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보내지 않겠습니다

                                                김 시 탁
 

사람들이 책을 보내줘도 읽지 않는답니다
아무 책이나 받는 것도 귀찮다는 것이지요
겉만 보고 뜯지도 않고 봉투 채 쌓아두기도 한다네요
그렇게 쌓인 책은 야식 먹을 때 라면 받침대나
바퀴벌레 잡는 도구로 사용하거나 장롱 모서리에 끼여
평생을 썩기도 한답니다
작가는 가슴으로 키운 자식 하나 채비 들여보냈으니
잘살아주길 바랄 텐데 무슨 비참한 운명이란 말입니까
냄비 받침대 밑에서 얼마나 뜨거울까요
바퀴벌레를 놓친 바닥에 맞는 정수리와 뺨은 또 얼마나 아프고
안방 장롱 모서리에 끼여 질식사한들 누가 알기나 할까요
요즘은 둘째만 낳아도 큰돈 준다는데 네 번째 나온 시집
겉봉투를 풀질하다 말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를 아무 데나 시집보내면 골병이 들겠구나
차마 그 소릴 듣고 어떻게 내 새낄 사지로 보냅니까
혼자 살아라 먼지 마시며 구석에 있더라도 아비 곁이니
그래도 여기선 아비가 지켜줄 수 있으니까요
잠 좀 잔다 하여 생이 통째로 거덜 나겠습니까
좀 편히 쉬거라 내 피붙이 소중한 새끼야
기죽지 말고 어깨 펴고 고개 빳빳이 들거라
봉투에 풀질하다 말고 새끼 얼굴 한 번 더 만져 봅니다
고것 누굴 닮았는지 까슬까슬 한 게 좋기만 하네요
이제 시집보내지 않겠습니다.

* 작가 노트 

▲ 김시탁 시인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는다. 시집을 사지 않는다. 시집을 사지 않아도 시는 인터넷의 바다에 하염없이 떠다닌다. 표류하는 시들의 시체가 즐비하다. 시를 읽지 않아도 시집을 사지 않아도 시인은 시집을 낸다.

시집을 출판해서 시를 읽지 않아도 시집을 보낸다. 우편물로 시집은 분주하게 배달된다. 그 시집이 겉봉투도 뜯기지 않은 채 쌓여 있기도 하고 라면 받침대로 사용되기도 하고 바퀴벌레를 잡고 파리를 잡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구석에 쌓여 부옇게 먼지를 마시는 일이 허다하다. 장롱모서리에 깔려 질식한 채 한평생을 보내야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 입장에서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못해 심장이 멎을 지경이다. 어떻게 키운 살붙이인데 모든 걸 쏟아 부은 자식인데 저리 살 바엔 시집보내지 않겠다. 그냥 데리고 살란다. 애비 곁에 두고 그냥 바라보며 살란다.

그래 그래 절대로 시집보내지 않겠습니다. 내 새끼 평생 내가 데리고 살랍니다. 볼 딱지만 만져 봐도 이리도 고운 것을 요 잘난 것을…….

김시탁 시인은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2001년 《문학마을》로 등단했다. 지금까지 『어제에게 미안하다』(2017년) 등 총 4권의 시집을 펴냈다. 2016년 창원시문화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창원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