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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교향곡, 연재 제47회 <진실을 위한 용기>
김영미안  |  anteaj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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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9  07: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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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교향곡, 연재 제47회 <진실을 위한 용기>
Symphony in C minor ‘Fate’

   
 

진실을 위한 용기

준하는 왜 기영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접견을 거부한 그날 이후, 기영은 몇 번이나 더 교도소로 찾아갔으나 준하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혹시 준하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기영은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그러나 기영의 우려와는 달리 다시 법정에 선 준하의 태도는 여전히 당당하고 침착했다. 그날 밤 태종대 바위절벽에서 기영과 손나영이 겪은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준하가 상상이나 했을까.

― 증인 손나영, 나와 주십시오.
언제나 절제된 곽 판사의 음성.

기영은 방청석에서 일어나 증인석으로 나오는 손나영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에 있었던 끔찍한 봉변 탓인지 얼굴이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 그러나 선서를 위해 증인석에 선 그녀의 태도도 준하처럼 절제된 기품이 있었다.

― 증인의 이름, 주소……. 증인은 선서해 주십시오.

용훈이 손나영을 증인으로 신청할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만약 검사인 용훈이 신청하지 않았다면 변호인인 기영 자신이 했을 것이다. 어쩌면 준하의 운명은 오늘 손나영의 증언에 의하여 결정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용훈의 꽹과리소리가 준하의 춤과 잘 어울릴 것인가. 손나영에 대한 인정신문과 증인선서가 진행되는 동안 기영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

― 검사는 신문해 주십시오.

굿판을 펼치라는 곽 판사의 북소리.
용훈이 꽹과리를 들고 나선다.
 
   
 

김용훈 검사(증인 손나영에게)

문 : 증인은 고 홍한일 박사를 압니까?
답 : 예. 그러나 제가 박사님을…….

― 증인은 묻는 말에만 답해 주세요.
용훈이 손나영의 말을 중단시킨다.

문 : 다시 묻겠습니다. 증인은 고 홍한일 박사를 압니까?
문 : 예.문 : 증인은 19××. ×. ×. 19:00경 부산 **동에 있는 춘미관이라는 요정에 간 적이 있나요?
답 : 없습니다.

문 : 오래 전 일인데, 증인은 춘미관이라는 요정에 간 적이 정말 없습니까?
답 : 없습니다. 지금도 춘미관이라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곳이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문 : 그렇다면 19××. ×. ×. 19:00경, 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증인은 어디에 있었나요?
답 : 검찰청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문 : 그때 증인이 유치장에 수감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요?
답 : 마약을 복용하여 구속되었기 때문입니다.
문 : 당시 증인의 마약복용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검사가 김인환 검사였습니까?
답 : 예.
문 : 증인이 말한 김인환 검사는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 김인환 이 맞습니까?
답 : 예.

문 : 19××. ×. ×. 19:00경, 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증인은 김인환 검사의 방으로 불려간 사실이 있지요?
답 : 예.
문 : 그때 불려간 증인에게 김인환 검사가 직접 신문을 하고 신문조서를 작성했나요?
답 : 아닙니다. 그때 검사는 어떤 신문도 하지 않았고, 어떤 조서도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문 : 그렇다면 그때 김인환 검사는 증인에게 어떤 일을 했나요?
답 : 저를 감방에 보내야겠다고 겁을 주면서, 그러나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석방시켜 주겠다고 했습니다.
문 : 그래서 증인은 김인환 검사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하였나요?
답 : 예, 그때 저는 어렸고, 너무도 겁이나 석방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문 : 그래서 김인환 검사가 증인에게 어떠한 일을 하였나요?
답 : 저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갔습니다.
문 : 김인환 검사가 직접 데려갔나요?
답 : 예. 그가 직접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습니다.
문 : 그때 김인환 검사가 증인을 데려간 곳이 M룸살롱이었나요?
답 : 예,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그곳이 M룸살롱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 : 지금까지의 증인의 증언을 종합요약하면, 그날 증인이 M룸살롱에 가게 된 것은 춘미관이라는 요정에서 홍한일 박사를 만나 술을 마신 후 홍 박사와 함께 간 것이 아니라, 당시 검찰청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증인을 김인환 검사가 직접 자기 차에 태워 데리고 갔다는 것인데, 맞습니까?
답 : 예.
문 : 그때 증인이 M룸살롱에 도착한 시간은 몇 시쯤이었나요?
답 :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아마 밤 열한시쯤 되었을 것입니다.

문 : M룸살롱에 도착한 이후, 김인환 검사가 어떤 일을 했나요?
답 : 저를 어느 방으로 데려가더니, 그곳에 미리 와 있던 두 사람에게 저를 인계하고 곧바로 돌아갔습니다.
문 : 그때 김인환 검사가 증인에게 특별히 어떤 말을 했나요?
답 : 그 두 사람이 시키는 대로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때 용훈이 신문을 멈추고 곽 판사에게 말했다.
― 재판장님, 지금부터 진행될 신문은 여성의 성적수치심을 심하게 자극하는 내용입니다. 증인의 인권보장을 위하여 비공개 신문을 요청합니다.

용훈의 말이 끝나자, 준하가 고개를 돌려 용훈을 바라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용훈의 배려에 대한 동감의 뜻일 것이다.

―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예기치 않은 손나영의 말. 모두가 손나영을 바라보았다. 그때 피고인석에서 준하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 재판장님, 검사님의 말씀대로 비공개로 진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준하의 행동 또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

― 아닙니다. 저는 이대로 증언하겠습니다. 저를 배려해 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이 법정에서 많은 방청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언제나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면 그 행위를 하게 만든 영혼이 이끄는 용기에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제 영혼이 이끄는 용기에 따르겠습니다.

손나영의 얼굴은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로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배석판사들과 잠깐 의논을 한 곽 판사가 말했다.
― 검사는 계속 신문해 주십시오.
 
   
 

김용훈 검사(다시 증인 손나영에게)

문 : 김인환 검사가 돌아가고 난 후 그 두 사람이 증인에게 어떤 일을 하였나요?
답 : 그중 한 사람이 먼저 맥주잔에 양주와 맥주를 섞은 술을 강제로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맥주에 마약을 타서 또 강제로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테이블 위에 올려 세우고 옷을 모두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문 : 그래서 스스로 옷을 벗었나요?
답 : 아닙니다. 제가 겁을 먹고 머뭇거리며 서 있자, 다른 한 사람이 칼을 꺼내어 제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잘랐습니다.
문 : 그냥 옷을 벗긴 것이 아니라 칼로 옷을 모두 잘라 벗겼다는 말인가요?
답 : 예, 칼로 단추와 소매를 모두 잘라 옷을 벗겼습니다. 그때가 더 두려웠습니다. 문 : 그리고는요?
답 : 테이블 위에 등을 대고 똑바로 눕게 했습니다.

― 증인, 이 법정은 피고인뿐만 아니라 증인의 인권도 보호합니다. 비공개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곽 판사가 손나영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손나영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손나영이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고 결연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 배려해 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대로 하겠습니다.

김용훈 검사(다시 증인 손나영에게)

문 : 그래서 증인은 완전한 나체로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테이블 위에 누웠습니까?
답 : 칼로 위협하고 있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 : 그때 두 사람이 증인에게 성폭행을 했나요?
답 : 아닙니다.

문 : 그럼 그 두 사람이 무슨 일을 했나요?
답 : 제가 테이블 위에 눕자, 제게 마약을 탄 맥주를 마시게 했던 사람이 일회용면도기로 저의 음모를 깎았습니다.
문 : 그때 증인은 반항하지 않았나요?
답 : 다른 한 사람이 목에 칼을 대고 있어 반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 잠깐만요. 검사의 지금 신문은 이 사건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요? 이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사항은 증인의 인권보호를 위해서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곽 판사가 다시 신문을 중단시켰다.

― 피고인 김준하의 살인 동기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증언입니다.
용훈이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김용훈 검사(다시 증인 손나영에게)

문 : 이후 그 두 사람이 증인에게 어떤 일을 하였나요?
답 : 여고생 교복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문 : 교복은 증인이 준비한 것이었나요?
답 :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문 : 그래서요?
답 : 제게 교복을 입혀 다른 방으로 저를 끌고 갔습니다.
문 : 그 방에는 누가 있었나요?
답 : 한복을 입은 어떤 은발노인이 윗저고리를 풀어헤친 채 소파에 기대앉아 있었습니다.

문 : 그 은발노인이 증인에게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나요?
답 : 아닙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그때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저를 끌고 온 그 두 사람과 제가 그 방에 들어온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문 : 그 방안에서 증인을 끌고 간 그 두 사람은 어떤 일을 하였나요?
답 : 처음 마약을 탄 맥주를 마시게 했던 사람이 또다시 맥주에 마약을 타서 강제로 마시게 했습니다.
문 : 그리고는요?
답 : 교복을 입은 채로 테이블 위에 눕게 했습니다.

문 : (이때 ××고합7894 수사기록 중 ‘현장사진’을 증인에게 제시) 이 사진 속의 여자는 증인이 맞는가요?
답 : 예, 맞습니다.
문 : 이 사진 속에는 교복 상의가 열린 채로 유방이 드러나 있고, 스커트자락이 허리 위로 걷혀 음부가 드러나 있는데, 이런 모습은 증인이 스스로 시연한 것인가요?
답 : 아닙니다. 저에게 마약을 먹인 사람이 그렇게 했고, 다른 사람이 저의 목에 칼을 대고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문 : 방금 증인이 말한 한복 입은 은발노인은 이 사진 속 남자를 말하는가요?
답 : 예.
문 : 이 사진에는 은발노인이 증인의 음부 아래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있는데, 이것은 은발노인이 증인을 성추행하는 모습인가요?
답 :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 사람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의식조차 없는 사람이 어떻게 성추행을 할 수 있나요. 이런 모습으로 만든 사람도 그 두 사람입니다. 그것은 제가 직접 겪은 사실입니다.

문 : 당시 상황에 비추어보면 증인은 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지금 증인은 착각에 빠졌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요?
답 : 두 번째 방에서 강제로 테이블 위에 눕혀진 후 의식이 많이 혼미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여성이라도 그와 같은 수치스런 일을 당했다면 그것만은 기억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우려고, 또 지우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감정이 격해진 손나영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참고 있던 손나영이 끝내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기영은 준하를 보았다. 준하도 눈물을 감추려는 듯 어금니를 꽉 깨물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용훈 검사(다시 증인 손나영에게)

문 : 그 방안에 있던 두 사람은 누구였나요? 증인은 그 두 사람을 알고 있나요?
답 : 제게 마약을 먹인 사람은 최경호라는 사람입니다. 최근에 알게 되었지만 그 사람은 국회의원 보좌관이었습니다.
문 : 그 사람이 최경호 보좌관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답 : 지난번 선거기간 동안에, 김인환 검사의 살인 사건과 관련하여 신문과 방송에 보도된 그 사람의 사진을 보고 알았습니다.

문 : 그때 추행 사건이 있었던 날로부터 지난번 선거기간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그래도 기억할 수 있었나요?
답 :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의 얼굴을 제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오히려 더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지금도 그리라면 그림이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 : 최경호 보좌관의 얼굴이나 외모에 뚜렷한 특징 같은 것이 있었나요?
답 : 얼굴이 바둑판처럼 사각형이었고, 왼쪽 뺨에 큰 점이 있었습니다. 머리카락도 여자처럼 길었습니다.
문 : 최경호 보좌관과 함께 있었던 또 한 사람은요?
답 : 이름은 모르지만 광대뼈가 툭 튀어나오고 눈이 움푹 꺼져 마치 해골 같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한밤중에 태종대전망대에서 저를 죽이려고 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문 : 증인이 두 번째 방에서 본 은발노인은 고 홍한일 박사였지요?
답 : 예.
문 : 증인은 그 사람이 홍한일 박사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요?
답 : 그 당시 현장에서는 그 사람이 홍 박사님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박사님께서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하였다는 신문보도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문 : (이때 ××고합7894 수사기록 중 ‘피의자신문조서’를 증인에게 제시) 그런데 증인이 작성한 이 피의자신문조서에는 이제까지의 증인의 진술과는 전혀 다른 진술이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이 신문조서는 제가 작성한 것이 아닙니다.

문 : 그렇다면 이 조서에 날인된 서명은 증인이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답 : 서명은 제가 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김인환 검사가 미리 작성해 놓은 조서에 단지 서명만을 했을 뿐입니다.
문 : 그때 김인환 검사가 신문조차 하지 않고 미리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해 놓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답 : 예.

문 : (이때 ××고합7894 수사기록 중 ‘진술서’를 증인에게 제시) 이 진술서는 증인이 작성한 것이 맞습니까?
답 : 예, 맞습니다.
문 : 이 진술서 내용도 지금 이 법정에서의 증인의 증언과는 전혀 다른 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그것은 김인환 검사가 직접 작성한 진술서를 제가 그대로 베껴 적었기 때문입니다.

문 : 검사가 시킨다고 해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진술서를 작성했다는 말인가요?
답 : 예, 그 진술서는 제가 고문을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베껴 적은 것입니다.
문 : 진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 증인에게 다른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말인가요?
답 : 예. M룸살롱에서의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저는 다시 김인환 검사에게 불려갔습니다.

문 : 그곳이 어디였나요?
답 :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창문도 없는 밀폐된 작은 방이었습니다.
문 : 그곳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말인가요?
답 : 예.
문 : 어떤 고문을 당했나요?
답 : 스펀지방망이로 맞았습니다.

문 : 구체적으로 말해 주세요?
답 : 그 방에 들어가니 김인환 검사가 있었습니다. 검사가 진술서라고 적힌 종이를 제게 주면서 그 내용이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읽어보고 아니라고 하니까 잠시 후에 어떤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이 저의 옷을 모두 벗기고 팔과 다리를 의자에 묶었습니다.

문 :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았나요?
답 : 아뇨. 보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검은 안경을 쓰고 하얀 마스크를 끼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인 것 같았습니다. 마치 안경을 쓰고 붕대를 친친 감은 투명인간 같았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문 : 그 다음은요?
답 : 그 사람이 스펀지방망이로 제 배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기절을 했다가 깨어나니 검사가 다시 진술서의 내용이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또 맞을 까봐 두려워 거짓으로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 진술서의 내용이 사실이 아닌데도 고문을 당할 까봐 거짓으로 사실이라고 말했다는 것인가요?
답 : 예, 그런데 사실이라고 하는 데도 또 때렸습니다. 사실이라고 해도 때리고, 아니라고 해도 때리고, 그러는 동안에 몇 번이나 기절을 하고, 그대로 가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아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문 : 그런 고문을 당한 후에 김인환 검사가 적어준 그대로 증인이 베껴 적은 것이 이 진술서라는 말인가요?
답 : 예, 아마도 똑같은 내용을 열 번 이상 반복하여 적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도 매질은 계속되었습니다. 발가벗겨진 상태에서 바닥에 엎드린 채, 똑바로 적지 않는다고 등에 매를 맞으면서 베껴 적은 열 개가 넘는 진술서 중 하나가 이 진술서입니다.

손나영의 눈에 다시 눈물이 흐르고 목소리가 울음에 잠겼다. 이와 같이 적나라하게 증인신문을 하는 용훈의 의도는 명백하다. 김인환이 살해당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피살 동기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피살 동기는 살인 동기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드디어 마지막 칼을 빼어드는 용훈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렸다.

문 : 증인, 분명하게 말하세요. 증인은 지금 김인환 검사의 유족들이나 최경호 보좌관으로부터 명예훼손이나 위증죄로 피소당할 수도 있는 아주 중대한 사실에 대하여 증언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증인은 분명히 있었던 사실 그대로 말했나요?
답 : 예. 지금까지 한 모든 것은 사실 그대로 입니다.
문: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증인의 지금까지의 증언은 모두 사실인가요?
답 : 예. 단 한 점의 거짓도 없습니다.

문 : 증인은 홍익문화연구소의 김준하 소장을 아는가요?
답 : 예.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입니다.
문 : 증인이 가장 존경하는 그 선생님이 지금 여기 이 법정에 있는 피고인 김준하인가요?
답 : 예, 그렇습니다.

문 : 증인은 지금까지 이 법정에서 증언한 모든 사실을 피고인 김준하에게 말한 사실이 있지요?
답 : 예.
문 : 그때가 언제였나요?
답 : 제가 그 일로 교도소에서 2년을 복역하고 나와 1년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문 : 증인, 정리하겠습니다. 증인이 위에서 말한 M룸살롱에서 마약을 복용한 혐의로 2년형을 받고 복역한 후, 출소한 지 1년쯤 지난 시점에서 증인은 여기 있는 피고인 김준하에게 지금까지 증언한 모든 사실을 분명이 말했다는 것이지요?
답 : 예.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 이상입니다.

   
 

곽 판사 : 피고인 김준하의 변호인은 반대신문 해 주십시오.

기영이 징을 들고 나선다. 그러나 징의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
― 증인에게 묻겠습니다.
― 잠깐만요. 재판장님, 반대신문을 하기 전에 피고인 김준하에게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피고인 김준하…….

용훈의 의도는 눈에 보인다. 순간적인 기습신문으로 자신이 의도하는 진술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징을 울려 준하에게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 지금은 변호인에게 주어진 반대신문 시간입니다.
― 피고인 김준하에 대한 신문은 나중에 별도로 시간을 주겠습니다. 변호인은 신문해 주십시오.

박기영(증인 손나영에게)

문 : 증인은 지금까지 증언한 그 사건으로 출소한 이후에도 심한 적응장애와 알코올의존증에 빠져 고통을 겪고 있었지요?
답 : 예. 출소 후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던 저는 결국 다시 술집에 나가게 되었고, 매일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그때 당한 고문의 기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문 : 그런 힘든 상태에 있는 증인을 찾아온 사람이 피고인 김준하였지요?
답 : 예.
문 : 그때 김준하가 증인에게 어떤 일을 하였나요?
답 : 저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하였습니다.
문 : 증인이 김준하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한 기간은요?
답 : 약 3개월 정도였습니다.

문 : 그 이후는요?
답 : 제가 퇴원을 한 후, 선생님께서는 홍익문화연구소 근처에 제 숙소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병원비와 생활비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선생님께서 근무하시는 연구소로 나오게 하여 단전호흡 수련과 명상 치유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문 : 그러한 수련과 명상치유를 통하여 증인의 건강은 회복되었나요?
답 : 예. 그때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저는 생명의 고귀함과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제가 고문의 기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문 : 증인이 오늘 이 법정에서 증언한 사실들을 김준하에게 언제 말했던가요?
답 : 어느 날 명상치유시간을 마쳤을 때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셨던 진정한 자아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때 펑펑 울면서 선생님께 말씀드린 것이 오늘 증언한 모든 사실들입니다.

문 : 그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김준하가 그때나 그 이후 어느 때라도 그 사람들에게 보복을 하겠다고 한 적이 있나요?
답 : 아닙니다. 그때 선생님은 오히려 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홍익하는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이고, 홍익하는 사람은 자비로운 사람이고, 홍익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홍익하는 사람은 신령스러운 사람이고, 홍익하는 사람은 신성의 빛 속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문 : 그때 김준하는 분명히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답 : 예, 그때 선생님께서는 제가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면, 언제나 증오와 복수심을 안고 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저의 영혼에서 자애로운 신성의 빛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용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용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이상입니다.

― 피고인 박형기의 변호인은 신문하시겠습니까?

강성모 변호사(증인 손나영에게)

문 : 증인이 그와 같은 일을 겪는 과정에 피고인 박형기가 그 일에 관여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었나요?
답 : 없었습니다.

― 이상입니다.

곽 판사(증인 손나영에게)

문 : 증인은 오늘 이와 같은 증언을 왜 그때 재판과정에서 하지 않았습니까?
답 : 그때 김인환 검사는 제가 만약 재판에서 진술서 내용과 다른 말을 하면 이제까지 당한 고통보다 더 지독한 고문을 당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재판에는 항상 김인환 검사가 나왔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사실대로 말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 이상으로 증인 손나영에 대한 증인신문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증인은 수고하셨습니다.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이때 증인석에서 벌떡 일어선 손나영이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 재판장님,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결코 살인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 참고하겠습니다. 다음 증인 신문을 하기까지 30분 동안 휴정하겠습니다.

증인석에서 내려오는 손나영의 눈빛이 애처로웠다. 준하의 입가에 알 듯 모를 듯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다음 검색창》에서 『살인 교향곡』을 검색하시면, 지금까지 연재된 모든 연재물(연재 제1회부터 제46회까지)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연재 제48회 <새로운 증언>은 2019. 9. 16.(월) 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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