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자전거

                                               유 제 범

산책로에 자전거 한 대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삼 일마다 지나면서 같은 모습을 지켜보려니 안쓰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긴 나는 궁금한 것이 유난히 많기는 합니다.

이것을 처음 본 것은 한 달여 전입니다. 볼 때마다 주인이 언제나 데려가려나, 자전거 자신보다 더 간절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마치 유기된 강아지가 주인이 올 때를 애타게 기다리는 모양과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엔 세워져 있더니 이제는 누워 있습니다. 오래 서 있기도 힘이 드나 봅니다. 북풍한설이 몰아치기도 하니 말입니다. 눈발이 흩날리던 며칠 전엔 가랑잎을 끌어 모아 가슴까지 덮고 있더니, 바람이 심술을 부려 다 날아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이것의 족보를 따져 봅니다. 스티커를 보니 2015년 3월에 태어났습니다. 겨우 사 년도 못 됐다는 얘기죠.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같은 상표의 것을 검색해 보니 판매가격은 쇼핑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9만 원에서 16만 원 사이입니다. 고급품은 아니지만, 결코 싸구려 자전거는 아닙니다. 기어도 7단이나 달려 있습니다. 접이식이라 자동차 트렁크에도 쉽게 넣을 수 있습니다. 아동과 청소년이 함께 쓸 수 있는 제법 훌륭한 가정용입니다.

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부서지고 고장 난 것도 아닙니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녹이 좀 슬고 때가 조금 탔습니다. 당연합니다. 기계는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지 않으면 녹이 나고, 눈비를 맞추면 때가 껴 외양이 초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데리고 가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면 금방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겁니다. 주인과 함께 다시 즐거운 산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한데, 나같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데려가 보호할 수도 없습니다. 옆의 철제 기둥에 꼭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니 주인은 이 녀석을 아주 버린 건 아닌 모양입니다. 아마 자기가 올 때까지 어디 가지 말고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당부하고는 일을 보러 간 듯합니다.

그런 주인에게 문제가 생겼는지 그날도 이튿날도 지나 한 달이 넘도록 안 온 것입니다. 아마 영원히 못 올 사정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자전거는 기차역에서 9년간 주인을 기다리던 일본의 충견 〈하치〉와 같이 지친 모습으로 여전히 주인을 기다립니다. 혹시 큰 병이나 신체를 다쳐 데리러 오지 못하나 추측해 보지만, 그런 불상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합니다. 차라리 무심한 주인의 유기로 돌리는 것이 나을까 싶습니다.

학생들은 종종 이럽니다. 모양과 상표가 우선이고, 고장이 안 나도 싫증나면 버리기도 한답니다. 길가에 버려진 것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학교 유실물 센터에는 찾아가지 않는 귀중품도 많다고 합니다.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부모는 결코 푼돈이 아닌 돈으로 사준 자전거가 한 달째 보이지 않는다면 찾아오도록 자녀를 다그칠 만도 한데 그마저도 안 하는 모양입니다. 옛말에‘정수리에 부은 물 발등으로 떨어진다.' 는 말이 있습니다. 부전자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깁니다. 물자가 귀하지 않을 때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금아 선생은 수필「가구」에서‘세전지물(世傳之物), 우리네 살림에는 이런 것이 드물다…<중략>…가난한 탓도 있고, 전란을 겪은 탓도 있고, 한 군데 뿌리를 박고 살지 못한 탓도 있다. 그리고 오래된 물건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 잘못에도 있다.’며 오래된 가구나 집기를 끔찍이도 귀하게 여기는 서양 사람과 우리를 비교하며 아쉬워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지난봄에는 이런 자전거 수백 대를 모아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녀석도 머지않아 거기로 끌려갈지 모릅니다. 그러면 생명은 끝날 것입니다. 참 아깝고 아쉬운 일입니다.

▲ 유제범 수필가

유제범 수필가는 공기업 정년퇴직 9년차로 근교에서 소규모 영농을 하고 있다.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서정문학>과 <계간문예> 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수필분과)와 경기한국수필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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