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살아있다
- 북면 온천에서

                                    이 서 린
 

▲ 그림 이환희 화가

그 뜨거운 여름에 온천을 갔다. 가출하는 심정으로 빨간 버스를 탔다. 사는 것이 엿 같은 시절이었다. 그래, 마지막이다 목욕이나 하자. 안이나 바깥이나 숨 막히는 건 매 한가지. 시뻘건 얼굴로 밖에 나왔을 땐 노을이 울컥하였다. 목욕탕 담벼락엔 쪼글쪼글 내 심장 같은 맨드라미가 초라하였다. 맨드라미와 노을과 여름, 계속 살아야 하나? 나는 오래오래 고개 숙이다 왈칵 심장 한 덩이를 토해놓고 다시 버스를 탔다. 두고 온 심장이 생각난 어느 날 온천을 찾았다. 목욕탕은 근사하게 증축되었고 맨드라미는 흔적도 없고 나는, 아직, 살아있고

* 작가노트

▲ 이서린 시인

어릴 때 엄마와 갔던 북면 온천. 스무 살 무렵 여름에 온천을 갔다. 살아간다는 것이 견디기 힘든 시절. 죽거나 출가하거나. 그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하고 마지막 심정으로 목욕을 갔다. 가만히 있어도 푹푹 찌는 더위에 뜨거운 온천을 하고 나오니 얼굴은 불타는 것 같았다. 열을 식히려 그늘을 찾는데 맨드라미가 보였다. 나도 빨갛는데 너도 빨갛구나. 낡은 담 아래 핀 맨드라미는 이 여름을, 태양을 다 견디는구나. 한참을 쪼그리고 있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출가도 못하고 죽지도 않고 살아서 다시 북면 온천을 찾았을 땐 사라진 맨드라미. 나는, 살아있다.

* 이서린 시인은 ……

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2007년 《김달진창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저녁의 내부』가 2016년 <세종우수도서 문학 나눔>에 선정되었다. ‘주책’밴드, 날라리인문학 ‘돗귀’‘시시콜콜’회원이며 시문학연구회 ‘하로동선’ 동인으로 현재 문학치료강사로 일하고 있다.

▲ 기사제공 // 임재도 부울경뉴스 총괄본부장, 소설가, 시인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시인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공익지면입니다. 등단시인이라면 누구라도 이 지면을 이용하여 작품을 발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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