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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자작추천시> 김시탁, 술 취한 바람을 보았다
김영미안  |  anteaj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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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07  07: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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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바람을 보았다

                                                  김 시 탁

   
 

흐린 날 오후 논두렁에 퍼질러 앉아
농부가 마시던 막걸리 잔을 빨다가
낮술에 취해 벌러덩 논둑 밑으로  
미끄러지는 바람을 보았다

포장마차 천막을 헤집고 들어가
생이 삐걱거리는 사람들과 목탁에 앉아
홍합국물을 훅훅 불어가며 잔을 부딪치다
술병을 안고 바닥을 뒹구는 바람을 보았다

길바닥에 오줌 누던 술꾼 하나가
바지춤 추스르고 돌아서다 전봇대에 이마를 받듯
비틀거리며 중앙선을 넘다가 화물트럭에 치여
괴성을 질러대는 바람을 보았다

근육 좋은 바람은 어깨를 걸고 다니다가
밤이 깊어지면 쥐 난 다리를 절룩이며 돌아와
낯선 집 걸어 잠근 대문 앞이나 후미진 골목에서
빈 병처럼 뒹굴다가 노숙자처럼 잠들었다

새벽녘, 채 가시지 않은 술기운으로 일어나
마른기침을 토해내며 맨발로 걸어 나가는
등이 넓어 떨림이 큰 철없는 사내 하나가
미루나무 끝에다 축축한 생을 목매달고 있었다 

* 작가 노트 

   
▲ 김시탁 시인

청춘은 청춘이어서 아플 때가 있다.
사내는 사내여서 슬플 때가 있다.
청춘을 다 베어 먹고 목탁에 앉아 술잔을 비우는 사내는 아프고 슬퍼봤다.

그리고 근육질의 세월 앞에 무릎을 꿇기까지 많은 시간들을 살해했다.
무자비하게 죽어간 시간들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까칠한 밤을 끌어안고 뒹굴며 불면의 사생아를 잉태하는 일 그 고통을 그대는 아는가.

비 맞은 우체통처럼 벌겋게 낮술에 취해 거리를 방황하며 절망을 한 양동이 뒤집어쓰고 들개처럼 울부짖던 젊음은 갔다. 빈혈로 허덕이던 희망도 말라죽었다.
심장이 삐걱거리고 가슴에서 먼지가 날 때 사내는 다시 목탁에 앉았다.

짝이 맞지 않은 나무젓가락으로 잘못 살아온 머뭇대고 망설여온 생을 두들기며 중년이 시퍼렇게 멍들 때 비로소 사내는 아프다.
넓은 등의 떨림이 눈물로 쏟아질 때 그는 미루나무 끝에다 목을 매단다.
덜 마른 빨래처럼 구겨진 축축한 생이 바람에 흔들리는 새벽 서산을 감은 운무는 알고 있다.

새벽안개는 술 취한 바람의 눈물이라는 것을.
사내는 술 취하면 다 바람이 된다는 것을.

김시탁 시인은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2001년 《문학마을》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어제에게 미안하다』(2017년) 등 총 4권의 시집을 펴냈다. 2016년 창원시문화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창원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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