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저희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으려합니다. 부디 저희 결혼식에 오셔서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누구누구의 장남 김 00, 누구누구의 장녀 박 XX 올림’

요즘 청첩장에 흔히 보이는 문구이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결혼 풍속도가 화제에 올랐는데, 위와 같은 투의 청첩장 문구에 대해 어느 분이 역정을 내시며 말씀하시길,

박하 시인

‘저희 두 사람....... 어쩌고저쩌고 식은 전통 예법을 무시한 순 엉터리!’라는 게 아닌가. 말인즉슨, 결혼식을 주최하여 하객을 초대하는 당사자는 혼주(婚主)인 그들의 부모인데도 불구하고, 신랑신부가 지들 이름으로 청첩을 한다는 것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됐다는 거였다.

청첩장의 문구는 응당 혼주(婚主)가 하객들을 초대하는 식이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결혼식이란 양가 부모가 친인척과 부모님 친구들을 초대하여 예식을 거행하고, 하객들로 하여금 신랑신부의 앞날을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는 자리라는 게 전통예법이요, 근본 취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청첩장의 문구는 이런 식이어야 한단다.

저희 양가(兩家)는 여러 친지, 어르신 앞에 삼가 혼사(婚事)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저희 자식들이 사랑과 믿음으로, 다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축복하여 주시면.........

하지만 요즘 청첩장에서 이런 투는 열에 하나 꼴도 보기가 드문 실정이다. 하나 같이 신랑, 신부가 초대하는 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를 두고 무지의 소치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곤란하다. 조선조 전통 예법을 고수하기엔 시대 변화가 상전벽해처럼 컸기 때문이다. 양쪽의 시각 차이를 요약해 보자.

첫째, 결혼의 평균연령이 서른에 가깝다는 점이다.

조선조에는 신랑, 신부의 나이가 십대 중후반으로, 미성년이나 다름없었다. 남자의 경우, 대개 과거 준비를 하는 나이라서 당연히 직업도 직장도 없을 터이다. 신부 역시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결혼과 동시에 시어머니의 그늘(?) 아래에서 집안일에 매일 몸이다. 따라서 신랑, 신부는 자기들 스스로 자신들의 혼사를 결정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애송이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신랑, 신부는 대다수가 서른 전후의 나이로 어엿한 직장인들로 자신들의 결혼식에 대해 상당 부분을 자기들 스스로 기획하고 집행하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둘째, 부모님들도 대개 뒷전에서 도우기를 원한다.

예비 신랑, 신부들은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테면, 신랑, 신부가 예식장을 잡는 일, 웨딩사진을 찍는 일, 신혼살림을 마련하는 일, 신혼여행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계약하는 일 등등. 요즘 같이 현란한 인터넷 시대에 부모님들이 주도적으로 결혼식을 준비하기에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결혼식의 대부분을 당사자인 신랑·신부들이 주도적으로 해결한다. 그렇다고 부모님들이 서운해 하시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대견해하는 편이다.

셋째, 하객들 중에 신랑신부의 친구, 직장 동료들도 많다.

십대 때 결혼을 하는 조선조에는 하객들의 대다수가 부모님들과 친한 분들이다. 당시에는 신랑신부의 지인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와 달리, 요즘에는 결혼 당사자들이 나이 서른 전후의 어엿한 직장인들로 하객들 중에는 신랑, 신부 당사자들의 지인들. 이를테면 학교 동창, 직장 동료 등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 물론 여전히 하객들의 대다수는 부모님의 지인들이다.)

우리 집에도 올 가을에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식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청첩장 인쇄를 앞두고 있던 터라 아내에게 예의 그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청첩장 문구는 순 엉터리!’라며 역정을 내시던 그 분의 이야기를 꺼냈더니 대뜸 아내 왈,

“그 분은 아직 조선시대 사람인가 봐요. 세상 바뀐 줄을 모르시니........”

아내의 반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전통 예법에 점수를 주려던 내가 도리어 무안했다.

전통 예법과 변화된 신세대 풍속을 아우를 묘수는 없을까? 절충방안으로 신랑, 신부가 아는 사람에게 청첩장을 보낼 때는 그들이 초청하는 형식, 양가 부모가 초청하는 분들에게는 혼주가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처럼 두 벌로 만드는 게 최선의 방책일 듯하다.

부울경뉴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