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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교향곡, 연재 제34회 <민중의 노래 1>
김영미안  |  anteaj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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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0  05: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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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교향곡, 연재 제34회 <민중의 노래 1>
Symphony in C minor ‘Fate’

   
 

민중의 노래 1

곽 판사 : 변호인의 신문에 대하여 검사는 다시 신문할 사항이 있는가요?
― 예.
용훈이 다시 꽹과리를 든다.

김용훈 검사(피고인 김준하에게)

문 : 피고인은 위와 같은 동아리회의 회장으로 있을 때, 피고인이 작곡한 「민중의노래」라는 악보와 불법폭력 시위를 선동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당시 학교 게시판에 부착한 사실이 있지요?

답 : 그 노래를 작곡한 사실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노래의 제목은 「홍익의 노래」입니다. 「민중의 노래」가 아닙니다. 또한 불법시위를 선동하는 대자보를 작성한 사실도 없습니다. 악보와 대자보를 게시판에 부착한 사실도 없습니다.

문 : 그렇다면 당시 악보와 대자보 또한 수사기관에서 조작한 것이란 말인가요?
답 : 그렇습니다. 당시 수사기관에서 노래 제목과 가사 일부를 바꾸어 대자보로 작성하여 게시판에 붙였던 것입니다.

문 : 당시 대자보가 수사기관에서 붙인 것이라고요? 수사기관에서 왜 그런 일을 한 것입니까?
답 : 그때 공안검사가 내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로부터 뇌물을 받고 대자보 사건을 조작했던 것입니다. 그때 공안검사가 그 사람과 공모하여 당시의 민주화운동을 이용하여 조작한 대자보를 붙여놓고 내가 한 것으로 누명을 씌웠던 것입니다.
문 : 그런데 그렇게 조작된 대자보가 실제로 민주화시위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까?
답 : 예, 그렇습니다. 비록 본래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 노래가 당시 민주화운동의 디딤돌이 된 것을 나는 지금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문 : 결국 그 당시 피고인은 불법폭력 시위를 주동한 사실이 없었다는 말인가요?
답 : 그때의 시위는 잘 알려진 것처럼 시민의 자발적인 시위였습니다. 어느 누구의 선동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 나는 폭력으로 치닫는 시위를 자제하고 평화적인 시위를 하자고 호소했습니다.

문 : 그러나 당시 김인환 검사의 지휘를 받고 있던 수사기관은 피고인에게 불법시위를 주동한 혐의를 씌웠다는 것인가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그렇다면 피고인은 그런 누명을 씌운 당시 공안검사인 김인환에게 보복할 마음이 들었던 것은 당연하겠네요?
답 : 그렇습니다.

준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살인의 동기가 될 수 있는 사실에 대하여 순순히 시인하는 것일까? 살인의 동기를 배제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준하는 성격상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거짓말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처벌을 달게 받을 것이다. 준하의 진술은 모두가 사실이다.

그런데 유독 김인환을 살해했느냐는 결정적인 부분에 대하여는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그렇다면 준하는 정말 김인환을 살해한 것일까? 살해하지 않았다면, 준하는 당당하게 공소사실을 부인할 것이다. 그런데도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그의 양심이 공소사실에 대하여 침묵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렇다. 준하가 김인환을 살해한 것이다. 다만, 그가 공소사실을 인정해 버리면, 그가 말하는 굿판이 깨어져버리기 때문에 그는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거짓말을 하는 대신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용훈은 이와 같은 준하의 내면을 꿰뚫어 보고 있다. 용훈의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해 가을!
그 격렬했던 혼란의 시기.
민중의 노래!
우리 모두가 아픈 가슴으로 불렀던 그 노래.
너무 아파 눈물을 흘리며 불러야 했던 그 노래, 그 아픔의 노래.

앙상한 가지에 새움이 돋아나고, 꽃이 피었다. 그러나 꽃잎 속에는 칼날이 숨어 있었다. 그 칼날이 상식을 난도질하고 하고 있었다. 그 칼날은 외견상 법의 이름을 빌려 정의正義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 법의 집행에는 정의도 상식도 없었다.

상식이 배제된 법을 따를 필요가 있는가. 이 같은 법에 대한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소년이 공부하고 있는 법의 이념과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그것이 소년을 우울하게 했다. 소년의 미래도 불투명했다. 이러한 현실에 소년은 질식할 것만 같았다.

4월이 되었지만, 학내 분위기는 무거웠다. 민주화를 위한 독재타도, 유신철폐라는 소리가 조용히 퍼질수록 보이지 않는 힘이 교정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 힘은 어두웠고, 질기고, 두려웠다. 모두가 억눌린 채 어두운 힘의 지배에 숨을 숙이고 있었지만, 또 다른 힘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소년은 도서관에 웅크려 있었다. 마치 쥐구멍에 숨은 생쥐처럼 도서관 칸막이 책상에 웅크려 있었다. 폐관시간이 임박한 도서관에는 소년과 몇몇 학생이 드문드문 책상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가방을 챙겼다. 오늘도 습기 머금은 자취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장마철처럼 사흘 동안이나 계속하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축축하고 질척거렸다. 소년은 도서관을 나와 질척거리는 교정을 걸어 내려왔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 때문에 우산은 거의 소용이 없었다. 게시판이 보였다. 게시판을 밝히기 위하여 서 있는 보안등이 바람에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희뿌연 광선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소년은 게시판을 그냥 지나쳤을 터였다. 그러나 그날따라 소년은 무엇에 이끌리듯 게시판 앞으로 다가갔다. 게시판에는 평소에는 보지 못한 커다란 대자보 하나가 붙어 있었다.

대자보에는 악보가 적혀 있고, 그 아래 구호가 적혀 있었다. 압핀이 꽂힌 왼편 아래쪽 모서리 끝 종이가 바람에 돌아가는 팔랑개비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민중의 노래」라고 적힌 악보 아래에 시위를 선동하는 격문이 적혀 있었다.

   
 

위험한 대자보였다. 언제, 누가 붙여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자보가 붙여진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학교 당국에서 이 대자보를 보았다면 이미 수거했을 것이다. 아직 게시판에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학교 당국이나,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이 대자보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민중의 노래! 제목부터 저항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악보아래에 적힌 구호, 청년학도여! 조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다함께 궐기하자. 독재타도! 유신철폐의 그날까지! 드디어 누군가가 깃발을 든 것이다.

이렇게 노골적인 선동문구를 적은 대자보를 붙인 주인공은 누구인가? 가사 내용 중 ‘사월의 강가’는 분명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 ․ 19 혁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악보의 가사는 4·19 혁명처럼 다시 한 번 민중이 일어나 독재타도, 민주화를 위하여 궐기하자는 내용이다.
 
   
 

소년은 대자보에 적힌 악보를 따라 천천히 노래를 불러 보았다. 그런데 악보의 가사와 리듬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분명 어디선가 보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순간 소년은 부르르 몸이 떨렸다. 온몸으로 강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대자보에 적힌 가사와 악보는 지난겨울 대장이 보여주었던 악보의 노래가 분명했다.

지난겨울, 홍익문화연구회 회원들이 동계수련회를 한다고 무간암에 왔었다. 그때 2박 3일간의 공식 수련회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가 준비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모두 법당에 모여 수련회를 마친 소감을 차례로 발표하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회원은 아니지만, 소년도 작별인사를 하러 법당에 함께 있었다.

그때 대장이 미리 복사한 악보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소년에게도 한 장을 주었다. 「홍익의 노래」라는 제목이었다. 대장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라고 했다. 대장이 악보에 따라 직접 노래까지 불렀다. 샘솟는 힘이 느껴지는 빠르고 웅장한 행진곡풍의 노래였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리듬에 따라 박수를 치며 따라 불렀다.

그때 대장은 그 노래에 대해 말했다. 중국의 사대주의사관과 일제의 식민사관에 의해 변조되어 버린 우리 홍익민족의 불행한 역사를 이제 끝내야 한다고. 직접 작사, 작곡한 「홍익의 노래」는 그런 열망을 노래한 것이라고 했다.

가야금과 거문고로 상징되는 불행한 역사의 강물에 이제 새로운 홍익의 숨결을 불어넣자고 했다. 그때 악보의 가사에는 악보 아래에 적힌 격문과 같은 정치색 짙은 얘기는 일체하지 않았다.

그 노래가 분명했다. 그 「홍익의 노래」가 「민중의 노래」로 제목이 바뀌어 대자보로 붙어 있었다. 가사도 몇 군데 바뀌어 있는 것 같았다. 대장이 그때의 노래 제목을 바꾸고 가사를 다시 개사하여 대자보로 붙인 것일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평소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에 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대장이었다. 그렇다면 이 대자보는 대장이 붙인 것인가? 설사 대장이 붙이지 않았다고 해도 대자보는 대장과 대장이 주도하고 있는 홍익문화연구회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소년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던 보이지 않는 정보기관의 눈이 뚜렷한 실체로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눈이 불온대자보를 그대로 묵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섬뜩했다. 홍익연구회와 관련이 있다면 대장뿐만 아니라 소녀도 연관된다. 그렇다면 소녀도 위험하다. 그 위험으로부터 소녀를 구해야 한다.

소년은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대자보에 적힌 악보의 가사를 베껴 적었다. 자취방에 가서 그때 대장이 주었던 악보의 가사와 비교해보아야 할 것 같았다. 가사를 베껴 적은 소년은 도망치듯 게시판 앞을 벗어나 학교 앞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갔다.

밤이 깊었지만 소녀에게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다르륵, 다르륵, 전화기 다이얼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마지막 다이얼이 제자리로 돌아가 멈췄다. 길고긴 신호음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초조감으로 입안이 바싹 타들어왔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빗줄기도 점점 더 굵어졌다. 비바람 때문에 평소 번잡하던 학교 앞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동전을 꺼내 다시 넣고 두 번째로 다이얼을 돌렸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전화걸기를 포기하고 비가 쏟아지는 거리로 나왔다.

   
 

소년은 자취방을 향하여 거의 뛰다시피 빠르게 걸어갔다. 맞은편 왕복 4차선 대로변에 환하게 네온사인 조명을 밝힌 레스토랑 간판이 보이고, 그 레스토랑 출입문 앞 갓길 도로변에 검정색 고급승용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레스토랑은 화려한 외양만큼이나 음식 값도 비싸 소년과 같은 가난한 학생들은 거의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다. 그때 마침 레스토랑 출입문에서 세 사람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순간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재빨리 근처 가게 처마 밑 그늘로 몸을 숨겼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대낮처럼 환한 간판 불빛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 중 두 사람은 분명 악동과 따까리였다. 그런데 그 둘과 함께 나온 다른 한 사람도 눈에 익었다. 분명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었다. 어디서 보았더라?

아! 그 친구다. 소년은 이내 머릿속에 세모꼴 얼굴 하나를 떠올렸다. 언젠가 학사주점에서 대장과 함께 만난 적이 있는 친구였다. 흡사 냉혈동물의 피부에 닿는 것처럼 손이 차가웠던 친구, 홍익연구회의 기획부장 겸 총무라고 했었지. 그런데 저 친구가 왜 악동과 함께 있을까?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승용차 운전석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 큰 젊은 남자가 내려 출입문 앞으로 다가가 악동에게 우산을 받쳐주었다. 남자가 우산을 든 채로 승용차 뒷좌석 문을 열어주자, 악동과 세모가 먼저 차에 탔다. 이어 따까리가 앞좌석 조수석에 탔다. 남자가 다시 운전석에 오르고 승용차는 비가 뿌리치는 도로를 질주하여 사라졌다.

소년은 차가 사라진 도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따까리가 악동과 함께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홍익연구회의 기획부장 겸 총무라고 했던 친구가 악동과 함께 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개운치 않았다.

어쩌면 그 친구도 악동과 같은 패거리가 아닐까? 악동이 기획부장이라는 저 친구를 이용하여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자취방으로 돌아온 소년은 지난겨울 무간암에서 공부했던 민법 채권교과서를 꺼냈다. 그 책갈피 어디에 그때 대장이 주었던 악보가 있을 것 같았다. 악보가 채권교과서 제일 마지막 표지갈피에 반으로 접힌 채로 끼워져 있었다. 소년의 기억이 맞았다.

그때 대장이 준 악보는 「홍익의 노래」라는 제목이었다. 대자보의 악보 세 번째 마디 가사 ‘사월의 강가’, 4·19 혁명을 상징하는 이 문구는 원래 악보에는 ‘역사의 강가’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끝에서 여덟 번째 마디에 붙여진 ‘민주 노래’, 이 단어도 원래 악보에는 ‘홍익 노래’로 되어 있었다.

그 외에는 모두 그때 대장의 악보와 같았다. 그렇다면 대자보의 악보는 대장이 작사, 작곡한 노래가 분명하다. 원래 악보에서 나타낸 반만년 역사의 강물에서 왜곡되고 찢겨버린 홍익정신을 되찾아야한다는 장엄한 주제의 노랫말이 이 시대의 독재타도, 유신철폐를 선동하는 저항의 노랫말로 바뀌어 있다.

습기 차고 눅눅한 자취방에 누웠으나 소년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대장이 작곡한 노래가 실린 대자보가 있었고, 악동과 기획부장이라는 친구가 함께 있었다는 것이 단순히 우연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둘이 대자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창밖에는 여전히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문틀에 아귀가 잘 맞지 않는 창문이 밤새도록 끽끽대며 덜컹거렸다. 그 소리는 소년의 불안한 마음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소년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

학생들의 모임이나 행사에서 「아침이슬」 노래가 마치 애국가처럼 불렸다. 대자보에 실린 노래도 빠르게 학생들의 입으로 번져나갔다. 목련이 져버린 도서관 앞 잔디밭에서도, 유령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어두컴컴한 강의실 복도에서도, 김치냄새 배인 구내식당에서도, 소주와 탁주 냄새가 뒤섞인 학사주점에서도, 담배개피 내기시합을 하는 당구장에서도,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음악다방에서도, 대자보에 실린 노래가 유행가처럼 흘러나왔다.

그 노래는 신음소리 같았다. 학생들은 그 노래를 부르면서 분노에 찬 울음을 삼켰다. 울음을 삼키면서 억압과 고통의 시대가 끝나기를 갈망했다. 그 갈망은 깊은 바다와도 같았다. 깊은 바다에 감추어진 갈망은 심해의 화산이 폭발하듯 언젠가는 폭발할 것이다. 누군가가 뇌관으로 연결되는 심지에 불을 붙일 것이다. 대자보에 적힌 노래가 그 갈망의 심지에 서서히 불을 붙이고 있었다.

소년은 그 대자보의 주인공이 과연 대장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장을 만날 수가 없었다. 학교에도, 도서관에도, 집에도, 그 어디에도 대장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소녀도 대장의 행방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홍익연구회의 부회장인 남학생과 학술부장이라고 하던 사학과 여학생이 경찰에 연행되어 밤샘조사를 받고 나왔다고 했다. 대장의 행방을 추궁했다고 했다.

부회장과 학술부장을 조사하였다면, 대장과 가까운 소녀도 조사할 것이다. 그러나 소녀를 연행해가지는 않았다. 소년과 소녀가 대장과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 눈은 모르는 것일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눈은 바로 지척에 있었다. 소년의 자취방이 있는 골목에 낯선 남자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보이지 않는 눈은 소년을 감시하면서 대장이 접근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소년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오히려 더 태연하게 행동했다.

새벽에 일어나 도서관에 가고, 도서관이 문을 닫는 늦은 밤에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어김없이 반복했다. 소년이 감시를 당하고 있다면 분명 소녀도 그럴 것이다. 소년은 대장이 그의 자취방에도 소녀의 집에도 나타나지 않기만을 간절하게 바랐다.

그런데 도대체 대장은 정말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그것보다 우선 대자보는 정말 대장이 붙인 것일까? 비록 대자보의 노래가 대장이 만든 노래라고 할지라도, 대장이 과연 제 노래를 직접 게시판에 붙였을까? 다른 사람이 한 짓은 아닐까?

소년의 이러한 의심은 대자보가 붙여진 날, 악동과 홍익문화연구회 기획부장이라고 하던 친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대자보 사건은 악동과 기획부장인 그 친구가 꾸민 음모일지도 모른다. 악동의 해악을 떠올리자 소년의 불안은 이제 두려움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

여름 방학이 되자마자 소년은 짐을 꾸렸다. 우선 감시의 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소녀가 궁금했지만,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다. 분명 거기에도 감시의 눈이 있을 것이다. 괜히 소녀를 만났다가 도리어 화를 자초할 것만 같았다. 무간암에 가기로 했다. 어쩌면 대장이 무간암으로 연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간암은 짙은 녹음 속에 잠겨 있었다. 스님은 없었다. 암자에 머무는 시간보다 밖에 나가 있는 날이 더 많은 스님의 행적이었다. 소년은 한 동안은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오직 책과 더불어 숲이 되고자 했다. 숲을 스치는 바람이 되고자 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소년은 숲도, 바람도, 물도 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소년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눈은 매섭고, 그 촉수는 광범하고 섬세했다. 감시의 눈은 녹음이 짙은 숲 속 그늘에도 숨어 있었다.

늦은 오후, 잠시 더위를 식히고자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돌아오니 요사 방문 앞 마루턱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눈초리가 매서웠다. 허름한 반소매 셔츠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소년은 그 남자가 자취방 골목을 기웃거리던 형사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소년의 방문이 열려있고, 얼핏 보아도 형사가 이미 방안을 뒤져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살할머니가 대웅전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소년을 보고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겁에 질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순사라고 한다. 다짜고짜 네 방부터 뒤지더라.

소년이 보살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형사에게 다가갔다. 형사는 신분증도 내보이지 않고 또 자기가 누구라는 말도 없이 대뜸 소년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 대장(대장의 이름을 불렀다)을 아는가?
― 알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닙니다.
― 그와는 어떤 관계인가?
―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습니다.

― 지금 그는 어디에 있는가?
― 모릅니다.
― 학교에 붙은 대자보를 본 일이 있는가?
― 없습니다.
― 대자보에 적혀 있었던 노래를 아는가?
― 모릅니다.

― 대자보의 노래는 대장이 만들었는가?
― 모릅니다.
― 대자보는 대장이 붙였는가?
― 모릅니다.
― 너도 홍익연구회 회원인가?
― 아닙니다.

― 왜 이 절에 와 있는가?
― 사법시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그의 소식을 들었는가?
― 못 들었습니다.

질문은 건방지고 불쾌했다. 거짓대답을 하면서 소년은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영 개운치가 않았다. 대장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고 한 것은 더 마음에 걸렸다. 대장에게 미안했다. 오직 부인하는 말뿐, 지레 겁을 먹고 당당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한 시간도 더 넘게 꼬치꼬치 캐묻던 형사가 제 풀에 지쳤는지 공부 열심히 하라고 빈정대는 말을 툭 던지고 그쯤에서 떠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녁나절이 되어 무간 스님이 돌아 왔다. 스님은 바랑에 노을을 잔뜩 짊어진 채로 경내로 들어섰다. 스님의 바랑에서 붉은 노을이 뚝뚝 떨어졌다. 절을 떠난 지 거의 한 달 만에 돌아온 것이었다. 이른 저녁공양을 마치고 나오니, 무간 스님이 암자 마당에 서서 뒷짐을 진 채로 물끄러미 먼 산 하늘가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님이 소년을 불렀다.

― 헛된 곳에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구나.

스님이 말했다. 소년은 스님이 하는 말뜻을 알 수 없어 잠자코 있었다.

― 그 아이의 소식이 궁금하냐?

여전히 먼 산에 시선을 머문 채 스님이 말했다. 소년이 대답하기 전에 스님이 다시 먼저 말했다.

― 그 아이는 내가 마음공부를 좀 시키려고 어떤 곳에 맡겨 두었다. 그러니 너도 헛된 곳에 마음을 쓰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여라. 네가 마음을 쓴다고 하여 그 아이의 신상에 어떤 변화가 올 것도 아니다. 네 마음만 어지러워 질 뿐이다.

대장이 먼저 무간암을 다녀간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대장은 대자보 사건과 함께 미리 몸을 피했던 것인가? 대자보는 정말 대장이 붙인 것인가? 스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대장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 스님?

그러나 스님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거처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스님이 바라보던 먼 산 노을이 저녁 으스름에 물들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계곡 물소리가 어둠 속으로 잦아들었다.

*

그해 8월, 야당 당사에서 농성 중이던 YH무역 여성근로자들이 폭염 속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권력은 자신의 비대해진 힘을 쓸 곳을 몰라 비틀거렸다. 172명의 연약한 여성근로자들이 그 열배나 넘는 정, 사복 경찰관들에 의해 야당 당사에서 끌려나왔다. 이 와중에서 여성근로자 한 명이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려 꽃다운 생명을 잃었다. 그녀의 가냘픈 몸은 꽃잎처럼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비가 내렸다. 태풍 주디가 몰고 온 비바람이 전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비바람은 부패한 권력을 닮아 있었다. 부패한 권력은 태풍이 몰고 온 탁류처럼 거침없이 흘렀다. 어느 누구도 그 탁류에 맞설 수가 없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소년은 여전히 대장이 걱정되었다. 대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해 여름은 음산한 두려움에 갇혀 있었다.
그해 여름은 폭염과 비와 태풍에 짓눌려 깊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 연재 제35회 <민중의 노래 2>은 2019. 6. 17.(월) 에 게재됩니다.
― 《다음 검색창》에서 『살인 교향곡』을 검색하시면, 지금까지 연재된 모든 연재물(연재 제1회부터 제34회까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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