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는 처음부터 버릇을 잘 들여야 한다. 그 버릇을 좌우하는 것, 바로 주변 환경일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어린 시절에 세 번이나 이사를 감행한 어머니,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주인공, 맹자의 어머니(이하 맹모)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처음에는 한적한 공동묘지 옆으로 이사를 간다. 하지만 어린 아들은 늘 상여꾼 흉내를 내면서, ‘아이고, 아이고’ 하며 청승스런 곡소리를 따라 하는 게 아닌가. 맹모는 다시 저자거리 주변으로 이사를 한다.

박하 시인

그랬더니 어린 맹자는 ‘골라, 골라! 싸요, 싸요!’ 하면서 장사치 흉내를 내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맹모는 심사숙고한 끝에 다시 서당(書堂) 옆으로 이사를 간다. 그랬더니 아들이 드디어 글 읽기에 재미를 붙이더라는 이야기.

하지만 이 이야기는 ‘꿈보다 해몽’으로 기운 듯하다. 말인즉슨, 후대의 제자들이 스승의 우상화 작업을 위해, 또는 맹모의 지혜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 덧칠을 한 것 같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아시다시피, 맹자는 공자에 버금가는 아성(亞聖)이다. 그렇게 된 원인으로 좋은 학습 환경을 꼽지만, 진짜 비밀은 딴 데 있다. 즉 어린 맹자가 좋은 학습 환경을 제공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적나라한 삶을 체험했다는 점이다.

먼저 소년 맹자가 공동묘지에 살 때는 매일 같이 ‘죽음’을 맞닥뜨렸을 것이다. 맹자를 일러 흔히 맞짱뜨기의 명수’라고 한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 맹자의 스승, 공자는 언제나 상대 입장을 배려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일테면, ‘묻는 것이 곧 예가 아니겠는가(是禮也)?’ 식이다. 하지만 맹자는 다르다.

언제나 두둑한 배짱으로 승부한다. 토론의 상대가 왕이든 재상이든 간에 막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배짱은 어디서 왔을까? 모르긴 해도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공동묘지 주변에 살면서, 생사를 초탈한 철학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저자거리에 살면서 맹자는 무엇을 배웠을까? 줄곧 장사치 흉내만 냈을까? ‘삶에 지친 자여, 시장으로 가라’는 말처럼 예나 지금이나 시장에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친다. 또한 장사와 손님 사이에 주고받는 흥정의 기술, 즉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내 논리를 설득하는 협상의 진수를 보고 깨달았을 것이다.

공자의 논어(論語) 문장이 거의 단답형 문답이라면, 맹자의 장구(章句)들은 대체로 치고받는 토론식이다. 상대방의 흉금을 파고드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비유, 논리적인 말솜씨, 그 배후에는 어린 시절 매일 같이 장터거리에서 보고 배웠던 협상의 기술이 분명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엄마 손에 이끌려 서당 옆으로 이사를 간 뒤, 늘 책 읽기만 했을까? 어린 소년이 책 읽기만 한다고 문리(文理)가 금세 터질까? 천만의 말씀이다. 책도 읽는 이의 체험 수준에 따라 흡수하는 정도가 다르게 마련이다.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지만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공부에도 엄연히 단계가 있으니까 말이다.

소년 맹자가 공동묘지나 저자거리에서와는 달리, 서당 부근에 가자마자 정신을 차려 열공을 하게 되었다면, 과연 이유가 뭘까? 결코 그의 총기(聰氣)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 동안 공동묘지에서, 또한 저자거리에서와 같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보고 겪었던 것들이 가슴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옛말에 ‘모르는 것은 오지랖에 싸줘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평소 체험의 정도, 고민의 정도에 따라 특정 대상에 대한 이해 여부가 갈려진다는 뜻이리라.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일수록 다양한 체험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창의성이다. 창의성이란 곧 남과 차별화될 뿐 아니라, 참신한 아이디어의 가짓수, 즉 ‘경우의 수’가 많다는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학원순례만으로 창의성이 샘솟지 않는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진짜 교훈은 청소년기에 다양한 삶의 현장을 스스로 맛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이사비도 비싼데 어떡해야 하나? 이사 대신 여행을 하면 된다. 아니 자녀에게 무전여행이라도 시키면 된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하리(讀萬卷書, 行萬里路)는 말이 있다. 알고 보면 책읽기가 세상 여행이고, 여행이 곧 세상이라는 책 읽기라는 사실이다.

부울경뉴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