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소나무
- 무담 선생께

                                          이 서 린

머리를 감고 싶소. 화르르 머릿속의 먼지 모두 떨치고, 검은 갈기 휘날리며 달려오는 북풍에 묵은 비듬 깨끗이 씻어 머리를 헹구고 싶소. 자고 나면 덧없이 황량해지는 기후, 전신을 휘감아오는 안개의 기습, 소란스런 날새떼 쯤 끄떡하지 않겠소. 건조한 살갗과 마른 입술로 때로는 휘파람도 불어가면서 언 땅 깊이 시린 발가락 뻗어 가겠소. 강물 소리 멀어져 아득하다 해도 살이 얼어 갈라지는 밤이 온대도 발아래 안온함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오. 눈송이 흩날리는 축복의 날엔 그리운 마음으로 팔을 뻗어 웃겠소. 바람이 매서울수록 혈관은 푸르고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올 것이오. 소리치지 않겠소. 여기, 이 자리 나는 서 있겠소.

* 작가노트

▲ 이서린 시인

좀처럼 휘둘리지 않는다. 외로움도 잘 견딘다.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 보인다.
무리에 잘 섞이지 않는다. 눈빛은 여전히 세다는 느낌이다. 더불어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고독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는 늑대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무리를 떠나 겨울 눈밭을 헤쳐 나가는 발걸음이다. 웬만한 폭설과 세찬 칼바람도 견디는, 그가 존경스럽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이서린은 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2007년 《김달진창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저녁의 내부』가 2016년 <세종우수도서 문학 나눔>에 선정되었다. 주책밴드, 시문학연구회 하로동선 동인으로 현재 문학치료강사로 일하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