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연재 제37회 <산의 울음, 산의 노래 1>
Symphony in C minor ‘Fate’

산의 울음, 산의 노래 1

눈물을 감추려는 것인가. 준하가 잠시 고개를 위로 젖히고 법정 천장을 바라보았다.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것일까. 용훈의 추궁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낀 것일까. 기영은 바짝 긴장했다. 준하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정면을 응시했다. 준하의 눈에 고인 눈물이 형광등 불빛에 반짝였다.

답 :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고 이미 말했습니다.

준하는 아직도 굿판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곽 판사 : 변호인은 신문할 사항이 있는가요?

이제는 징을 울릴 차례.
징소리로 사랑을 우려내자.
징소리에 용서를 담아내자.

박기영(피고인 김준하에게)

문 : 피고인은 억울한 수형생활을 하는 동안 피고인에게 고문을 가하고 어머니까지 죽게 만든 그 사람들이 밉지 않았습니까?
답 : 처음에는 미웠습니다. 저주했습니다.
문 : 그래서 복수할 생각을 하였나요?
답 : 물론 한때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문 :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미움과 복수심을 극복하였지요?
답 : 그렇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어느 선각자의 말을 매일 되새겼습니다.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늘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도 사랑하라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연민을 가지라고…….

문 : 그래서 연민을 가지게 되었나요?
답 :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하여 연민을 갖게 되자, 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문 : 그 용서를 한 사람들 중에 김인환도 포함되어 있었나요?
답 : 물론입니다. 적어도 그때까지의 일들에 대해서는 모두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 이상입니다.

곽 판사 : 피고인 박형기의 변호인은 신문할 사항이 있는가요?

강성모 변호사(피고인 김준하에게)

문 : 피고인은 상피고인 박형기(이하 박형기라고 한다)가 이 사건 법정에서 하는 진술을 들었지요?
답 : 예.
문 : 사건 당일 박형기에게 피고인의 범행 계획을 말했나요?

― 잠깐, 이의 있습니다.
기영이 신문을 차단했다.
― 지금 박형기의 변호인은 ‘피고인의 범행 계획’이라고 하여 피고인 김준하가 마치 이 사건 범행을 실행한 것처럼 유도하는 신문을 하고 있습니다.

곽 판사 : 인정합니다. 변호인은 박형기의 진술이 사실이라는 예단을 가지고 하는 신문은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 : 사건이 있었던 날, 피고인과 박형기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답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부분에 대하여는 진술하지 않겠습니다.

곽 판사 : 피고인의 지금 진술은 사건 당일 박형기가 진술한 부분에 대하여도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인가요?
답 : 그렇습니다.

곽 판사 : 피고인이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는데, 신문을 계속하시겠습니까?

― 신문하지 않겠습니다.

사진제공 임재수 사진작가(이하 같음)

곽 판사 : 그렇다면 피고인에 대한 신문을…….

― 잠깐만요. 재판장님, 피고인 김준하에게 몇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기영이 급하게 징소리를 울린다.

곽 판사 : 아직도 신문할 사항이 남았나요?
― 피고인에게 몇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준하의 춤에 장단을 맞추어야 한다.

박기영(피고인 김준하에게)

문 : 피고인은 고등학교 재학 중에 상해 사건으로 소년원에 송치되어 퇴학을 당했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이 상해 사건에서, 사실은 제 손으로 자해를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상해를 가한 것이라고 사건을 조작하고 법정에서 위증을 한 사람은 현재 국회의원 정해현의 보좌관으로 있는 최경호였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그리고 최경호에게 돈을 주어 자해를 하고 위증을 하도록 사주한 사람이 이번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된 정해현이었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또한 최경호는 피고인의 대학 재학 중에 있었던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에서도 조작된 공소사실을 검찰에 허위로 제보하고,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위증을 하였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그리고 이 사건의 상피고인 박형기도 위 같은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에서 최경호와 공모하여 허위로 제보를 하고 법정에서 위증을 하였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그렇다면 위 두 사건은 모두 정해현과 당시 수사검사였던 김인환이 공모하여 조작한 사건이었고, 최경호와 박형기가 이렇게 조작된 사건의 하수인으로 역할분담을 하였던 것인가요?
답 : 그렇습니다.
― 이상입니다.

이때 끼어드는 꽹과리 소리.
용훈이 다시 묻는다.

문 : 피고인은 조금 전 변호인의 신문에 답하면서 ‘적어도 그때까지의 일들에 대해서는 모두 용서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피고인과 김인환과의 사이에 그 이후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답 :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 이상입니다.

곽 판사 : 그럼 피고인에 대한 신문을 마치고 증거조사를 하겠습니다.

박기영 : 피고인 김준하에 대한 증거는 전부 부동의합니다.

강성모 변호사 : 피고인 박형기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제외한 나머지 증거는 전부 부동의합니다.

김용훈 검사 : 국회의원 정해현의 보좌관 최경호와 상피고인 박형기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박기영 : 마린시티호텔 직원 신경민과 부검의사 박상훈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강성모 변호사 : 피고인 김준하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곽 판사 : 오늘 공판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다음 공판기일은 20××. ××. ××. 오후 2시로 정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굿판을 벌여야 한다. 준하는 어떤 춤을 출 것인가. 혹시 오후 재판에는 왔을지도 모른다. 기영은 고개를 돌려 법정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기영이 찾는 그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준하를 구해 줄 그 소녀는 오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

조작된 국가보안법위반이라는 재판에서 대장은 항소를 포기했다. 소년과 함께 대장을 면회하는 자리에서, 소녀는 끝까지 싸우자고, 끝까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울면서 호소했다. 그런데도 대장은 항소를 하지 않았다.

소년도 안타까웠다. 이젠 대장도 굴복하고 마는가. 항소를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항소심 재판에서도 자신의 무죄는 결코 입증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알기에 승산 없는 싸움으로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기 싫다는 것인가. 그래서 이 부조리한 현실과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한 것일까.

아니었다. 대장의 성격상 결코 그 재판에 수긍한다거나 굴복할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도 항소를 하지 않은 것은 대장 나름의 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년의 이런 생각은 맞았다. 항소기간이 지나 다시 대장을 면회한 자리에서 대장은 담담하게 말했다.

― 항소를 포기한 것이 아니야. 그들에게 굴복한 것은 더욱 아니야. 그 지독한 고문에도 나는 굴복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항소를 하지 않았냐고? 독재자의 하수인들에 의한 형식적 재판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나는 독재정권의 재판 자체를 거부한 것이야. 항소를 하면 독재정권의 존재와 사법체계를 인정하는 꼴 밖에 더 되겠어.

그랬다. 대장은 독재정권에 기생하는 하수인들에 의한 형식상의 재판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보다 근원적인 저항정신을 나타내고자 했다. 두 팔을 벌려 탱크의 진입을 저지하던 비폭력 불복종의 저항정신을 항소를 하지 않는 역설적 방법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대장의 말대로 그것은 항소포기가 아니었다. 대장이 항소를 하지 않은 것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정당성이 결여된 독재정권의 사법체계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그 정권의 성립 또한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서 소년이 저항할 수단은 아무 것도 없었다. 소년은 슬펐다. 너무 안타까워 울고 싶었다.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벽은 소년이 부수거나 뛰어넘기에는 너무도 단단하고, 두껍고, 높았다. 그것이 소년을 더욱더 무력감에 빠져들게 했다.

학교생활에도 공부에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제까지 지녀온 소년의 가치관은 뿌리 채 흔들렸다. 대장의 재판에서, 법은 사실을 조작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정의의 실현이라는 목적이 아닌 사실의 조작이라는 수단에 불과한 법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런 법에 대한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독재정권에서 시행하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깊은 절망과 회의감에 빠진 소년은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소년에게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땅의 남자라면 홍역을 치르듯 어차피 한 번은 갔다 와야 할 군대였다. 이 땅의 건강한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병역의무였다.

결국 소년은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휴학계를 내고 해병대 입대를 자원하고 말았다. 훈련이 가장 혹독하다는 해병대에 자원하여 이 거대한 부조리를 조롱하고 스스로를 학대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이 절망과 슬픈 현실에서 그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

입대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대장에게만은 입대를 알려야 할 것 같았다. 소녀와 함께 대장의 면회를 갔다. 교도소의 면회대기실은 추웠다. 중간에 놓인 석유곤로 하나가 심지가 다 타버린 듯 빨간 불빛을 껌벅이며 겨우 냉기만 가시게 하고 있었다.

소년의 이름이 호명되고 면회실로 들어서자, 잠시 후 창살너머로 대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턱수염이 자라 약간 까칠하게 보이긴 했지만, 대장은 건강하게 보였다. 분명 교도소 안에서도 단전호흡을 통한 명상수련으로 자신의 건강은 지키고 있을 것이다. 수형생활이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보고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 당분간은 면회를 오지 못할 거야.
소년이 말했다.
― 오빠가 군대를 간대.
소녀가 말했다.

―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 그럼 학교는? 사법시험은 어쩌고?
― 휴학계를 냈어. 기왕 한번은 갔다 와야 할 군대, 네가 없는 동안에 갔다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자원했어. 공부에 대한 회의감도 들고, 지금의 상황으로는 어딘가 탈출구를 찾아야 할 것 같아서…….

― 나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미안하구나. 내가 힘이 되어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짐이 되어 버렸구나.
― 무슨 소릴……, 3년 후에 만나자.
소년이 일부러 웃으면서 말하고 대장의 눈을 쳐다봤다. 대장이 눈을 감고 뭔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 했다.

― 약속 하나 해 줄래?
대장이 눈을 뜨고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 무슨 약속?
― 군대에 있는 3년 동안 너의 지난 과거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겠다고 약속해. 너는 군대에서 용서하는 방법을 찾고, 나는 이곳 교도소 안에서 용서하는 방법을 찾을 게.

― 마치 성인군자라도 된 것처럼 말하는구나? 너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정말 용서할 수 있겠니?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

― 그러니까 용서하는 길을 찾도록 서로 약속하자는 거야. 그래야 너도 군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거고, 나도 이곳에서 3년이란 시간을 허송세월하진 않을 거고……. 증오와 복수심은 참된 자아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독이야. 마음속에 분노가 끓고 있으면 올바른 생각을 하지 못해.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미래를 생각 못해. 좀 더 깊고 넓게 생각해 봐.

대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잔잔한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대장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소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녀도 맑은 눈빛으로 대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대장이 말을 이었다.

― 조금 더 멀리 생각해 봐.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시간 속에서, 우리와 관계할 사람들이, 어찌 나를, 아니 우리를 해친 그 사람들뿐이겠니. 나는 그렇게 생각해.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생각해.

지나간 시간에 연연하여 네 꿈을 포기해서는 안 돼. 그래야 너의 군대 생활도 힘들지 않을 거야. 넌 분명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세계에 도달할 수 있어. 더 높고 더 넓은 세계를 그려봐.

나는 진작 너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 넌 몸이 약해 보이지만 의지력은 누구보다 강해. 네 꿈을 포기해선 안 돼. 물론 나도 꿈과 소망이 있어. 그래서 훗날 우리가 새 세계를 만나는 날,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를 배워야 해. 용서를 통하여 증오와 복수심을 버려야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소망을 이룰 수 있어. 그것이 우리의 내면에 있는 신성이 이끄는 삶이야. 용서와 사랑만이 증오와 복수심을 잠재울 수 있어. 이것이 우리가 용서를 해야만 하는 이유야.

창살너머 대장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힘이 있었다. 그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평화롭게 들렸다. 그 말 속에는 대장은 벌써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 다시 말하지만 먼저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 내가 간절히 빌게. 나 또한 용서하기 위해 힘든 마음공부를 하고 있어.
― 그렇게 말하는 너는 이미 다 용서를 한 것 같은데?

― 그래, 다 용서했어. 그러나 다 용서가 되는데, 오직 한 사람만은 용서가 되지 않아.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해.
― 어느 놈을 말하는 거니? 악동자식? 아니면 따까리?
― 그런 녀석들이야 뭐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이 어디 있니.
― 그 자식들이 아니면 누군데?

그때 교도관이 면회시간이 다 됐다며 대화를 중단시켰다. 단순히 격려하는 말이었을까. 입대를 한다고 하니까, 혹시 군 생활 중에 무슨 사고라도 칠까봐 노파심에서 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대장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하는 마음 속 결심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용서라는 핑계로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체념에서 나온 말이었을까. 소년이 느끼고 있는 분노보다 더 큰 적개심에 사로잡혀 있어야 할 대장이 오히려 용서하고, 용서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하고 있었다.
 

면회실에서 교도소 정문으로 나오는 아스팔트길 양 옆에는 수령이 족히 수십 년은 넘었을 것 같은 아름드리 히말라야시다가 가로수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얼마나 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로 지나갔을까. 그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을 이 나무들은 묵묵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 훗날 지금 우리들의 아픔과 눈물을 이 나무들은 기억하겠지.
소년이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의 우듬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 아마도 이 나무들은 오빠가 아무런 죄도 없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 거야.
소녀가 말했다.

― 죄도 없이 갇혀 있으면서 용서하라고? 그렇게 쉽게 용서할 것 같으면 애초부터 투쟁을 하지 말지. 왜 그렇게 집착을 가지고 투쟁했을까? 나는 이해할 수 없어. 나는 결코 용서할 수 없어.

독재타도, 유신철폐라는 대장의 민주화투쟁에 얼토당토 않는 국가보안법위반이라는 덫으로 누명을 씌운 이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하는 말이었다.

― 그때 시위현장에서 나는 오빠에게 물은 적이 있었어. 왜 투쟁하느냐고? 왜 투쟁해야 하느냐고? 그때 오빠가 말했어. 훗날 우리는 우리가 투쟁한 이 독재 권력을 용서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거라고 했어.

그런데 지금 투쟁하지 않으면 용서조차 못한다고 했어. 그들이 굴복할 때 우리는 너그럽게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오빠는 먼 훗날의 용서를 위해 투쟁한다고 했어. 지금의 투쟁은 내일의 용서를 위한 투쟁이라고 했어.

그때는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오빠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어. 그 투쟁은 오빠의 신념에서 비롯되었고, 용서 또한 오빠의 신념에서 비롯되고 있는 거야. 투쟁도 용서도 모두 오빠의 영혼에서 우러난 거야. 오빠는 신성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고 있어.

― 신성이 이끄는 삶?

― 그래. 오빠의 말대로 용서하는 방법을 찾아봐. 먼저 나를 용서하고,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을 용서하고,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용서하도록 해봐.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봐. 그러면 오빠의 영혼에서 샘솟듯 흘러넘치는 사랑을 느끼게 될 테니까. 그것이 바로 신성이 이끄는 삶이야.

소녀가 가만히 손을 내밀어 소년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며 말했다. 소녀의 목소리는 간절한 기도처럼 들렸다. 복수하는 마음보다 용서하는 마음이 더 아름답다. 어린 소녀가 했던 말이었다. 먼저 나를 용서하고 이 세상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어린 소녀의 그 마음이 한층 더 깊어지고 넓어져 있다. 이것이 신성이 이끄는 삶일까? 신성이 이끄는 삶은 어떤 것일까? 그러나 소년은 알 수 없었다.

― 연재 제38회 <산의 울음, 산의 노래 2>은 2019. 7. 8.(월) 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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