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천지에 봄은 오는데

                                                 이 혜 선

▲ 사진제공 임재수 사진작가

꽃을 보면 눈물 난다
격리병실 창 너머로 찍었다고
대구에서 그대가 손전화로 보내준 꽃

언제였던가
그대와 나란히 저 활짝 핀 벚나무 아래 걷던 날이
그저 웃고 얘기하며 우리들
함께 모여 마주 앉아 밥 먹던 꽃피는 시간 아래

함께 피어서 더 아름다운 수만 송이 수선화
소복소복 모여 피어나는 제비꽃동무들
너희들은 코로나를 모르니 마스크가 필요 없구나
죄 없이 웃고 있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불러들인 인간들의 죄와 탐욕
마스크 하나로 가려지지 않는 이기심
용서해다오
수선화야 개나리야

박쥐야 낙타야 인수공통감염병을 모르는
너희들아, 죄 없는 이 땅에 오는 새봄아
나의 죄를 용서해다오
목숨을 돌려다오, 나날의 작은 기쁨들을
돌려다오

*인수공통감염병: 동물이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사람에게 전파되는 질병

▲ 작가노트

▲ 이혜선 시인

자성自省과 사죄의 시간

봄이 무르익어 어느덧 가려하고 있다.
어제 영종도 가까이 있는 무의도 바닷가에서 만난 늦은 봄이 아름다웠다.
바닷가에 있는 작은 산들은 색깔 대비가 선명해서 연두와 연보라와 초록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바다 쪽 바람맞이 언덕에는 침엽수인 소나무가 울창하고, 그 반대쪽에서 햇살을 받고 있는 곳에는 굴참나무와 단풍나무와 산벚나무가 연한 새잎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서해 바다는 강한 봄바람을 맞아 개펄과 진한 사랑을 나누었는지, 전에 없이 개펄빛을 띈 연한 흙빛 얼굴로 파도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피해서 이렇게 자연 쪽으로만 마음을 열어놓고 대화하다가 쓸쓸히 돌아왔다.

2020년 1월부터 전 세계에 퍼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렇게 사람을 피하게 하고 사람을 불신하게 만든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행여나 누구와 대화를 해야 될 때도 2미터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되니, 그대와 손 마주 잡고, 웃으면서 함께 밥 먹던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박쥐와 낙타는 잘못이 없다.
끝없는 인간의 욕심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개인주의, 신의 영역에까지 침범하려하는 인간의 오만, 이 모든 것들에 제동을 걸고 한 발 물러서서 자성自省하게 만드는 바이러스의 교훈을 우리는 잘 새겨야만 한다.
발달한 의술의 힘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정복이 되겠지만, 우리는 그 교훈을 잘 새겨서 잊지 말아야한다. 아마도 세계는 코로나 이후에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우주 속에서, 지구 위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에 외경심을 지니고 함부로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함부로 훼손한 자연 앞에, 동물과 식물 앞에 오만을 사죄해야 한다.
나날의 작은 기쁨을 소중하게 여기고 작은 행복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
함께 모여 있어서 더 아름다운 작은 풀꽃들처럼 사소한 정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일상의 행복을 빨리 되찾게 되기를 빈다.

▲ 이혜선(李惠仙) 시인은 …… 

1950년 경남 함안 출생. 1981년 『시문학』 천료. 시인. 문학박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문체부 문학진흥정책위원.
시집 『흘린 술이 반이다』 『운문호일雲門好日』 『새소리 택배』 등 6권.

저서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 『문학과 꿈의 변용』 『이혜선의 명시산책』.
수상 윤동주문학상, 예총예술문화대상, 현대시인상, 동국문학상, 문학비평가협회상(평론) 외 다수 수상. 세종우수도서 선정(2016). 동국대 외래 교수.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시의 대중화를 위한 공익지면입니다. 등단시인이라면 누구라도 이 지면을 이용하여 작품을 발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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