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코 하몬jamon

                                                조 승 래

스페인 도토리숲속 농장에서 자란
검정 돼지 뒷다리를 소금물에 담갔다가
한 삼 년 정성껏 숙성시키면
엄청 고가품이 되어서
종이처럼 얇게 포를 떠서 팔리는데
아무거나 주는 대로 먹고 자란 막돼먹은
돼지는 뭉텅이 고기로 싸게 팔리는데
다람쥐와 먹이 찾기 다툼에 열심히 끼어든 놈이
훨씬 비싸게 팔린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돼지는
넓은 숲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기만 하고
도토리 키 재기에 오늘도 바쁘기만 하고

* 작가 노트

▲ 조승래 시인

중국도 돼지 전염병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14억 인구가 연간 5억 마리의 돼지를 소비하는데, 대략 5천만 톤이다. 닭이나 토끼로 보완할 수 없는 분량이고, 대응을 제대로 못하면 경제가 휘청거리게 되고 그러면 걷잡을 수 없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전염병 화산을 막기 위해 특정 지역 돼지를 전부 살처분 매장도 했다. 이산화탄소로 질식이 덜 된 돼지들은 살려달라고 구멍에서 기어오르고 이를 집행하던 공무원은 정신적 충격으로 치료를 받고 스스로 극단 선택을 하기도 했다. 닭도 소도 돼지도 인간들의 잣대로 생매장된다.

스페인 도토리 숲속에서 자란 이베리코 돼지는 방목을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받고 육질이 좋아 인기가 높다. 잘 가공된 것은 아주 고가로 팔리고 얇게 저민 고기와 야채로 제공되는 하몽 플래터는 미식가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귀한 대접 받으면서 사육되는 도토리 숲속 돼지들은 제 몸 값을 알 리가 없다.

손수건 한 장 면적위에서 평생 서서 살다가는 양계장 닭들, 좁은 우리에서 정말로 돼지 취급 받는 돼지들 보다는 숲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면서 사는 그 돼지들이 더 행운이다. 행복지수가 뭔지도 모르고 고통 받고 자라는 다른 돼지들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면서 깜깜해서 올려다 본 하늘은 얼마나 푸르고 공기는 얼마나 신선하고 쾌적하며 새까만 털도 윤기가 반지르르 한 줄도 모른 채 가장 즐거운 지금 땅바닥을 뒹군다.

▲ 조승래(趙勝來) 시인은 경남 함안 출생으로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몽고조랑말』『내생의 워낭소리』『타지 않는 점』『하오의 숲』『칭다오 잔교 위』『뼈가 눕다』등을 펴냈다. 『칭다오 잔교 위』는 2015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에 선정되었고 ≪제3회 영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아노텐금산(주) 대표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현재는 씨앤씨 와이드(주) 대표로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