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 시인

인간 세상은 지난 한달 간 온통 선거 열기로 뜨거웠지만, 저희 까치 부부에게는 참담한 절망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니 저희 부부만의 절망이 아니라 대다수 까치들의 절망이었습니다. 이제 선거도 막을 내렸으니 부디 저 까순이의 호소에 잠시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이 땅의 까치들을 대신하여 눈물로 이 편지를 씁니다.

‘까작! 까작! 까작!’ ‘오늘은 반가운 손님이 오시려나, 기쁜 소식이 오려나......’

예전에는 길조(吉鳥)라고 반겼지만, 요즘에는 사람들이 우리를 간혹 천덕꾸러기로 부르기도 하지요. 일례로 수확기의 사과나 배를 찍어 흠집을 낸다고 과수원 농부들이 제일 싫어하는 줄도 압니다. 예전 까치들은 과수원의 해충들만 잡아먹었는데 요즘 까치들은 심술궂게 과일에 흠집을 낸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 까치들이 순전히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랍니다. 이 지경이 된 것도 알고 보면, 당신네 인간들이 함부로 쓴 농약 때문입니다. 그 바람에 우리 먹이인 해충이나 개구리들이 자취를 감춰버렸기 때문입니다. 배고파 헤매는 우리 입장도 제발 이해해 주세요.

변명부터 늘어놓은 저는 까치 까순이입니다. 저희 부부가 겪은 참담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예년처럼 올봄에도 새집을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작년에는 숲 속 아카시나무 위에 집을 지었다가 패가망신(敗家亡身)했습니다. 대낮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제 새끼들을 불한당에게 죄다 잃고 말았습니다. 불한당은 바로 청설모입니다.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 까식이랑 둘이서 청설모에 맞서 싸웠습니다. 죽자 사자 덤볐지만 도저히 불감당이었습니다. 하마터면 남편까지 잡아먹힐 뻔 했습니다.

올해는 산적 청설모가 덤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눈여겨 보아온 곳, 그곳은 사통팔달 시야가 훤히 트여 야밤에도 산적 떼의 염려가 절대 없는 곳, 다만 좀 시끄러웠지만 그게 뭐 대숩니까?

얼마 전 봄볕이 좋은 그 날, 우리는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둘이서 번갈아 널뛰기를 하듯이 나뭇가지들을 물어 날랐습니다. 등줄기에 땀을 흥건했지만 마냥 신났습니다. ‘까작! 까작! 까작!’ 벌써부터 새끼들의 옹알이가 들려오는 것 같았으니까요. 반나절은 너끈히 걸렸습니다. 바로 아래쪽에서 이따금 천둥 치듯 고속철(KTX)이 지나갔지만 이내 익숙해졌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져 보이는 법. 부르르 떨리는 것도 마치 안마처럼 시원하더군요. 우리는 가슴의 깃털을 뽑아 포근한 깃털 둥지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알을 다섯 개나 낳았지 뭡니까? 그리고는 제가 온종일 알을 품었고, 남편은 끼니까지 챙겨주었습니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던 그날 밤, 달빛 아래 단잠에 빠져있던 그때, 어디선가 저벅저벅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공중누각 같이 높다란 우리 집이니까요. 그 발자국 소리가 잣는가 싶더니 갑자기 꽝! 꽝! 청천벽력이었습니다. 화들짝 놀란 우리는 황망히 둥지를 빠져나왔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끔찍한 참변이었습니다. 곧 알에서 깨어날 우리 새끼들이 자갈밭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렸던 것입니다. 한밤중에 강도처럼 들이닥친 그들은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지긋지긋한 까치들, 둥지를 얼마나 야물게 지었는지 말이야!”

인간 여러분,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 자식 귀한 줄은 알고 남의 자식은 이토록 무자비하게 죽여도 된단 말입니까?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지구의 주인이 인간들만이 아닐진대, 우리 까치들과 정답게 살아갈 방도는 정녕 없는 겁니까? -2012년 4월 12일 까순이 올림.

부울경신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