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받은 목숨의 빚 

                                                이 혜 선

▲ 함안 입곡저수지 전경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호흡기를 거쳐서 폐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러한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던 3월말까지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걸 잊고 있었다.
4월 초에 평소 가깝게 지내던 시인과 통화를 하였는데, 자기는 예전에 폐결핵을 앓은 적이 있어서 특별히 조심하고 전혀 외출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걸리면 죽으니까요”
그의 말이 나의 폐에 와서 걸렸다.
나는 비로소 나의 폐를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 언제나 무늬처럼 남아 있는 그 작은 점을 떠올렸다.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일이 있으면 마스크 하나에 나의 생명을 의지한 채 외출을 자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디쯤에서 나를 겨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위험의 바다 속으로. 회의도 있었고, 행사도 있었고 작은 모임도 있었다.
폐결핵은 한 번 걸리면 완치가 없다고 한다. 병균을 비활성화시켜서 구석으로 몰아 감옥 속에 가두어 둔다고 한다. 그래서 나의 폐 사진 속에는 지금도 작은 무늬처럼 오그라진 병균이 점으로 남아있다.

중학교 때 폐결핵을 앓았다.
경남 함안의 면 소재지에 있는 작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아마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우리 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 속 동네였기에, 초등학교에 이어서 중학교도 고개를 넘어서 들판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가야 도착하는 신작로 가에 있었다.
학교에 가려고 고개를 올라가면 몇 번을 쉬어야 했다. 그리 높은 고개가 아니었고 초등학교 때도 계속 넘어 다니던 고개였는데, 그 때는 나의 폐가 제대로 역할을 못해주었던 것 같다. 가슴에서 둥둥둥둥 북을 울려대었다. 엄마 따라 한 두 번 가 본 방앗간의 방아 찧는 소리가 가슴에서 울려나왔다.

겨우 학교에 갔다 와서는 아버지께서 챙겨주시는 “파스와 스트렙토마이신”을 들고 아랫동네 안터의 한지의사에게 주사를 맞으러 다녔다. “폐결핵에 항생작용이 있는 스트렙토마이신 발견”으로 1952년 미국의 샐먼 왁스만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고, 그 약이 일반화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퍽 귀한 약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여름에 시작해서 계절이 바뀌고도 한 참을 다닌 것 같으니 6개월이라는 폐결핵 치료기간을 다 채운 것 같다.

1960년대 중반이었으니 BCG 접종도 못했을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1965년 전인구 중 5.1%의 양성결핵환자 가운데 중증환자가 0.6%나 되었다”는 통계가 있다.
6·25라는 비참한 전쟁으로 야기된 국민경제의 파탄, 심신의 고통과 의지의 상실 등은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켰다. 사망률도 높았다. 그 당시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을 상징하는 나라의 대표적인 전염병이었던 결핵에 내가 걸렸는데, 제대로 잘 치료하고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모님의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당시 6년제 함안중학교를 다녔으며 서당공부와 신식공부를 같이 하신, 시골에서는 엘리트였다. 일제 강점기의 젊은 시절에 함안군청과 마산시청에 근무하다가 낙향하여, 내가 어릴 때는 선산과 종가를 돌보며 종손역할에 충실하며 농사감독을 하며 지내셨다. 우리 집 대청마루에는 서류궤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각종 서류와 함께 간단한 의약품이 들어 있었다. 당시는 온 나라가 가난할 때인지라 어린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고, 살아남은 아이들도 영양결핍 때문인지 유난히 부스럼과 버짐이 많아 머리에 얼굴에 덕지덕지 달고 다녔다. 아버지는 의약품을 갖춰놓고 이런 동네아이들을 정성껏 치료해주셨다. 옥열리 전체에서 신문을 구독하는 집은 우리 집뿐일 정도로 가난하고 문맹자도 많고 어렵던 시기였다.

어머니도 본래 너그러운 성품과 함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동네의 어려운 분들을 잘 보살폈다. 어머니는 함안면의 대 부호집 막내딸로 종을 거느린 집안에서 자라나 가난한 서생에게 시집와서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다. 결혼 전에는 오빠들이 만들어준 한지 책에다 사친가와 내방가사, 소설 등을 여러 권 필사해서 시집올 때 가지고 오신 지식인이었다. 이러한 두 분의 교육열과 지식수준 덕분에 나는 당시로서는 귀한 폐결핵 치료제를 챙겨들고 매일 주사를 맞으러 다니고 그 덕분에 깨끗이 나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도 오래되어서 지금 생각나지는 않지만 딸의 병 치료를 위해서 어머니는 음식에 얼마나 신경 쓰셨을까. 입이 짧아서 이것저것 듬뿍 먹지도 않는 딸을 보면서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당시 시골에서는 병에 걸려도 치료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이 많았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고개 옆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죽으면 흙으로 묻지 못하고 돌멩이로만 무덤을 만든 애장터가 있었다.
“연아연아 말연아
죽지 말고 살아라
나부치마 해주꺼마”
어린 시절에 이런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 치료는커녕 돈이 없어서(밥도 굶던 시절이었으니) 병원에도 못가보고 속절없이 죽어가는 아이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심정을 대신해서 이런 가슴 아픈 노래가 생겼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부모님께 목숨을 두 번 받은 것이다.
어머니가 나를 낳아주실 때도 6·25전쟁 중에 김해 진영 동산마을로 피난 가서 피난지에서 어렵게 낳으셨다. 두 칠이 안 된 아기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남들은 식구가 줄었는데 우리는 식구가 불어났다고 무척 기뻐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열 서너 살에 죽을병에 걸린 것을 또 살려놓으셨으니…….
어쩐 일인지 그 뒤로 부모님은 나의 폐결핵치료와 그 때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이 내 자신의 덕분이라는 듯이 나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오죽하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폐렴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나의 폐결핵 경력을 떠올리지도 않고 있었으니…….

지금은 두 분 모두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새삼 사무쳐오는 부모님의 큰 사랑!
그러나 아무리해도 이 큰 사랑의 빚을 그분들께는 갚을 도리가 없으니 참 숙연해진다.
누구를 더 많이 사랑하고 누구에게 이 큰 빚을 갚아야할까.
나라는, 하찮다고 하면 하찮고, 귀중하다면 귀중하다고 할 수 있는 한 생명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이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세상에게,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이 큰 사랑의 빚을 갚고 죽어야 하는 큰 소명召命이 있는 것이다.
나의 생명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더 많이 사랑하며 작은 것이라도 베풀며 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한다.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적더라도,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재칠시無財七施를 행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
우선 화안한 얼굴로 모든 생명을 향해 웃으며 손을 내민다.

▲ 이혜선 시인은 ……

▲ 이혜선 시인

1950년 경남 함안 출생. 1981년『시문학』천료. 시인. 문학박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문체부 문학진흥정책위원.
시집『흘린 술이 반이다』『운문호일雲門好日』『새소리 택배』등 6권. 저서『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명시산책』
윤동주문학상, 예총예술문화대상, 현대시인상, 동국문학상, 문학비평가협회상(평론) 외 다수 수상. 세종우수도서 선정(2016). 동국대 외래 교수, 세종대, 대림대, 신구대 강사역임.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 ⟪현대향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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