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도 일종의 화살입니다. 뻗어나가는 성질로 보자면, 화살 중에서도 가장 빠른 화살입니다.

세상 모든 빛은 우리 눈을 향해 쏘는 화살입니다. 세상의 소리도 일종의 화살입니다. 시끄러운 소리, 듣기 좋은 소리, 가릴 것 없이 우리 귓속을 향해 쏘는 소리의 화살인 것입니다.

화살의 본능은 곧 살기(殺氣)입니다. 목표를 향해 독을 품고 돌진합니다. 총이 나오기 전까지 활과 화살은 요긴한 사냥 도구이자 전쟁무기였습니다. 하지만 활쏘기는 예로부터 선비들의 심신수련용이었습니다. 공자님 말씀에도 유명한 비유가 있습니다. ‘명중하지 않더라도 돌이켜 자신을 탓하라!(發而不中 反求諸己).’ 설령 자신이 쏜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더라도, 바람이나 남의 탓을 말고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라! 자고로 선비들이 덕을 기르는 방편으로 활을 쏘았고, 그래서 고을마다 ‘관덕정(觀德亭)’이란 사정(射亭)을 두었었지요.

한편 과녁은 방패의 숙명을 지닌 채 화살을 받아냅니다. 하지만 과녁의 중심은 화살을 쉴 새 없이 맞게 되면, 구멍이 뚫리고 급기야는 넝마처럼 헤지고 맙니다. 그래서 그 중심에 가죽을 붙였던 것입니다. 과녁이라는 말도 본시 ‘관혁’에서 나왔습니다. 아주 옛날, 과녁의 중심에 질긴 사슴 가죽을 붙였던 데서 유래합니다. 뚫을 관(貫), 가죽 혁(革), ‘관혁’이 과녁으로 바뀐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과녁이 있는 줄 아십니까? 세상 빛과 소리를 받아내는 과녁, 눈 속의 망막(網膜)과 귓속의 고막입니다. 망막과 고막은 둘 다 동굴 속처럼 깊은 곳에 자리합니다. 둘 다 희미한 빛과 소리조차 붙잡는 촘촘한 신경의 그물망(網)입니다. 신경망인 동시에 빛과 소리의 화살을 일평생 받아내야 하는 숙명의 과녁이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당신은 빛과 소리를 사랑할 지라도 당신의 과녁, 망막과 고막은 빛보다 어둠, 고함보다 잔잔한 소리를 더 사랑합니다. 어둠이 엄마 뱃속의 자궁처럼 생명을 키워주듯, 고요함 역시 당신의 지친 고막을 어루만져주소 영혼까지 말갛게 씻어줍니다.

요즘 들어 첨단문명의 이름으로, 빛과 소리의 화살 세례를 퍼붓는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화살에는 마비산(痲痺散)이 발라진 듯 합니다. 소통! 소통! 마구잡이 소통! 주야장천 수다나 떨자는 꼬드김!, 응답이 없으면 상대로부터 ‘씹었다’는 비아냥거림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물론 문명의 평균속도를 좇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잘난 소통 때문에 내 안의 소중한 과녁이 머잖아 너덜너덜해 것 같은 예감. 시도 때도 없이 집적거리는 SNS의 성가심에 질린 나머지, 저는 요즘 가끔씩 왕따로 살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지친 망막은 빛보다 어둠을 원합니다. 지금 당신의 고막도 간절히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합니다. 당신의 귀를 병마개처럼 꽉 틀어막고 있는 그 이어폰도 좀 빼주세요. 사랑하는 이의 얼굴과 목소리, 자연의 풍광과 속삭임을 오래오래 즐기기를 원하신다면, 당신의 과녁들에도 휴식을 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는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선비들처럼 활쏘기를 심신수련용으로 활용해야지, 자신을 쏘는 자해(自害)용으로 삼는대서야 머잖아 정말 큰 재앙을 초래하지 않겠습니까? 곰곰 생각해 보세요. 지금 당신의 과녁, 얼마나 안녕하십니까?

글/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