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연재 제39회 <사건의 원인>
Symphony in C minor ‘Fate’

제4악장
Allegro C장조 4/4 박자

저 어린 아이의 생명에너지는
이미 바닥이 났을 터
아이가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여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그래, 너의 그 여린 눈빛이라도 한번 보내주렴.
그때 뒤편 모래언덕 위에서
어른거리는 사막의 열기를 후광처럼 두르고
사자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눈부신 태양광선의 흑점을 뚫고
맹렬한 기세로 사자가 달려왔다.
은빛 갈기 속에 번쩍이는 이빨이
아이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짧게 부르짖는 날카로운 비명소리!
비명소리가 들린 곳에서
붉은 모래먼지가 잠시 피어올랐다가
사막은 다시 한낮의 정적 속에 잠겨들었다.

눈물은 보이지 말자.
눈물은 가슴으로 흘려 내리자.
물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물을 찾아야 한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는 지친 발목에 힘을 주고
다시 뜨거운 사막의 열기 속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가슴에는 슬픔보다는
아직도 그를 의지하며 따라오는
남은 일행들의 생존에 대한
안타까운 의지가 가득 자리 잡고 있었다.

사건의 원인
 

사건의 실체와 원인,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다. 정시영은 혼란에 빠졌다.

처음에는 최경호의 범행으로 쉽게 귀결되는 듯 했다. 그러나 베일 속에 가려진 음성메시지의 두 번째 정보로 김준하라는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전격적으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오늘 공판에서 김준하와 정해현의 연결고리가 밝혀졌다.

여기에는 분명 아직 수사기관이 밝혀내지 못한 다른 인과관계가 얽혀 있을 것이다. 이제 누가 범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피살자와 김준하, 정해현 사이에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가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는 길이 될 것이다.

오늘 공판에서 김준하의 전과에 나타난 상해 사건과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러나 그의 법정진술처럼, 어쩌면 이 두 사건이 살인의 동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 누가 살인자이냐의 여부를 떠나 적어도 이 사건에서의 살인의 동기는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사건의 실체와 원인,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

오후 시간 내내 법정공방을 지켜보고 있던 정시영은 우선 공판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법정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정해현의 의원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김준하의 진술과 관련한 정해현 본인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

방송국으로부터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은 후, 정해현은 이제 최경호를 정리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진짜 살인자일지도 모를 최경호를 곁에 두었다가는 언젠가는 큰 탈이 날 것이다.

그런데 최경호가 과거 정해현이 저지른 모든 음모와 공작을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까지 최경호는 정해현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주인이 한 일을 그 수족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최경호가 과거의 일을 발설해 버린다면 국회의원으로서 정해현의 도덕성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이럴 경우, 정치생명 자체가 위태롭다.

그렇다면 최경호의 입을 철저하게 봉하던가, 아니면 최경호가 발설해도 타격을 받지 않을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최경호의 입을 봉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탕을 주어야 할 것이다. 최경호는 이것을 빌미로 점점 더 큰 것을 요구할 것이다.

살인을 했을지도 모르는 최경호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탕을 요구할 것인가. 결국에는 수습 불가능한 지경에 처하고 말 것이다. 최경호는 반드시 정리해야한다. 최경호도 정리하고, 과거의 일도 깨끗이 세탁하는 방법, 이제 그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정해현은 다시 한 번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미 카메라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터무니없는 사실에 대하여 분개하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

그나마 선거가 끝난 시점인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이 같은 일이 선거운동 기간에 불거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나 선거는 이미 끝났다. 그리고 그는 당선되었다. 명실 공히 재선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김준하가 법정에서 아무리 당시 사건이 조작이라고 하여도 누가 그 말을 믿을 것인가. 이미 30년 전에 있었던 그 일을 누가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드디어 TV에서 정해현의 인터뷰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김인환 씨의 살해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김준하에 대한 공판이 부산지방법원 형사법정에서 열렸습니다. 오늘 공판에서 피고인 김준하와 그의 변호인은 김준하의 과거 상해 및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은 정해현 의원이 당시 수사검사인 김인환 씨를 매수하여 조작한 사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검찰은 당시 사건에 연루된 최경호 보좌관과 이 사건의 상피고인 박형기를 증인으로 신청하였습니다. 앞으로의 공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이와 같은 김준하와 그의 변호인의 주장에 대한 정해현 의원의 말을 직접 들어 보겠습니다. 정해현 의원의 사무실에 나가 있는 정시영 기자를 불러보겠습니다. 정시영 기자, 나와 주세요.

― 여기는 정해현 의원의 사무실입니다. 먼저 오늘 공판에서 피고인 김준하와 그의 변호인이 주장한 사실에 대하여 정해현 의원의 말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 그것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사실을 날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로 말미암아 저의 명예와 도덕성을 심각하게 실추시킨 피고인 김준하와 그의 변호인에 대하여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취할 수 있는 다른 모든 법적조치도 강구할 것입니다.

― 당시 김준하 씨의 상해 사건에 정해현 의원님과 최경호 보좌관, 그리고 김인환 수사검사가 연루된 것은 사실입니까?

― 연루라니요? 그 사건은 저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만약 김준하 씨의 말대로 최경호 보좌관이 자해를 하여 누명을 씌웠다면, 그것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저는 그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피고인 김준하의 국가보안법위반 사건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요?

― 그 사건은 당시 김준하가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학내의 불법시위를 주동했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행위를 알고 이를 수사기관에 제보한 사람이 최경호 보좌관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김준하는 그런 제보를 한 최경호 보좌관과 당시 그 사건을 수사했던 김인환 검사에게 앙심을 품고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데,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정말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살인을 한 김준하는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고인과 저를 범죄인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김준하의 행위에 대해 저는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김준하는 살인을 한 것만으로도 모자라 저와 이미 고인이 된 사람까지 욕되게 하는 천인공노할 짓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김준하와 그의 변호인에 대하여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할 것입니다.

― 최경호 보좌관에게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였습니까?

― 너무도 명백한 거짓말에 대하여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덧붙여 말씀드리지만, 오늘 저는 최경호 보좌관을 직위해제하였습니다.

― 최경호 보좌관을 직위해제하였다고요? 그런 갑작스런 조치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만약 피고인 김준하의 말이 조금이라도 사실이라면, 이러한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 사람이 어떻게 국민의 공복인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 또한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그 사실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러한 문제를 야기한 책임을 물어 최경호 보좌관을 직위해제하였습니다. 이상입니다.

― 지금까지 정해현 의원의 사무실에서 KNB뉴스 정시영이었습니다. 

*

직위해제라니!
최경호는 인터뷰를 하는 정해현의 입에서 나온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기울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정해현을 통하여 그 자신 또한 언젠가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일념으로서 보낸 모욕과 굴종의 시간이었다.

그 모든 인내와 노력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정해현을 위하여 공작을 하고, 법정에서 위증을 하고, 심지어 생명을 걸고서 자해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직 정해현만을 추종하면서 살아온 그였다. 정해현이 시키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해 왔던 그였다.

그런 나를 내쫓다니! 한마디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나를 내쫓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최경호는 정해현에 대한 적개심과 배신감으로 몸을 떨었다. 인터뷰를 마친 방송국 기자가 떠나자마자, 최경호는 곧바로 정해현의 방문을 부술 듯이 차면서 들어갔다.

― 직위해제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미 적개심과 배신감에 사로잡힌 최경호에게는 정해현이 국회의원으로서 그가 추종하는 상관이 아니었다. 단지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나쁜 짓만 골라서 했던 고등학교 동창생일 뿐이었다.

― 진정해 인마.
― 내가 진정하게 됐어?
― 그러면 정신이상에다 살인까지 한 자식을 보좌관으로 두란 말이야?
― 뭐라고? 정신이상? 살인자?

― 나는 알아, 인마. 김준하는 김인환을 죽이지 않았어. 바로 네가 죽인 거야. 도대체 어떻게 살인을 할 생각까지 했어? 네가 제 정신이야?

― 뭐라고? 이젠 너까지 날 살인자라고 하는 거야? 그래, 내가 살인을 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살인은 누구를 위한 살인이니? 바로 너를 위해서야 자식아.

― 미친 놈. 30년 동안이나 빌붙어 온 자식을 먹여주고, 입혀 줬더니만, 이젠 아예 나를 죽이려고 작정한 모양이구나. 야, 인마! 누가 너더러 살인을 하래. 정신이 나가도 보통 나간 놈이 아니구나.

― 이젠 알겠어. 김인환을 죽인 살인자는 바로 너구나. 정말 김준하가 죽인 것으로 알았더니만, 네가 죽인 것이구나. 누구를 시켜서 죽인 거니? 그러고서 나를 살인자로 몰아 이젠 내치려 하고. 내가 그냥 있을 것 같아. 네 과거를 모조리 까발리고 말겠어. 이제까지 너와 김인환이 한 일을 모조리 까발리고 말겠어.

― 야, 이 자식아. 보좌관에서 쫓겨난 보복심에서 하는 네 거짓말을 누가 믿을 것 같아. 내가 그런 생각도 하지 않고 널 자르는 줄 알아. 괜히 문제를 복잡하게 얽히게 하지 말고, 조용히 쉬고 있어. 필요하면 부를 테니까. 괜히 입 나불거리다가 네 목숨도 부지하지 못해.

― 너, 이 개자식!
― 입에 게거품 물지 말고 빨리 나가 봐. 불쌍해서 그동안의 퇴직금은 정산해 줄 테니까 끽 소리 말고 엎드려 있어.

―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 나는 잃을게 없는 사람이야. 그러나 넌 그렇지 않을 걸. 누가 후회하나 두고 보자.

― 뭐? 잃을 게 없다고? 그래도 목숨 하나는 잃을 게 있잖아. 두고 보자는 놈치고 무서운 놈 하나도 없더라. 괜히 까불다가 성한 목숨 다치지 말고 조용히 있어. 오늘 이 자리에서 욕한 것은 그동안의 정리를 봐서 한번만 참아 준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이따위 짓을 하는 경우엔 가만 두지 않는다. 반드시 뼈를 추려 도륙을 내주마. 빨리 나가봐.

― 이 나쁜 놈의 새끼! 내가 그냥 있나 두고 봐.

정해현의 방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최경호는 사무실을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김준하가 체포됨으로써 모두 끝날 것 같았던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정해현이 자신을 내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재선 성공으로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대가가 있을 것으로 은근히 기대까지 했었다. 반드시 당신을 내치려고 할 것이라는 여자의 말이 맞았어. 그런데! 하얗게 비워진 최경호의 머릿속에서 배신감과 복수심이 활활 타올랐다.

그러나……? 최경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누구보다 정해현을 잘 알았다. 정해현의 출세욕과 집요함. 그 치밀하고 무자비한 복수. 그것은 김준하에 대한 정해현의 보복을 보면서 직접 겪어온 사실이다.

정해현이 가진 돈의 위력과 권력의 힘도 잘 알고 있다. 김인환을 돈으로 조종했듯이 정해현은 이미 다른 검사를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해현과 유착된 송철준과 그 조직폭력배들의 무자비함과 잔인함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정해현을 배신한다? 배신은 곧 그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그가 이길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아직 죽고 싶지는 않았다. 걷고 있었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막다른 길! 최경호는 출구도, 다시 돌아갈 입구도 보이지 않는 막다른 길 앞에 서 있었다. 

*

이날 퇴근 무렵, 부산지방검찰청 504호 김용훈 검사실

― 이미 아시겠지만, 오늘 법정에서 최경호를 증인으로 신청하였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두 분께서 은밀하게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김용훈 검사가 박경일과 최수환에게 말했다.

― 예, 어떤 일입니까?
최수환이 말했다.

― 최경호 보좌관을 반드시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일입니다. 최경호가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하여 진실을 말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 정해현의 수족이나 다름없는데,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박경일이 말했다.

― 그렇습니다. 그래서 두 분께서 은밀하게 최경호를 만나 회유시켜 달라는 겁니다. 이제 남겨둔 마약 카드를 써 먹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만약 협조하지 않으면 마약사범으로 바로 구속하겠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협조하지 않겠습니까?

― 최경호가 협조하면 마약사건은 묻어두실 겁니까?
최수환이 다시 말했다.

― 아닙니다. 지금 마약전담반에서 송철준의 마약 공급루트를 광범위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모조리 일망타진할 겁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시고 두 분께서는 우선 눈앞에 닥친 최경호의 일부터 처리해 주십시오. 반드시 최경호를 회유시켜 법정에 출석시켜야 합니다. 두 분의 공은 잊지 않겠습니다.

*

이날 밤, 거제동 소재 로얄아파트 106호

― 그 봐요. 내 말이 맞았죠? 정해현이 반드시 당신을 내칠 거라고 내가 얘기했잖아요.
속옷도 없이 잠자리 날개 같은 반투명 잠옷만 입은 박영애가 침대 옆 간이식탁 의자에 앉아 말했다. 최경호는 잠옷을 입은 채 침대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양주병 하나와 간단한 안주거리가 차려져 있었다.

― 정말 정해현이 날 내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이미 술과 마약에 취해 눈이 게슴츠레 풀린 최경호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오히려 잘 됐어요. 내 말대로 후원금 계좌에 입금된 돈 미리 빼돌려 놓았잖아요. 어차피 계좌가 들통 나면 당신은 그 자리에 있지 못해요. 이 기회에 정해현을 밟고 당신이 올라서는 거예요.
박영애가 의자에서 일어나 최경호가 들고 있는 술잔에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 어떻게?
최경호는 호흡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 오늘 법정에서 검사가 당신을 증인으로 신청했잖아요. 그걸 이용하는 거예요. 당신이 정해현의 과거를 법정에서 모조리 말해버리면 정해현의 정치생명은 그것으로 끝이에요. 그 자리에 당신이 올라서는 거예요. 아시겠죠?

― 정해현과 송철준이 날 죽이려고 할 걸.
― 그게 겁나요? 걱정 말아요. 당신이 증언하면 정해현은 끝이에요. 정해현이 힘을 잃으면 송철준도 힘을 쓰지 못해요. 오히려 송철준은 살아남기 위해 당신에게 붙을 거예요.

― 정말 그럴까?
― 그럼 가만 앉아 당하기만 하고 있을 거예요? 당신은 그렇게 줏대도 없어요?
― 줏대가 없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 그러면 아무 걱정 말고 내 말대로 해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요. 아셨죠? 자, 이리 오세요.
 

박영애가 입가에 웃음기를 띠고 허리를 뒤틀어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 침실 위 천장에 매달린 붉은 조명등에 비치는 잠옷 속에서 박영애의 육감적인 몸매가 어른거렸다. 최경호의 호흡이 더욱 가빠졌다.

마약기운이 전신으로 퍼지면서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잠옷 속에 돌출된 박영애의 선홍색 유두와 탄력 있는 허벅지 사이 풍성한 숲속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바람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 자, 이제 누워요.
박영애가 최경호를 침대에 눕히고 잠옷을 벗겼다. 박영애가 아직 늘어져있는 최경호의 페니스를 잡고 흔들어 세웠다.

(― 아! 막다른 길인 줄 알았는데, 그 길의 마지막에 이 여자가 있었구나.)

최경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박영애의 잠옷자락에서 강한 흥분을 일으키는 익숙한 향수냄새가 났다. 페니스가 불끈 치솟았다. 머릿속에서 팍팍, 전기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최경호는 박영애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 아이! 왜 이리 서둘러요. 자자, 당신은 가만히 있어요. 오늘 내가 당신을 천국으로 인도할게요.

이 여자가 시키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여자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경호는 박영애의 질 속으로 페니스가 삽입되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생각했다.

그 순간, 최경호는 전신에 부르르 진동을 느끼며 몸이 붕 치솟아 올라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렸다. 계곡은 깊고 또 깊었다. 바닥은 느껴지지 않았다.
====================================================

― 연재 제40회 <창과 방패>는 2019. 7. 22.(월) 에 게재됩니다.
― 《다음 검색창》에서 『살인 교향곡』을 검색하시면, 지금까지 연재된 모든 연재물(연재 제1회부터 제39회까지)을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