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시즌의 막이 올랐다. 야구장마다 젊은이들의 함성으로 들끓는다. 그들은 왜 야구에 열광할까? 짐작컨대 그 이유는 ‘뒤집기’에 있지 않을까. ‘9회말 투아웃!’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만루 홈런을 꿈꾸는 경기! 야구의 매력은 끝까지 뒤집기의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하 시인

또한 경기규칙을 안다면 텔레비전의 실황중계만으로도 얼마든지 신난다. 홈팬의 입장에서, 또는 스스로 감독이 된 행복한 착각까지도 가능하다. 승부를 겨루는 경기가 다 비슷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야구의 인기가 높다. 그것은 적과 동지의 응원전이 불꽃을 튀게 하고, 9회까지 자주 판갈이가 있고, 그때마다 뒤집기의 희망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뒤집기의 재미로는 씨름도 빼놓을 수 없다. 야구장에서 열광하는 요즘의 젊은이들처럼 그들의 아버지 세대는 씨름에 열광했다. 특히 천하장사 씨름경기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 나라가 열광의 도가니였으니까 말이다.

덩치가 훨씬 큰 선수가 작은 선수에게 나가떨어질 때, 꺽다리 선수가 땅꼬마 선수에게 무릎을 꿇을 때, 내리 두 판을 지고도 내리 세 판을 이겼을 때, 역전의 순간은 얼마나 통쾌한가. 일례로 천하장사로 군림했던 이만기 선수는 ‘만 가지 기술’로 통했다. 그 말 속에는 덩치나 힘이 아니라 꼭꼭 숨겨놓은 기술(꾀)이 최고라는 뜻이 담겨있다.

뒤집기의 재미로 치자면 윷놀이는 더 짜릿하다. 여럿이 어울릴 수 있고, 전략 구사에 따라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뒤집기의 순간 환호성이 터진다. 십년 묵은 체증도 확 뚫린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고스톱’이다. 잡기(雜技)를 모르는 꽁생원이나 도덕군자야 그 경지를 어찌 알리오? ‘쓰리고!’를 외칠 때의 그 쾌감이라니! 더더구나 짧은 밑천으로 판돈을 싹 거둬들였을 때, 보리 밥풀로 잉어 한 마리를 낚는 기분이리라.

야구, 윷놀이, 씨름, 고스톱에서 보듯 한국인의 피 속에는 ‘막판 뒤집기’의 유전자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이처럼 ‘뒤집기’야 말로 신산한 내 삶의 에너지, 시들한 내 인생에 역전의 에너지를 듬뿍 충전시켜주는 듯이 짜릿하다. 이것이 바로 놀이의 순기능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놀이는 자칫 놀음이 된다. 놀이는 그야말로 망중한(忙中閑)으로 적당히 즐겨야지, 그 정도를 벗어나면 ‘놀이’가 아닌 ‘놀음’이 되고 만다. 곧 중독인 것이다. 일테면 로또복권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개중에는 일평생을 걸고 하는 정석 투자의 개념으로 기대수익의 10% 정도는 기꺼이 투자를 하겠다며 느긋이 장기전을 벌이는 이도 있단다. 이런 분들은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먹고 살기도 빠듯한 월급까지 탈탈 털어 로또복권을 산다면, 이는 일확천금을 위해 자신의 피를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놀이에서처럼 인생에서도 역전을 꿈꾸는 이들은 부지기수다. 야구, 고스톱, 주식, 복권, 경마, 경륜 등등, 따지고 보면 인생은 잡기로 가득 찬 놀이터이자 지뢰밭이기도 하다. 필자의 지인 중에는 한때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벌었던 이가 있었는데, 그 소문을 듣고 형제 친척들까지 위탁 투자로 큰 돈을 맡겼다가 결국 다함께 탈탈! 패가망신을 한 사람도 있다.

대박을 꿈꾸다 하루아침에 쪽박을 찼던 그 분, 놀라운 것은 그 분이 오랜 좌절을 딛고 또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주변을 놀래주었다. 그 분의 요즘 신조는 ‘안분지족(安分知足)’, 분수에 편안하면 능히 만족을 누린다. 인생 역전이 아니라 인생관 역전에 성공한 케이스다. 그는 건강한 생활인으로 컴백하여 주변의 존경까지 받으며 살고 있다.

당신의 인생을 야구에 비긴다면, 지금 몇 회전입니까? 지고 있습니까, 이기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9회말까지 어떤 전략을 펴시겠습니까? ‘배는 항구에 머물 때가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메어두려고 만들지 않았다.’ 인생의 뒤집기를 꿈꾸는 자여, 놀이에 빠져 헛고생 말고, 차근차근 승부수를 준비하라.

부울경신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