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골고루 먹어라!’고 어릴 적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 그렇건만 제각기 고유한 음식 취향은 좀체 바뀌지 않는다. 납득은 하지만 몸이 거부한다고나 할까.

대개 50대 중반이 되면, 자신의 식습관을 취향이 아닌 마치 줏대나 지조처럼 여기게 된다. 일테면, 일주일 안팎의 해외여행인데도 불구하고 바리바리 반찬을 싸들고 오는 이들이 있다. 고추장, 구운 김, 들깻잎(통조림), 멸치볶음, 컵라면 등등, 물론 애주가들은 종이팩 소주도 잊지 않는다. 숫제 여행 가방은 부식창고나 다름없다. 젊은이들의 눈총에도 아랑곳없다.

이들을 보는 시선은 대개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저래서야 한국이 언제 세계화가 될꼬?’ 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 두 번째는 ‘역시 신토불이(身土不二)야!, 암! 제대로 먹지 못하면 여행길이 곧 고행길이지’ 하며 적극 찬동을 하는 분들이다.

중년 세대와 달리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은 다르다. 대체로 양식을 거부하지 않는다. 아니 선호하는 편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은 청국장보다 햄버그, 파전보다 피자, 고추장보다 치즈, 국수보다 파스타를 더 좋아하니까 말이다. 세대간의 음식 취향에도 갈수록 간격이 벌어지는 중이다. 추석 연휴 뒤에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대학 동창인 이 친구는 지난봄에 아들을 결혼시켰다. 따로 살고 있던 아들 내외가 추석 하루 전날 부모님 댁으로 추석을 쇠러 왔더란다. 아들 내외의 큰 절을 받은 시부모는 이윽고 거실에 둘러앉았다. 새색시가 정성껏 만든 이바지를 풀어본 시어머니가 반색을 했다.

‘아가! 이걸 모두 네가 맹글었단 말이냐? 네 솜씨가 참말로 대단타!’

며느리가 직접 만든 치즈케이크, 그 표면에는 앙증맞은 글씨까지 써놓았던 것,

‘ 아버님, 어머님, 만수무강하세요!’

시어머니의 찬사에 으쓱해진 며늘아기, 시아버지께 케이크 한 조각을 내밀었다.

‘아버님!, 이거 정말 맛있어요. 잡숴보세요!’

시아버지도 반색을 했지만 내심 ‘내 취향은 아닌데.......’라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그때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의 성화가 쏟아졌다.

“당신! 유난스럽게 그러지 마세요. 새아기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한 조각은 들어보세요.”

마뜩찮아 하던 시아버지도 ‘허~ 참!’하며 속으로 ‘맞아, 이것도 내 편견이겠지’ 하고는 마침내 한 조각을 먹었다. 기대와 달리, 향긋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턱밑에서 시아버지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던 며느리, 시아버지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는 걸 보자마자,

‘아버님, 맛이 근사하지요’ 하며 또 한 쪽을 건네는 게 아닌가? 며느리의 깜찍한 애교에 속절없이 투항한 시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몇 조각을 더 먹었다고 한다.

저녁상을 물린 뒤, 가족은 편을 갈라 윷놀이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자정 넘어 가족들이 모두 잠이 든 시각, 시아버지는 아랫배가 쌀쌀 아파오고, 뱃속에서 ‘꾸르르, 꾸르르’ 소리가 들리더니 급기야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튕겨 일어났다. 부랴부랴 화장실로 직행했다고 한다.

시아버지는 유독 치즈에 알레르기가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그 난리 통에 당사자는 물론이고 며느리까지 추석을 거꾸로 쇠었을 것이다.

이처럼 선물이란 정성이 듬뿍 담겼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선물을 하기 전에 충분히 받는 이의 취향을 고려하겠지만, 유독 명절 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는 묘수가 딱 한 가지 밖에 없다. 다른 이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지난 추석에 내가 받은 선물 중에도 그런 게 있을 것이고, 필자 또한 떠넘기기를 한 게 있다고 고백한다. 술이야 괜찮지만, 당장 먹지 않으면 상하는 것들이 문제다. 정성을 생각해서, 또 체면 때문에 먹다보면, 마음은 감동이라도 몸이 완강히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필히 참고할지어다.

글/박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