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詩)는 수천 년 귀농(歸農)의 환타지를 제공해준 도연명의 걸작,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차운(次韻)한 형식이지만, 그 뜻은 감히 귀거래사와 정반대인 도시예찬임.-필자

박하 시인

돌아가지 않으리라,

고까짓 밭떼기 하나 묵혀두었다고 어이 돌아가리.

이제껏 엎치락뒤치락 부대끼며 살아온 도시,

배신하듯 어이 팽개치고 떠나가리.

지나온 길이 아무리 별 볼 일 없었다 해도

기왕 내친걸음 끝까지 가보려네

한 시절, 콘크리트 정글에서 헤맨 적 있고

한적한 산골 민박에서 빈둥거린 적도 있었지만

이 몸, 죽었다 깨어난대도 귀농(歸農) 생각은 없었다네.

이제야 새삼 깨달은 바, 지금이 옳고 어제까지가 글렀던 게 아니라

어제까지 그 풍상들이 내 뼈와 영혼을 이만큼 야물게 해 주었다는 사실!

풍악소리에 장단 맞추는 나의 애마(愛馬),

충직한 내비(navigation), 앞세우면

난생 처음 길이라도 콧노래 절로 나오네.

마침내 보이는 빛의 마천루,

설레는 마음으로 지그시 가속페달,

한 마리 날쌘 물수리, 활주로에 내리는 비행기마냥

빛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일동 차렷! 가로등들의 열병식 아래

캉캉 춤을 추는 가로수들 너머,

익명의 공중누각, 나의 둥지여!

향기로운 술독은 무슨,

찌질이 같이 독작(獨酌)은 무슨,

나는야, 창공의 독수리처럼 굽어보며 살리라.

마천루 사이로 붉은 산 노을,

마시지 않아도 내 마음 발그레해지고

저문 강 건너오는 산들바람에도 흠뻑 취할 수 있기를,

자고로 소은(小隱)은 산속에 숨고,

대은(大隱)는 저잣거리에 숨는다고 했던가,

소은도 대은도 아닌 어정쩡한 몸이지만

눌러 붙은 자리, 그대로 놀다가려네.

허위허위 오르는 장산(萇山) 그 산정,

발아래 동서남북 세상도 가소롭기만 하네.

레고블럭처럼 늘어선 방벽, 그 아래 수영강을 따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내갈기듯,

거대한 한 마리, 용! 석양에도 그 비늘 눈부시구나

초승달 뜨는 황령산은 또 어떻던가,

구만리장천을 나는 봉황 한 마리, 한껏 활개를 펼친 듯

온갖 금수(禽獸) 생령들, 초롱초롱 켜는 눈동자,

제 품에 고이 품고 단잠에 드누나.

끝내 돌아가지 않았노라, 젊어 한때

벼슬길, 샛길, 탐낸 적 있었으나 빗나가지 않았고

풍진 세상 속에 헐레벌떡 부닥치며 살아온 몸,

변방의 일터일망정 내겐 우주의 중심,

뭇사람들 사이, 귀한 인연들 공덕으로 살았노라.

‘광 속에서 인심 난다’는 말, 철석같은 그 믿음대로

철든 뒤부터 부귀(富貴)는 내 바라는 바였으나,

기대 이상 되지는 못했다네. 그래도 참 다행인건

한 시절, 방황했을 때도 낮술에 취해 비틀거린 적 없고,

‘애비같이 되지는 말라!’며, 자식 공부 닦달한 적은 없었네.

이 나이에 노후 준비란

손자 환갑 기다리기 같고, 생명보험 같은 것,

빚지지 않는다면 종종 떠나리라, ‘심심하면 장독이라도 깨는’ 기분으로,

연습이 잦을수록 최후의 실전도 그만큼 우아할 터.

아직도 못 가본 땅, 인도대륙, 저 멀리 아마존 정글까지 누비리라,

원컨대, 순수 자연이 아닌 땀내 나는 원주민의 삶터에서

비까번쩍 마천루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용광로!

첨단 도시까지 휘파람 불며 유람하기 소원이네.

모름지기 소통이란

문명의 평균속도를 좇아가는 길,

그리 앞서지도, 그리 쳐지지도 않게

노세, 노세, 젊어 노세, 한 살이라도 젊어서 노세!

천지사방(天地四方) 동서고금(東西古今),

취한 듯 살다 꿈꾸듯 떠나가리라,

내 뜻대로 사는 게 정녕 천명(天命)일지니

종내 한탄이야 어이 남으리.

부울경신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