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 혼비백산한 할머니, 경황 중에 119 신고도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병원에서 봉합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사태는 가까스로 수습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돌아 온 손자는 흰둥이가 방문만 긁어도 경기가 들고 발작을 했다고 한다. 부부는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마침내 비장의 결단을 내렸다. 단골 동물병원에 부탁하여 안락사를 시키기로. 헤어지는 순간 부부는 흰둥이를 부여안고 눈물의 호소를 했다고 한다.

‘흰둥아! 네가 우리 곁에 와서 15년 넘게 함께 살았으니 정말 고맙다. 하지만 어쩌겠니. 우리 손자는 이제 겨우 3 년째인데. 부디 원망 말고 좋은 곳으로 가거라!

흰둥이를 안락사 시킨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날 밤부터 할머니의 꿈속에 흰둥이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냥 측은 한 눈망울로 할머니만 바라보는 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단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그 이후는 상상에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완물상지(玩物喪志), 어떤 것을 몹시 좋아하면, 뜻이 상하게 마련이다. 또한 ‘다정(多情)도 병’이라고 했지 않은가.

글/박하시인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늘 날아오르는 노고지리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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