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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교향곡, 연재 제13회 <새로운 용의자>
김영미안  |  anteaj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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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7  08: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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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교향곡, 연재 제13회 <새로운 용의자>
Symphony in C minor ‘Fate’

   
 

새로운 용의자

오월 중순밖에 되지 않았지만, 날씨는 이미 여름으로 접어들어 후텁지근했다. 박경일은 최수환과 함께 홍익문화연구소로 가기 위해 차를 몰고 검찰청을 나섰다. 홍익문화연구소는 사건기록에 나오는 인물들 중 김준하가 연구소장으로, 박형기가 사무처장으로 함께 재직하고 있는 학교법인 홍익재단 부설 연구소였다. 김용훈 검사가 이곳으로 가서 직접 두 사람을 한 번 만나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박경일의 차가 연산로터리로 들어서자 거리 곳곳에는 김인환의 피살로 인해 다시 치러지는 재선거 선거벽보와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이미 사흘 전에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참이었다. 공식선거전에 돌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선거는 여당의 신예정치인으로 촉망받는 정해현의 독주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유세가 시작되자 선거의 양상은 의외로 정해현이 제1야당 후보에게 고전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그 원인은, 비록 석방되긴 했지만, 정해현의 보좌관인 최경호가 여전히 김인환 살인 혐의를 완전히 벗지 못하였고, 이런 사실을 야당 후보가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홍익문화연구소는 금정산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추일봉 중턱 산기슭에 있었다. 산기슭 굽이를 몇 번이나 돌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자 고물이 다 된 차가 비명을 울리면서 타이어 타는 고무냄새를 풍겼다. 이윽고 오르막길이 끝나고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평탄한 산복도로에 이르자 탁 트인 차창 밖으로 멀리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산복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얼마간 나아가자 도로 오른편에 《학교법인 홍익재단 부설 홍익문화연구소》라는 별로 크지 않은 입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박경일은 그 입간판이 서있는 도로 왼편 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이 전망대에서는 맑은 날이면 대마도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시에서는 바다 쪽으로 툭 돌출한 지형인 이곳에 터를 닦아 대마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설치해 두고 있었다. 
 
   
 

― 야,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군.
최수환이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두 팔을 크게 벌려 심호흡을 하면서 말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전망대 아래 산중턱에 홍익재단의 상징인 홍익고등학교가 마치 도시 속 오아시스처럼 숲에 싸여 있었다.

학교법인 홍익재단은 구한말 독립운동가이자 대종교의 창시자인 나철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일석 홍창훈 선생의 유족들이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설립한 교육재단이었다. 초대 이사장은 과거 국회의원을 지낸 고 홍한일 박사였다.

홍한일 박사는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아버지 일석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과거 일본에 의해 국권을 빼앗겼던 아픈 역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일부러 대마도가 보인다는 이곳 산중턱에 학교를 세웠다고 했다. 이 산의 이름도 일제의 잔재와 친일세력을 추방한다는 의미로써, 또는 일본을 따라잡아 추월하겠다는 의미로써 추일봉追日峰이라고 새로 지었다고 했다.

이러한 항일정신을 가진 고 홍한일 박사가 주창한 교육이념은 민족혼으로써의 홍익정신이었고, 일석 선생의 유족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재산을 출연하여 이를 실현할 인재를 양성하고자 학교법인 홍익재단을 설립했다. 특히 홍익재단의 상징인 홍익고등학교는 홍익인의 품성을 함양하기 위하여 세운 영재학교로써 이 학교에 입학하는 사실만으로도 뉴스거리가 될 만했다. 홍익고등학교는 전교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고 전교생 전원이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했다.

그러나 홍한일 박사가 정치에 입문하여 국회의원이 된 이후 치명적인 도덕적 실수를 하여 구속된 후 유치장 창틀에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고, 현재는 홍한일 박사의 둘째 아들 홍정익 이사장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박경일과 최수환도 오래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 홍한일 박사의 성추문과 이로 인한 자살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은 홍익재단 부설 홍익문화연구소는 도로변 입간판이 서있는 곳에서 오른편 산 위쪽으로 약 200m 정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간 숲 속에 있었다. 연구소건물은 흡사 숲 속에 있는 사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무실로 사용하는 정면 두 칸 기와집 한옥 한 채와 그 한옥 뒤편에 교실 또는 강연장으로 사용되는 제법 큰 목조기와집 건물이 한 채 더 있었다.

박경일은 한옥 앞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과 한옥 사이 경사면에는 자연석을 쌓아 운치 있는 조경을 하였는데, 그 전면 중앙에 제법 크고 깊은 반타원형 인공연못이 조성되어 있었다. 연못에는 수련과 부레옥잠 등 수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이들 수초 사이에서 붉고 하얀 비단잉어와 금붕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이 연못 중앙에 높게 쌓은 대리석 제단 위에 청동주형 단군상이 앉아 산 아래 펼쳐진 시가지와 멀리 망망대해를 굽어보고 있었다. 대리석 사각벽체 전면 중앙에 ‘弘益人間理化世界홍익인간이화세계’ 라는 홍한일 박사의 낙관이 새겨진 한자휘호가 세로로 길게 세운 자연석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박경일과 최수환이 한옥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올라가자, 한옥 전면 왼편 출입문이 먼저 열리며 대학생 같은 여자가 나와 공손하게 절을 하며 말했다.
― 어서 오십시오. 해운대경찰서에서 오셨습니까?
방문하겠다는 전화를 미리 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은 여자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섰다. 중앙 책상에 앉아있던 남자가 나와 두 사람을 맞았다. 역삼각형 얼굴에 중키의 중년 사내였다.
― 어서 오십시오. 사무처장 박형기입니다.

박형기가 명함을 내밀면서 인사했다. 세모꼴 얼굴에 박힌 박형기의 두 눈은 뱀눈처럼 유난히 작았다. 그 작은 눈이 한 곳에 초점을 두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김용훈 검사가 건네준 기록을 읽으면서 느낀 박형기에 대한 선입견 때문만은 아니었다. 분명 박형기는 안절부절못하며 초조감을 보이고 있었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았는데, 사무실 안은 꽤 넓었다. 책상 다섯 개와 응접소파 세트가 놓여 있는데도 공간이 남아 넉넉했다. 뒤쪽에 따로 칸막이를 해서 만든 별도의 방도 하나 더 있었다. 두 사람이 소파에 앉는데, 뒤쪽 칸막이 방 출입문이 열리며 회색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가 나왔다.

― 어서 오십시오. 김준하 소장입니다.
박형기와는 대조적으로 동작이 절제되고 안정감이 있었다.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쉽게 범접하지 못할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

김용훈 검사가 건네준 사건기록은 두 개였다. 김 검사의 방에서는 보지 않았지만, 사무실로 돌아와 기록을 살펴보니 ‘7×푸2407호’라는 사건기록 뒤에 또 하나의 사건기록이 편철되어 있었다.

음성메시지의 제보자가 언급한 7×푸2407호 소년보호 사건은 의외로 사소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같은 고등학교의 같은 반에 있던 학생들 사이에 있었던 작은 다툼이 발단이 되어 한 학생이 다른 학생 하나를 칼로 찌른 상해 사건이었다. 또래 고등학생들의 치기어린 맞싸움이 원인이 된 것으로 이십년도 더 지난 당시의 세태를 감안하면 그리 큰일도 아닐 성 싶었다.

그런데 이 사건기록 속에서 가해자는 현재 홍익문화연구소의 김준하 소장이었고, 피해자는 정해현의 보좌관인 최경호였다. 이 사건에서 김준하는 당시 최경호가 스스로 자기의 배를 찔러 자해를 했고, 더욱이나 자기는 칼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고 범행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김준하의 주장은 당시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정해현과 다른 학생들의 진술에 의하여 배척되었고, 결국 이 사건에서 김준하는 법원에서 소년원 송치 선고를 받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당시 김준하를 특수상해죄로 기소한 담당 수사검사가 바로 김인환이었다.

이 사건기록 뒤에 있는 또 하나의 사건기록은 김용훈 검사가 김준하라는 인물의 전과 조회에 나타난 사건기록을 찾아내어 편철해 놓은 것이었다. 이 기록은 김준하의 국가보안법위반 사건기록이었다.

이 사건은 김준하가 대학 재학 당시 홍익문화연구회라는 동아리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자로부터 행동강령 지침을 받아 당시 학내시위를 선동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에서도 김준하는 자기의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기록에서도 증인 최경호와 또 다른 증인 박형기의 증언에 의하여 김준하의 항변은 인정되지 않았고, 이 사건으로 김준하는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실형 3년을 언도받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공안검사 또한 바로 김인환이었다. 이 두 개의 사건에 나타난 인물 중에서 당시 수사검사였던 김인환이 피살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익명의 제보자는 왜 이 기록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을까. 그것은 제보자가 직접 언급한 김준하의 소년보호 상해 사건과 그 이후의 전과 기록에 나타난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이 김인환 피살 사건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이 두 개의 기록에 나타난 인물들의 관계와 역할에 비추어 김인환 피살 사건의 인과관계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먼저 이 기록에 나타난 것처럼 당시 범행 사실을 극구 부인했던 김준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 셈이었다. 이 경우 김준하는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당시 검사였던 김인환을 보복 살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박경일은 첫 번째 상해 사건의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김준하의 진술에 특히 주목했다. 그 조서는 김인환이 직접 신문하여 작성한 것이었고, 그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진술이 있었다.

“(이때 보호소년이 전혀 반성하는 기색 없이 갑자기 절규하는 목소리로) 지금부터 나에게 영혼은 없어. 당신들에게 복수할 거야. 이제부터는 내가 당신들을 심판하겠어. 내 손으로 반드시 당신을 죽이고 말겠어.”

이 조서와 기록 속 다른 인물들의 역할을 분석하면 김인환을 살해할 동기를 가진 사람은 김준하밖에 없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김인환에게 협조한 증인들로서 이들이 김인환을 해칠 이유는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가정에 의할 경우 김인환 피살 사건은 김준하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리고 만에 하나 박형기가 현재 김준하의 지시를 받는 홍익문화연구소 사무처장임을 고려하면 이 둘의 공동범행일 가능성을 전연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김준하 주도의 범행이라는 가정에 대하여 최수환은 강하게 부정했다. 김준하가 누명을 섰다고 하더라도 20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새삼 복수할 마음이 생겼을까? 무엇보다 김준하의 단독 또는 박형기와의 공범으로 이해할 경우 피살자의 목에서 최경호의 머리카락이 발견된 점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최수환은 익명의 제보자의 의도를 이 범행이 최경호와 박형기의 공범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즉 피살자의 목에서 최경호의 머리카락이 발견된 것은 최경호가 범인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명확한 증거이다. 따라서 정해현이 선거에서 패배하자 보좌관인 최경호와 과거 자신을 위해 일한 적이 있는 박형기를 시켜 김인환을 살해하였고, 이 범행과정에서 최경호의 머리카락이 피살자의 목에 떨어졌을 개연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었다.

이런 두 가지 추리를 정리하면 결국 김인환 피살 사건은 김준하 주도의 개인적 보복 살인인가, 아니면 정해현 주도의 정적 제거를 위한 정치적 살인인가로 압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반된 두 개의 가정에도 불구하고 음성메시지가 보낸 사건기록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핵심인물인 김준하와 박형기를 조사해야 한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김용훈 검사의 지시는 바로 이런 사실을 꿰뚫어보고 내린 것이었다.

그래서 박경일과 최수환은 기록 속에서 새로운 용의자로 등장한 김준하와 박형기의 직장, 주거지 및 사건 당일의 행적에 대하여 그동안 광범위한 탐문조사를 거친 후에 두 사람의 태도를 떠보기 위하여 홍익문화연구소로 왔던 것이다.
― 이번에 살해된 김인환과 김준하 씨의 관계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박경일이 먼저 김준하에게 말했다.

― 그 사람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까?
― 김준하 씨, 당신은 과거에 특수상해 사건으로 소년원에 간 적도 있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교도소에 간 적도 있더군요.
― 그래서요?
― 당시 사건담당 검사가 이번에 살해된 김인환인 것은 알고 있지요?
― 그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가요?

― 당신은 그때 김인환을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고 했더군요.
박경일은 김준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다그쳤다.
― 지금 나를 살인자로 의심하는 겁니까? 내가 그때 그 사건으로 보복 살인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 그렇습니다.
― 그런 문제라면 정식으로 소환장을 보내십시오. 언제든지 소환에 응하겠습니다.
김준하가 정색을 하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 박형기 씨, 당신은 김인환이 피살된 날 밤 어디에 있었어요?
이번에는 최수환이 목소리를 높여 박형기를 추궁했다. 박형기는 일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작은 눈을 초조하게 깜빡거리며 어깨를 떨었다.
― 박형기 씨, 당신은 김인환이 피살되기 직전에 누군가의 차를 타고 집을 나갔지요? 사건 당일 밤, 당신을 찾아온 사람은 누구였고, 어디에 갔었나요?
최수환이 틈을 주지 않고 박형기를 쏘아보며 큰소리로 다그쳤다. 박형기의 얼굴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손까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 이제 보니 상당히 무례한 분들이군요. 그런 문제라면 정식으로 소환장을 보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만일 사무처장과 내가 김인환을 살해하기라도 한 어떤 증거라도 있으면 정식으로 체포영장을 가지고 오십시오. 우리는 언제나 여기 있을 겁니다. 그럼 그만 일어나실까요?
김준하가 최수환의 말을 받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김준하의 태도는 박형기의 모습과는 다르게 단호하고 침착했다.
 
   
 

*

홍익문화연구소로 오기까지 맑았던 하늘이 그새 잔뜩 흐려져 있었다. 하늘을 덮은 시커먼 구름이 산 아래에 펼쳐진 시가지를 회색으로 물들여 도시는 우중충하게 보였다. 소나기가 내리기에는 아직 이른 오월 중순 늦은 봄인데도 한바탕 신나게 퍼부을 것 같은 짙은 구름이었다.

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와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순간 섬광이 하늘을 가르고 이어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가 홍익문화연구소에 이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벗어나 아스팔트 도로로 접어들었을 때, 하늘은 더 이상 물기를 머금고 있기가 힘겨운 듯 드디어 굵은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최수환이 말했다.

― 박형기 말이야. 내가 윽박지르자 벌벌 떨고 있었어. 그리고 김준하의 태도가 너무 단호한 것도 자연스럽지 않아. 곧바로 압수수색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 압수수색을 할 것 같았으면 김 검사가 벌써 했겠지. 아마 김 검사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아.
― 그러는 동안에 증거를 없애버리면?
― 사건이 발생한지가 언젠데 지금까지 증거를 보관하고 있겠어. 괜히 압수수색한다고 법석을 떨어 오히려 일을 망칠 수도 있어.

― 하긴 그래. 지금까지 증거를 고이 간직하고 있을 리가 만무하지.
― 그보다 아까 그냥 넘겨짚어 본거야? 사건 당일 박형기 집에 누가 찾아온 것은 어떻게 알았어?
― 그날 밤 박형기 집 앞에 검은 승용차가 한 대 왔던 것을 골목 어귀 24시 마트 종업원이 보았다고 했어. 그래서 넘겨짚어 본거야. 박형기가 어쩌나 보려고.

최수환이 말하는 순간 차창 밖에서 다시 한 번 섬광이 하늘을 가르고 천둥이 울려 퍼졌다. 그때까지 간간히 흩뿌리던 빗방울이 소나기로 변하면서 세찬 빗줄기가 차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때 박경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김용훈 검사였다.
― 두 분 수고스럽지만, 다시 한 번 제 방으로 와 주십시오.

사건은 김준하의 보복 살인이냐, 정해현의 정적 살해냐의 두 가지 갈림길에 들어서 있다. 사건의 실체는 조만간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박경일이 오월 이른 소나기를 뚫고 차를 몰아 다시 검찰청으로 들어가는 길, 연산로터리 길가 벽에 붙은 선거벽보 속, 환히 웃고 있는 정해현의 얼굴에도 세찬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 2019. 1. 14.(월) 연재 제14회 <검은 거래> 에서 계속됩니다.
― 《다음 검색창》에서 『살인 교향곡』을 검색하시면, 지금까지 연재된 모든 연재물(연재 제1회부터 제13회까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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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의 짧은 소통

이 단락에 나오는 추일봉과 홍익문화연구소는 작가가 스토리의 전개를 위하여 가상으로 설정한 장소이다. 이 장소는 이 소설 속의 작중 인물 홍한일 박사와 김준하가 추구하는 홍익사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공간적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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