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소풍을 겸해 주말에 친구 부부들과 함께 경북 고령군을 찾았다. 대가야박물관, 지산리 고분군 등을 돌아본 후, 개실마을의 엿만들기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로 했다. 일방통행식 해설을 듣기보다 직접 민속 체험도 유쾌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의외였다. 개실마을 앞을 향하는 버스 속에서 참가 신청을 받았더니 단 네 사람이었다. 부랴부랴 한 달 전에 서른 명을 예약한 사실을 강조했고, 체험 비용도 개인 부담에서 공통경비로 바꿨다. 그래도 남자들은 싫다는 게 아닌가. 뒤쪽에서 농반진단 볼멘소리도 들려왔다.

“어이, 봐라! 우리 엿! 마이 무~따 아이가, 지긋지긋한데 뭘 또 엿이고?”

김홍도의 <씨름>-엿장수 소년의 모습이 당당하다.

실제 참가한 사람은 열두 명, 그 중에 남자는 필자를 포함하여 겨우 두 명, 졸지에 내가 ‘찌질이 남자’가 된 기분이었다. 당초 예약한 서른 명 인원대로 재료를 준비해 놓고 기다린 분들(할머니들)께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주차장까지 마중 나온 인상 좋은 어르신을 따라 체험장으로 갔다. 실내를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60 여명은 족히 넘을 듯한 청소년들이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한창 엿을 만들고 있었다. 흥겨운 잔치 분위기, 때마침 그날이 어린이날이라 다들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우리 일행은 열두 명은 다른 방에서 실습이 시작되었다. 솜씨가 재바른 강사 할머니가 전기밥솥 뚜껑을 여신다. 밥솥 안에서 달달한 냄새가 진동한다. 할머니는 찐득한 물엿을 한 주걱씩 떠내 쌀가루를 뿌려놓은 양은 소반에 내려놓으신다. 물엿은 호박(보석의 일종) 빛깔이었다. 옛날에는 지역·형편에 따라 고구마엿, 옥수수엿, 쌀엿도 만들었지만 지금은 쌀엿이 대세라고 한다.

할머니께 ‘초등학생들 가르치시기가 힘들지 않으세요?’ 하고 물었다.

“어른들이 훨씬 술코(수월하고)말고! 얼라들한테는 맹 같은 이야기를 월매나 하는지 원~”

“자~ 잘 봐유, 인자부터 이 물엿을 요로케 피는 거여”

참 보기 좋았다. 난생 처음 이처럼 당당한 할머니 강사를 만났으니 말이다.

엿을 적당히 식힌 후, 홍두깨 모양으로 엿 타래를 말아 당기는 작업이 시작된다.

‘오른 짝(손)은 그냥 쥐고만 있으라니 깨!’ ‘너무 시게 말고! 찬찬히 땡기라니 깨!’

수십 번을 거듭하자 엿 타래가 딱딱하게 굳어지며 흰색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런 다음 밧줄처럼 길게 늘였고, 막대기로 내려치자 엿가락이 토막이 났다. 가락엿이 완성된 것이다.

우리 어릴 적에만 해도 엿은 탐나는 주전부리였다. 엿장수에게 멀쩡한 고무신이나 낫자루를 엿과 바꿔 먹어 아버지께 혼이 났던 일, 화롯불에 강엿을 녹여주시던 할머니, 단옷날이든가, 누구 엿가락 속에 바람구멍이 더 큰가, 엿치기를 하던 일....... 엿의 추억은 우리 어릴 적만의 것이 아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홍도의 그림 ‘씨름’에도 등장하는 그 모습 그대로, 엿은 우리네 삶의 살가운 배경이었다.

달달한 추억들이 깃든 전통의 ‘엿’인데도 어쩌다가 ‘쓴맛’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을까? ‘엿 먹어라!’ ‘너나 엿 먹어!’ ‘엿 됐네!’ 하는 식으로 말이다. 특히 남자들끼리 군대나 직장생활에서 겪었던 쓴 맛은 모조리 ‘엿 먹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 연유가 어떻든 간에 조상대대로 전통의 간식으로 사명을 다해온 엿이 아니던가? 달달한 엿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오늘 ‘엿만들기’ 현장에서 보았듯이, ‘엿’은 청소년들보다 오히려 어른들로부터 홀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마치 한때마나 우리 스스로를 조롱하던 ‘엽전’ 타령과 흡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나는 흐뭇하기만 했다. 만드는 재미뿐만 아니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코흘리개 시절 추억까지 되살아났으니 말이다.

달달하고 따스한 엿 맛! ‘회춘(回春)의 묘약’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글/박하시인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늘 날아오르는 노고지리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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