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 시인

첫째, 영화는 책에 비해 싸다. 책 한 권은 15,000원 정도지만, 영화는 7,000원으로 반값 이하이다. 인터넷에서는 1,000원 이하로도 가능하다. 투자한 돈에 비한 만족도를 포함한다면 단연 영화가 낫다. 필자는 값은 싸면서도 시야를 파노라마로 확장시켜주는 것으로 영화만한 것이 또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모르긴 해도 조선의 책벌레, 일명 ‘책만 보는 바보’로 통하던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환생한다면, 백탑파 동지들과 어울려 지금쯤 광화문의 극장가를 주름잡고 있을 것이다. 그는 늘 호기심 천국의 백과전서파였으니까 말이다.

둘째, 영화는 책 이상으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책 한 권은 속독이라도 네댓 시간은 족히 걸린다. 하지만 영화는 겨우 2시간 남짓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책에 담긴 내용보다 가벼울까, 천만의 말씀이다. 영화 제작은 감독이 주도하지만, 알고 보면 책 이상으로 집단 지성과 첨단기술의 결정판이다. 따지고 보면, 보는 게 입체적일수록 상상력에 가속이 붙는 법이다.

상상이 구체적일수록 행동 역시 구체적이다. 영화 한 편이 때로는 혁명의 지렛대(전함 포템킨/에이젠 슈타인)가 되기도 하고, 무한 우주의 신비(딥 임팩트/미미 레더)이기도 하고, 다문화가정(완득이/이한)의 애환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일례로 영화 ‘피에타’로 올해 베니스영화제 대상을 거머쥔 김기덕 감독은 젊은 시절 프랑스에 유학 같다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본 뒤에 영화감독이 되었다지 않던가.

셋째, 책은 홀로 보지만 영화는 손잡고 볼 수 있다. 일테면 주말마다 가족을 외면하고 나 홀로 독서삼매에 빠지는 가장이 지극히 ‘이기적’이라면, 대개 부부끼리, 연인끼리, 또 친구 끼리 가는 영화관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지극히 ‘우호적’이게 한다. 코흘리개 시절,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00면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던 시골의 이동극장에서 어렵사리 영화서리를 했던 내 친구 악동들, 두근두근 난생 처음 여자친구의 손을 잡았던 어느 극장.......영화는 책보다 훨씬 사교적이다. 영화광 치고 꽁생원도 없고,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없는 줄 안다.

넷째, 영화는 책 이상으로 낮은 자리에서 진화해 왔다. 중세시대만 해도 성경은 값비싼 양피지에 적힌 필사본이었고, 성경말씀은 신부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에 의한 인쇄 혁명은 곧 이어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영화 역시 2차원의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어 절대다수 공공에게 시각혁명을 가져왔다. 19세기 말, 뤼미에르 형제(Auguste and Louis Lumiere)가 맨 처음 활동사진을 만든 이후, 흑백영화가 총천연색이 되고, 시네마스코프, 파노라마가 되고, 마침내 3D 영화까지 등장했다.

최근 들어 타 장르와 융합도 참 보기 좋다. 일례로 ‘오페라의 유령’, ‘모차르트 락 오페라’ 등과 같이, 일부 호사가들의 전유물이었던 고가 뮤지컬도 실황 중계하듯 싼값에 보여주니까 말이다. 벌써 꽃향기에다 음식냄새까지 솔솔 풍기는 영화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복사기가 제2의 인쇄혁명을 가져왔듯이, 영화 역시 진화본능에 가속을 붙여가고 있다.

알고 보면 인문학이 뭐 별거던가? ‘인간답게 사는 길’을 찾자는 게 아니던가. 혹자는 왜 인간답게 사는 길이 고전(古典)들 속에만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책도 좋지만 잘 고른 영화 한 편에도 얼마든지 ‘인간답게 사는 길’이 있다. 따지고 보면 영화와 책은 의좋은 친구 사이지 결코 앙숙 관계가 아니다. 영화로 인해 책읽기가 더욱 깊어지고, 책으로 인해 영화의 내용이 더욱 알차진다. 벌써 가슴이 설렌다. 코앞에 닥친 추석도 영화 보기에 딱 좋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영화의 바다,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4일부터 막이 오른다.

부울경뉴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