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연재 제35회 <민중의 노래 2>
Symphony in C minor ‘Fate’

도서관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아침이슬」 노래에 이어, 「선구자」 노래 소리가 들렸다. 와, 함성이 크게 울렸다. 도서관 책상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창문 쪽으로 몰려갔다. 소년도 책상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갔다. 도서관 앞 광장에 집결한 학생들의 시위대가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대 앞에 선 남녀 두 학생이 핸드마이크를 들고 대자보에 실렸던 「민중의 노래」를 불렀다. ‘…… 사월의 강가로 가자’, 4·19 혁명을 암시하는 도입부 가사에 행진가풍의 빠르고 선동적인 노래였다. 두 마디씩 끊어 부르는 두 학생의 선창에 따라 시위대도 따라 불렀다.

― 청년학도여! 지금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조국이, 우리의 주권이 독재자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다. 타율과 굴종으로 노예의 길을 걸어 천추의 한을 맺히게 할 것인가. 유신과 긴급조치라는 악의 표본에 의연히 투쟁함으로써 역사발전의 장도에 나설 것인가. 이제 일어나자. 일어나 함께 싸우자. 독재타도! 유신철폐의 그날까지!

소년은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맨 앞에 서서 오른팔을 치켜들고 흔들며 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감초였다. 중간고사를 마친 후부터 보이지 않던 감초가 선두에 서서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다. 와, 함성이 다시 울렸다. 도서관 앞에서 집결한 시위대 행렬이 교문으로 행진해 나가고 있었다.

― 여러분! 역사의 방관자가 될 것입니까?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갑시다.

도서관 안에서 누군가가 의자 위에 올라가 외쳤다. 와, 도서관 안에서도 함성이 울려 퍼졌다. 학생들 대부분이 가방을 챙겨들었다. 도서관에 있던 학생들이 물밀 듯이 빠져나가 시위대에 합류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 돌아온 학교는 혼란스러웠다. YH무역 여성근로자의 농성을 진압하기 위한 군경의 야당당사 진입이 학생들의 울분을 촉발시켰다. 소년이 공부한 헌법에는 분명 주권은 국민에게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엄연히 국민에게 있어야 할 주권은 독재자의 수중에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빼앗긴 주권을 돌려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눈은 매섭고 차가웠다. 그 누구도 그 차가운 눈의 감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해 10월 초, 야당 총재가 국회에서 제명을 당했다. 야당 총재가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목이 쉰 분노의 목소리로 외쳤다.

― 선거에서 1.1% 이긴 야당 총재를 의회에서 추방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추방하는 것이며, 의회정치의 조종弔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때까지도 학내는 조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다. 드디어 폭풍이 휘몰아쳤다. 누군가가 억눌려 있던 분노의 용광로에 불길을 당긴 모양이었다.

소년도 가방을 챙겼다. 소년은 텅 비어버린 도서관 앞 광장을 걸어 내려왔다. 광장에 운집해 있던 학생들은 이미 교문 쪽으로 모두 빠져 나간 뒤였다. 교문 앞에서 외치는 시위대의 구호소리가 들렸다.

― 유신철폐!
― 독재타도!

교문 밖에는 이미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한 전투경찰이 이중삼중의 장벽을 치고 도열해 있었다. 시위대와 진압 경찰이 교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검은 지프 한대가 페퍼포그를 뿌리며 학생들을 깔아 뭉갤 듯 달려들었다. 그 검은 지프를 따라 진압 경찰이 학생들에게 달려들었다.

선두에 선 학생들의 손에 들린 화염병이 어지럽게 날았다. 학생들의 대오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러나 흩어진 학생들은 이내 다시 교문 쪽으로 집결했다. 진압 경찰이 다시 달려들었다. 학생들이 흩어졌다. 교문을 사이에 두고서 진압 경찰과 학생들의 교전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소년은 방관자였다. 소년의 심장에도 혈관에도 독재에 항거하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주저했다. 대다수 학생들이 시위대에 합류하고 있는데도 소년은 나아가지 않았다. 소년은 단지 먼발치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구경꾼일 뿐이었다.

눈이 메웠다.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 눈물은 가슴에서 치솟는 울분의 눈물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날아온 최루가스에 의한 화학작용일 뿐이었다.

오전부터 시작된 공방은 오후에도 계속되었다. 시위대의 교문 밖 진출은 봉쇄되었다. 시위대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시위대의 숫자는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시위대가 가득 메우고 있던 정문에서 교정으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길 위에 흰색 페인트로 써 놓은 괄호 속 커다란 글씨가 보였다.

<부산역 광장으로>

교문을 봉쇄당하자 부산역 광장에서 모이자는 뜻으로 적어 놓은 것이었다. 시위대는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진압 경찰도 철수를 하고 있었다. 아니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대의 새로운 집결장소인 부산역 광장으로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소년은 정문을 향해 걸어 내려왔다. 아직도 남아 있는 최루가스가 메웠다. 소년은 망설였다. 부산역 광장으로 가야하나……?

― 오빠!

다급하고 절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소년은 깜짝 놀랐다. 정문 쪽에서 마스크를 한 소녀가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숨이 턱에 닿을 듯 헐떡이며 달려와 소년 앞에서 마스크를 벗었다.

그물처럼 붉은 핏발이 돋은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몸에서 강한 최루가스 냄새가 풍겼다. 의외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소녀가 시위에 참가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어떻게 된 일이니? 다친 데는 없어?
소년이 놀라서 큰소리로 말했다.

― 응, 괜찮아. 그것보다 오빠를 보았어. 시위대 맨 앞에 있었어. 아마 역으로 갔을 거야. 빨리 오빠를 찾으러 가.

대장이 사라진 이후로 그 누구보다도 초조해 했던 사람은 소녀였다. 소년이 무간 스님으로부터 들은 말로 소녀를 안심시켰지만, 소녀는 오히려 무간 스님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떼를 쓰고 있었다.

그런 소녀를 겨우 만류하고 있었다. 소녀가 막무가내로 소년의 손을 잡아끌며 교문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다. 진압 경찰은 막바지 철수를 하고 있었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위대와 경찰이 공방을 벌이고 있던 교문 근처는 여전히 강한 최루가스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소년과 소녀는 자욱한 최루가스를 뚫고 달렸다. 코가 따가웠다. 기침이 났다. 눈물이 흘렀다. 교문을 벗어났다. 부산역으로 가는 시내버스 출입문에 매달린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소년과 소녀도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버스에 먼저 타고 있던 학생들이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시위대는 어느 누구의 지휘조차 없는데도 이미 한 세력으로 결집되어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었다. 그 물결은 이제 거센 노도와 같이 흐르고 있었다.

소년과 소녀가 부산역 광장에 도착하였을 때, 광장은 이미 경찰에 의해 에워싸여 있었다. 진압 경찰은 광장 외곽을 포위하고 광장을 점령한 시위대의 확산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광장에 줄을 지어 앉아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 유신철폐!
― 독재타도!

줄을 지어 앉은 시위대의 맨 앞에 서서 선창으로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 저기야. 저기 오빠가 있어.

진압 경찰의 방패너머로 시위대를 살피고 있던 소녀가 선창을 하고 있는 사람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년도 보았다. 대장이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팔소매를 걷어붙인 대장이 광장에 밀집한 시위대 앞에 서서 팔을 아래위로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 저기로 가야 해.

소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그러나 겹겹이 둘러싼 진압 경찰의 벽을 뚫을 수는 없었다. 그때 광장에 있던 시위대가 모두 일어서서 한 목소리로 소리모아 외쳤다.

― 시청으로!
― 시청으로!

시위대가 물결치기 시작했다. 진압 경찰이 시위대의 전면으로 포진했다. 횡렬로 길게 늘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여 인간띠를 만든 시위대가 진압 경찰 쪽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펑 펑 펑, 시위대를 향하여 최루탄이 발사되었다. 시위대 전면에서 하얀 최루가스 연기가 몇 군데 피어올랐다. 그러나 시위대를 묶은 인간띠는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밀려들었다.

펑펑펑펑, 펑펑펑펑, 따발총 같은 절박한 연속 폭발음이 비명처럼 터지면서 하얀 최루가스 연기가 전쟁터의 포연처럼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진압 경찰이 포연을 뚫고 시위대를 향해 덮쳐갔다.

진압 경찰의 방패와 곤봉이 선두에 선 시위주동자에게 무차별 난무했다. 광장은 이내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지는 포연 자욱한 전쟁터로 변했다. 최루가스 포연 속에서 진압 경찰에 밀린 시위대가 갈팡질팡 흩어지고 있었다.

최루가스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자, 시위대를 구경하고 있는 군중도 재채기를 하며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소년도 최루가스를 피하는 와중에 군중 속에 휩쓸리고 말았다.

치열한 백병전을 한 번 치른 광장에는 시위대와 경찰이 다시 사이 공간을 두고 대치했다. 소년은 소녀를 찾아보았다. 소녀가 보이지 않았다. 군중 속을 헤치며 소녀를 찾기 시작했다.

― 와!

그때 갑자기 군중 속에서 함성이 울렸다. 소녀를 찾고 있던 소년이 다시 시위대가 있는 광장을 바라보았다. 아! 저게 누구인가. 소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소녀였다.

어떻게 진압 경찰의 벽을 뚫고 나갔는지, 소녀가 시위대와 진압 경찰이 대치한 텅 빈 사이공간을 가로질러 달려가고 있었다. 군중의 함성은 시위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소녀를 보고 지른 환호성이었다.

― 와!

또 다른 함성이 시위대에서 울려 퍼졌다. 그 함성과 함께 시위대 쪽에서도 누군가가 달려 나오고 있었다. 소년은 똑똑히 보았다. 대장이었다. 대장이 소녀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 나오고 있었다.

― 와, 와, 와!

시위대와 군중의 함성이 하나가 되어 광장을 메아리쳤다. 서로 마주보며 달려 나간 두 남녀가 시위대와 진압 경찰이 대치한 텅 빈 사이공간에서 격렬하게 포옹하고 있었다.

아! 소년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군중의 함성과는 달리 소년의 가슴에는 울컥, 서러움이 치솟았다. 소년은 군중 속을 벗어나 천천히 걸었다. 눈물이 솟아났다. 소년의 뺨에 흐르는 눈물은 최루가스 때문이 아니었다.

소년이 잠시 군중 속에서 벗어났을 때, 그때까지도 진압 경찰의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군중이 또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시위대로 돌변하였다. 군중의 물결이 뒤에서 압박하여 들어가고, 대치하고 있던 시위대가 이에 호응하면서 전진하여 나왔다. 앞, 뒤에서 협공을 당한 진압 경찰은 순식간에 밀리기 시작했다.

진압 경찰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시위대가 처음으로 진압 경찰의 방어선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일반 시민까지 합류한 시위대는 이제 거대한 물결을 이루면서 역 광장을 벗어나 시청 쪽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날이 어둡도록 시위는 계속되었다. 오히려 시위대의 숫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퇴근하던 넥타이 부대까지 속속들이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차량의 물결을 이루고 있어야 할 도시의 주요 간선도로에는 행진하는 시위대의 물결이 흐르고 있었다. 어두워진 시위 현장에서 소녀를 다시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소년은 혼자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잠이 오지 않았다. 연약하기만 하다고 여겼던 소녀의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솟아난 것일까. 광장을 가로질러 서로 마주보고 달려 나간 소녀와 대장이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광장 중앙에서 격렬하게 포옹하던 장면이 잔상이 되어 자꾸만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가끔씩 소년을 괴롭히던 생각이 다시 솟아났다. 소년은 곰팡내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삼켰다.

*

다음날 새벽부터 라디오 방송에선 일부 주요 간선도로를 시위대가 점령하고 있다는 소식을 계속 전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밤새도록 해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오후가 되자 집에 있던 일반 시민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대에 가세하였고, 밤이 되자 이제 부산 전역의 주요 간선도로는 모두 시위대에 의해 점령되어 점점 무정부상태로 변하고 있다고 시시각각으로 보도했다.

대장은 여전히 시위를 주도하고 있을까? 소녀도 같이 있을까? 서럽고 외로웠지만, 한편으로 두 사람이 걱정되었다. 이틀 동안에 걸친 밤샘 시위에 지친 소녀가 소년의 자취방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루 종일 자취방에 머물며 기다렸다. 그러나 밤이 되어도 소녀도 대장도 오지 않았다.

소년은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했다. 대장과 소녀의 행동에 비하여 자신은 얼마나 나약하고 비겁한가. 평소 기도로 하느님의 사랑을 갈구하고, 대장을 해쳤던 자들을 용서해야 한다던, 연약해 보였던 소녀조차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역사의 현장에 온 몸으로 부딪히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소년은 행여 소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감상에 젖어 어두컴컴한 자취방 벽에 기대앉아 있을 뿐이었다. 부끄러웠다. 역사에 대한 지극히 이기적인 방관자의 모습이었다. 한심했다. 대장의 용기가 부러웠다.

역 광장을 달려 나가던 소녀의 용기도 부러웠다. 더 이상 방관자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만큼, 소녀만큼은 아니더라도 민주화라는 새로운 역사의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자정을 기하여 부산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소년은 여전히 기다렸다. 그러나 소녀도 대장도 오지 않았다. 꼬박 밤을 새웠다. 새벽 라디오 방송에서 부산 전역에 계엄군이 투입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날이 밝았다.
소년은 여전히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날 오후, 드디어 소년도 거리로 나섰다.

*

차체 지붕에 확성기를 설치한 국방색 군용 지프를 선두로 탱크 다섯 대가 가로로 도열하여 시내로 진군하고 있었다. 부산울산 국도로 이어지는 왕복8차선 상, 하행선을 탱크가 모두 점령하고 있었다.

탱크의 거대한 철제바퀴가 아스팔트 위에 생채기를 내며 굴러가고, 탱크 포신이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듯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탱크 뒤에는 일단의 군인들을 태운 군용 트럭이 꼬리를 물고 따랐다.

삼열종대로 총에 착검을 한 군인들이 탱크와 트럭 좌우에서 줄지어 행군했다. 군인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눌러쓴 철모 아래 눈만 반짝였다.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적의가 느껴졌다. 어둡고 적막한 살기가 풍겼다.

탱크의 시내 진입을 막기 위해 40여 대의 택시들이 삼중 횡대로 늘어서 도로를 점거하고 방어벽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방어벽 뒤로 시위대가 운집해 있었다. 학생들로 보이는 시위대 전면에 나선 사람들의 손에는 화염병과 쇠파이프 등 무기가 들려 있었다. 일전을 불사할 태세였다.

선두에 선 지프가 방어벽을 구축한 택시 전방 50미터 지점쯤에서 멈추어 섰다. 지프 지붕에 매달린 확성기에서 삐, 하는 소리가 울리고 쇠를 갈아내는 듯한 날카로운 남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경고한다. 해산하라. 해산하지 않으면 무력 진압할 것이다. 해산하라.

빵, 빵, 빵, 빵, 확성기의 해산명령을 비웃듯 방어벽으로 구축한 택시에서 일제히 경적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신호로 시위대에서 우, 하는 야유소리가 터져 나왔다. 확성기가 다시 울렸다.

― 다시 한 번 경고한다. 해산하라. 해산하지 않으면 즉시 무력진압에 나설 것이다. 해산하라.

빵빵, 우우, 택시에서 울리는 경적소리와 시위대의 야유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이어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외치는 구호가 도로를 가득 메웠다.

― 독재타도!
― 유신철폐!

지프가 뒤로 빠지고 탱크가 다시 앞으로 나왔다. 탱크가 육중한 바퀴소리를 씩씩대며 택시를 덮쳐가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경적을 울려대던 기사들이 혼비백산하여 차를 버리고 달아났다. 탱크의 육중한 철제바퀴에 깔린 택시가 가랑잎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탱크를 향해 화염병이 어지럽게 날아갔다.

그러나 탱크는 화염병 불길에도 끄떡없이 그대로 진격했다. 탱크에 의해 부서진 택시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시위대가 후퇴하기 시작했다.

후퇴한 시위대는 탱크와 약 100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다시 대오를 정비하여 대치했다. 탱크가 진입하면서 뒤로 물러났던 지프가 다시 전면으로 나왔다. 지프의 확성기에서 다시 한 번 경고방송이 울려 퍼졌다.

― 다시 한 번 경고한다. 해산하라. 해산하라.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무장한 시위대 선봉대가 다시 전면에 도열하고 섰다. 소년은 선봉대 중에 혹시 대장이 있나하고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때 시위대의 선봉대 앞으로 누군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모자도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은 맨얼굴이었다. 아! 소년은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대장이었다. 시위대의 맨 앞에 선 대장이 시위대를 향하여 소리 높여 외쳤다.

― 민주를 열망하는 학생, 시민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하여 모였습니다. 민주시민은 독재를 배격합니다. 민주시민은 무력을 배격합니다. 민주시민은 폭력을 배격합니다. 민주시민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민주시민은 자유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습니까?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들려 있습니다. 우리가 폭력으로 저항하면 독재자와 무엇이 다릅니까? 무력과 폭력을 사용하는 독재자에게 대항하고자 똑같은 폭력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비폭력, 불복종으로 나아갑시다. 무기를 버리고 맨몸으로 저항합시다. 평화적인 시위로 우리가 독재자보다 더 높은 의식을 가진 진정한 민주시민임을 보여줍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합시다. 우리는 맨몸으로 저항하였노라고! 우리는 맨주먹으로 민주화를 쟁취하였노라고!

대장의 목소리는 장중했다. 깊고 크게 울렸다. 그 웅변에 압도된 것일까. 시위대와 계엄군의 대치상황을 지켜보던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이 너도나도 박수를 쳤다. 시위대의 선봉에 서있던 누군가가 대장이 서 있는 앞으로 걸어 나와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대장 발아래에 놓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쇠파이프와 화염병 등 무기를 들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대장 앞에는 이내 시위대가 들고 있던 갖가지 무기들이 수북이 쌓여 갔다.

― 평화시위!
― 유신철폐!
― 독재타도!
― 민주쟁취!

대장의 선창에 따른 시위대의 함성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흘렀다. 구호를 선창한 대장이 이번에는 대치하고 있는 계엄군 쪽으로 걸어갔다. 계엄군 앞 20여 미터 지점 앞까지 걸어간 대장이 다시 멈춰 서서 군인들을 향해 외쳤다.

― 우리는 이미 무기를 버렸습니다. 우리는 평화시위를 할 것입니다. 진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 나라의 국방을 수호할 신성한 의무를 지닌 군인들입니다. 여러분들의 의무는 오직 외부의 적으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보호해야 할 시민에게 무력을 행사하지 마십시오. 진입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은 단지 민주화를 요구할 뿐입니다.

― 다시 한 번 경고한다. 해산하라.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대장이 돌아섰다. 대장이 다시 시위대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구호를 외쳤다.

― 평화시위!
― 유신철폐!
― 독재타도!
― 민주쟁취!

탱크 뒤를 따르던 트럭에서 일제히 군인들이 쏟아져 내렸다.

― 발포 준비!

지프의 확성기에서 명령이 내렸다. 군인들이 우르르 탱크 앞으로 쏟아져 나와 횡렬로 도열하여 어깨에 개머리판을 대고 발포 자세를 취했다. 단호하고도 절박한 목소리가 확성기에서 다시 뿜어져 나왔다.

―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경고한다. 해산하라.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그러나 대장을 위시한 시위대의 선봉대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서 오히려 군인들에게로 성큼성큼 전진하기 시작했다. 확성기를 매단 지프의 창문에서 하얀 깃발을 든 손 하나가 나타났다. 선봉대가 더욱더 가까이 전진했다. 깃발이 아래로 내려졌다.

탕탕탕탕, 펑펑펑펑, 귀를 찢는 날카로운 총소리와 함께 최루탄이 쏟아졌다. 하얀 최루가스 연기가 시위대를 하얀 구름처럼 감쌌다. 총소리에 놀란 시위대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시위대를 지켜보던 시민들의 입에서 저마다 외마디 비명소리가 울렸다.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도로를 뒤덮은 자욱한 최루가스 연기가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

그때 소년은 똑똑히 보았다. 서서히 걷히는 하얀 최루가스 연기 속에 대장이 홀로 도로 위에 우뚝 서있는 모습을. 자욱한 최루가스 연기 속에서도 대장은 말뚝이 되어 버린 듯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당당했다. 갑자기 도로 위에 우뚝 솟아난 거대한 석상처럼 육중하게 보였다.

시위대가 흩어지자, 탱크가 다시 육중한 철제바퀴를 굴리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탱크가 자신을 향하여 다가오는 데도 대장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서서 탱크의 진입을 저지했다.

대장 발치에 까지 전진한 탱크가 대장에게 가로막혀 멈추었다. 그때 탱크 뒤를 따르던 군인들이 무리지어 대장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대장은 피하지도 반항하지도 않았다. 군인들이 휘두르는 총 개머리판이 대장의 몸 위에 무수하게 내리꽂혔다. 잔혹했다. 피가 튀었다. 개머리판에 내리 찍혀 쓰러진 대장의 몸에 다시 무수한 군화 발길질이 휘몰아쳤다.
 

잠시 뒤, 축 늘어진 대장을 군인들이 양쪽 팔을 잡아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끌려가는 도중에 대장의 운동화 한 쪽이 벗겨졌다. 탱크가 대장의 운동화를 깔아뭉개며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 안 돼! 이것은 아니야! 이것은 결코 아니야!)

그러나 그것은 소년의 마음속의 외침일 뿐이었다. 소년은 달려 나가고 싶었다. 달려 나가 대장을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소년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소년이 대장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탱크와 군인들이 지나간 시위현장의 넓은 차도는 텅 비었다. 소년은 그 도로 위에 섰다. 대장이 집단린치를 당해 쓰러졌던 자리에는 피가 낭자했다. 탱크가 깔아뭉개고 지나간 자리에 대장의 신발 한 쪽이 씹다버린 껌처럼 납작하게 도로 바닥에 붙어 있었다. 신발은 피에 젖어 있었다.

소년은 그 신발을 집어 들었다. 소년은 그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신발에서 전해지는 대장의 체온은 여전히 따뜻했다. 신발을 물들인 붉은 피에서 대장의 심장이 여전히 쿵쿵 박동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신발 깔창에서 길고 긴 맥놀이 종소리처럼 대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 오빠!

울음 배인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소녀가 서 있었다. 달려와 쓰러질 듯 소년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 품에 안긴 소녀의 어깨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소년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은 최루가스의 화학작용 때문이 아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감당할 수 없는 분노로 솟구치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

그해 10월 말, 독재자가 심복의 흉탄에 맞아 쓰러졌다.
모두가 염원하던 민주화 시대가 올 것 같았다.
그러나 대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 연재 제36회 <아아! 어머니, 어머니!>은 2019. 6. 24.(월) 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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