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연재 제11회 <긴급체포>
Symphony in C minor ‘Fate’


긴급체포

소환조사에서 최경호는 미리 작정을 하고 나왔는지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부인부터 했다. 심지어 박경일이 미행을 하면서 직접 확인한 사실조차도 막무가내로 모른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러나 최경호의 이런 태도는 그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심증을 오히려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이었다.

특히 최수환이 조사한 사실에서도 최경호는 범행이 있었던 시간에 사무실을 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신경민이 말한 호텔 주차장에서 사고를 낸 시간과 근접했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최경호를 다시 소환하여 추궁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박경일은 보강증거를 찾기 위하여 마린시티호텔 주차장으로 갔다. 최경호와의 대질신문에 대비하여 신경민과 박 씨로부터 사고 당시 상황을 현장에서 보다 상세하게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진술을 신뢰할 수 있는 제일의 척도는 일관성이다. 두 사람의 진술은 처음 제보했을 때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 내가 부르면 바로 조사실로 나와야 해.
박경일이 사고 당시 상황을 정리한 수첩을 덮으며 신경민에게 말했다.
― 왜요? 또 무슨 일이 있는데요.
― 최경호와 대질을 해야 해. 대질할 때 말을 바꾸면 안 돼. 알았어?

― 정말 괜찮은 거죠? 며칠 전에 전화를 해서 불기만하면 애들을 불러 뼈도 못 추릴 거라고 협박을 했어요.
― 걱정 마. 조폭들의 상투수법이야.
― 그렇죠? 국회의원 보좌관 아니죠? 말투나 행동거지가 진짜 조폭 같았어요.

― 알아.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 진짜 괜찮죠?
― 그럼 불지 않고 콩밥 먹으러 갈래?
― 아, 씨~, 조폭이나 경찰이나 다 똑 같네. 알았어요.

박경일이 호텔 주차장을 막 출발하려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최수환이었다.
― 빨리 들어와.
목소리가 흥분에 들떠 있었다.
― 무슨 일인데, 그래?
― 군말 말고 빨리 들어와.

박경일이 급히 경찰서로 들어오니, 의외로 김용훈 검사가 사무실에서 직접 기다리고 있다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보낸 감정결과 회보서였다.

* 《첨부한 감정소견서의 내용과 같이 피살자의 몸에서 발견된 모발과 별지 인적사항 기재 최경호의 모발은 동일인의 것으로 판명됨.》

* 특히 두 개의 모발 모두에서 필로폰 성분이 검출되었음을 참고할 것(상습마약 투약 의혹이 있음).

감정결과 회보서에 강조하기 위하여 괄호로 묶어 고딕체로 기재한 회신 내용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사건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것 같았다.
― 곧바로 최경호의 신병을 확보해 주십시오. 단, 필로폰 검출 사실은 극비에 붙여야 합니다. 다음에 상황을 봐가며 히든카드로 사용합시다.

박경일과 최수환은 즉시 국회의원 정해현 선거사무실로 출동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무실 앞에는 그들보다 먼저 도착한 보도진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 경찰이 확보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 최경호 보좌관이 정말로 김인환 씨를 살해하였나요?
― 경찰은 언제 알게 되었나요?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도진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정시영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보도진들의 질문세례를 뿌리치고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 최경호 씨! 당신을 김인환 씨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

같은 시간, 여의도 중앙당사무소에서 재선거 공천 문제를 확정지은 정해현은 당사를 나와 홀가분한 마음으로 부산으로 가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올랐다. 김인환에게 패배하여 낙마할 뻔 했던 그는 이제 기사회생한 것이다. 조만간 재선거 날의 공고가 있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다시 선거전에 돌입해야 했다.

그러나 그와 맞붙을 제1야당 후보는 지명도가 현저히 낮은 풋내기 정치신인이었다. 김인환이 없는 마당에, 그는 이미 당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 의원님! 큰일 났습니다. 최 보좌관님이 경찰에 체포되어 갔습니다.
선거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 그게 무슨 소리야?
― 최 보좌관님께서 김인환의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갔습니다.
― 뭐라고?

순간 정해현은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지고 말았다. 이럴 수가! 최경호가 정말로 김인환을 살해했단 말인가. 선거날 밤 광경이 떠올랐다. 술에 취하여 전화를 걸어왔던 최경호의 말이 귀를 쟁쟁 울렸다.

“나, 경호다. 씨팔! 그래, 내가 니 시키는 대로 김인환이 목을 따 놓았다. 이제 속이 시원하냐? 씨팔!”

정해현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최경호가 진짜 김인환을 살해했다면, 이거야말로 정말 큰일이다. 개표 날 밤, 선거에 진 화풀이로 최경호에게 유리컵을 던지면서 김인환을 죽여 버리라고 했었다. 만약 최경호가 그 말을 진심으로 알아듣고 김인환을 살해했다면?

재선거고 뭐고 정해현 자신도 살인공범으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최경호의 체포로 말미암아 방금 확정된 중앙당의 공천이 취소될지도 모른다. 안 돼! 절대로 선거를 포기할 수는 없어!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아 텅 비어버린 정해현의 머릿속에서 뇌세포가 빠르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음모다. 아니, 음모로 몰고 가야 한다. 이것은 나의 출마를 저지하기 위한 야당의 음모다.

정해현이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택시는 어느 듯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공항 대합실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대합실에 설치된 대형TV 앞에서 긴급뉴스로 전하는 최경호의 긴급체포 사실을 시청하고 있었다. 정해현도 사람들 사이에 서서 TV를 보았다.

― 특별수사본부는 오늘 정해현 의원의 보좌관 최경호 씨를 김인환 씨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하는 한편 최경호 씨의 집과 정해현 의원의 선거사무실, 자택 등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들어갔습니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피살자의 목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에 대한 유전자감식 결과 그 머리카락은 최경호 보좌관의 머리카락과 동일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감식 결과에 따라 특별수사본부는 최경호 보좌관을 긴급체포하는 한편 다른 공범이 있는지, 또 이 살인이 정해현 의원의 지시에 의한 살인은 아닌지에 대하여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상 KNB 뉴스 정시영입니다.

피살자의 목에서 최경호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면? 이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아닌가! 아아, 큰일이다. 재선거고 뭐고 모든 것은 끝이다. 최경호를 이제까지 곁에 두고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 저깁니다.

정해현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 어디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르르, 가까운 게이트에서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정해현은 개찰구를 향하여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걸음도 채 걷지 않아 멈추어야 했다. 뒤따라온 많은 보도진들이 그를 둘러쌌다. 카메라 불빛이 번쩍거렸다.

― 최경호 보좌관의 긴급체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최경호 보좌관이 김인환 당선자를 살해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 한 말씀 해주시죠?
쏟아지는 보도진들의 질문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정해현은 목소리에 힘을 주고 외치듯 말했다.

― 이것은 음모입니다. 이것은 이번 재선거에 나의 출마를 저지시키고, 나의 당선을 저지시키려는 야당의 음모가 분명합니다. 이러한 음모에 나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나라에 법이 존재하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줄 것입니다.

*

박경일은 최수환을 참여하게 하고 조사실에서 최경호와 마주 앉았다. 정식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경호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태연하고 당당했다. 박경일이 묻고 최경호가 답하다.

문 : 피의자는 2000. 4. ××. 자정에서 01:00 사이에 부산 해운대 소재 마린시티호텔 804호실에 간 적이 있지요?
답 : 없습니다.
문 : 피의자는 위 시경 위 호텔 주차장에서 서울00나0000호 차량과 접촉사고를 낸 일이 있지요?
답 : 없습니다.

(이때 조사관이 피의자의 차량 범퍼를 촬영한 사진을 피의자에게 제시하고)
문 : 이 차는 피의자의 차량이 맞습니까?
답 : 예.
문 : 이 차 뒷범퍼는 앞범퍼와 다르게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지요?
답 : 모르겠습니다. 나는 범퍼를 교체한 사실이 없습니다.

문 : 범퍼를 교체한 것은 마린시티호텔 주차장에서 피의자가 사고를 내어 범퍼가 파손되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답 : 교체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마린시티호텔에 간 적도 없고, 사고를 낸 사실도 없습니다.
문 : 그렇다면 피의자는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답 : 예, 나는 그때 선거 사무실에서 개표방송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참여하고 있던 최수환 경위가 피의자에게 묻다)
문 : 피의자와 함께 선거사무실에 있었던 자원봉사자 박혜숙은 피의자는 사건 당일 밤 아홉시 경에 사무실을 나가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돌아왔고, 밤 열한시 경에 나가 두 시간 정도 지난 뒤에 다시 사무실에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피의자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요?
답 : 나는 박혜숙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그 여자가 잘못 알았겠지요.

문 : 피의자는 밤 아홉시 경에 사무실을 나가지 않았나요?
답 : 그때 내가 사무실을 나갔다면 아마 근처 식당에 밥 먹으러 갔을 겁니다.
문 : 자원봉사자 박혜숙은 김인환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피의자가 곧바로 사무실을 나갔다고 하였는데, 이때 피의자는 어디에 갔었나요?
답 : 그때는 선거에 져서 화가 나 근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이때 조사관이 다시 피의자에게 묻다)
문 : 피의자는 박춘만이라는 사람을 아는가요?
답 : 모릅니다.
(이때 조사관이 대기하고 있던 참고인 박춘만을 입실케 하고)
문 : 참고인은 마린시티호텔 주차관리원으로 근무하고 있지요?
답 : 예.
문 : 참고인은 2000. 4. ××. 01:00경 마린시티호텔에서 발생한 차량접촉 사고를 목격한 사실이 있지요?
답 : 예.

(이때 참고인에게 피의자를 지목한 후)
문 : 당시 사고를 냈던 사람이 이 사람(피의자 ; 이하 같음)이 맞나요?
답 : 예, 그때 사고를 낸 사람이 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이 사람이 맞습니다.
문 : 당시 사고를 낸 사람이 끼고 있던 안경은 어떤 안경이었나요?
답 : 검은색 선글라스였습니다.

(이때 조사관이 피의자의 자동차사물함에서 압수한 안경을 참고인에게 내보이며, 안경을 촬영한 사진을 신문조서 말미에 첨부하다)
문 : 당시 사고를 냈던 사람이 끼고 있던 안경이 이 안경이지요?
(참고인이 안경을 유심히 살핀 후)
답 : 예, 이 안경이 맞습니다.
(이때 피의자에게 안경을 착용하게 한 후)
문 : 당시 사고를 냈던 사람은 이 사람이 맞습니까?
답 : 예, 맞습니다.

(다시 피의자에게)
문: 피의자는 이래도 부인합니까?
답: 나는 절대로 호텔에 간 적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참고인에게)
문 : 이 사람이 당시 사고를 낸 사람이 분명합니까?
답 : 예, 맞습니다. 긴 머리카락과 안경이 그때 모습과 꼭 같습니다. 왼쪽 뺨에 나 있는 큰 점도 같습니다.
문 : 이 사람이 사고를 낸 후 어떤 행동을 하였나요?

답 : 그냥 도망가려고 하여 내가 차를 가로막고 세우게 했는데, 그때 사고 소리를 들은 신 대리가 왔습니다.
문 : 신 대리란 호텔 프런트에 근무하는 영업부 신경민을 말하는가요?
답 : 예.
문 : 신경민이 왔을 때, 이 사람은 어떻게 했나요?
답 : 신 대리가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자, 이 사람이 신 대리에게 명함을 주면서 경찰에 연락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문 : 참고인에게는 명함을 주지 않았나요?
답 : 예. 내게는 돈을 주었습니다.
문 : 무엇 때문에요? 돈은 얼마였나요?
답 : 예, 이 사람이 돈 오만 원을 주면서 신고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 뭐라고? 당신이 날 언제 봤다고 그래? 어디서 얼토당토 않는 거짓말을 해. 나는 그런 일 없어. 똑바로 보고 얘기해.
최경호가 중간에 끼어들어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 피의자는 조용하세요. 답변할 기회는 드립니다.
최수환이 최경호의 말을 차단했다. 

(이때 조사관이 대기하고 있던 참고인 신경민을 입실케 하여 피의자를 지목한 후)
문 : 참고인은 이 사람을 압니까?
답 : 예.
문 :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답 : 이 사람이 차 사고를 내고 제게 명함을 주었기 때문에 압니다.
문 : 차 사고란 2000. 4. ××. 01:00경 마린시티호텔 주차장에서 난 사고를 말하는가요?
답 : 예.

(이때 조사관이 피의자의 차 사진을 참고인에 제시하고, 사진을 별첨으로 신문조서 말미에 첨부하다)
문 : 그때 사고는 이 사진에 있는 차량번호 4897 그랜저승용차가 낸 사고를 말하는 것인가요?
답 : 예, 맞습니다.

(이때 참고인에게 피의자의 차량번호를 적은 명함을 제시하고, 명함을 별첨으로 신문조서 말미에 첨부하다)
문 : 그때 사고 직후 참고인이 이 사람으로부터 받은 명함이 이것인가요?
답 : 예.
문 : 이 명함 뒤쪽에 적힌 차량번호 4897은 참고인이 그때 사고를 낸 피의자의 차량번호를 확인하고 적은 것이 맞습니까?
답 : 예.

― 야, 이 자식아!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너에게 명함을 줬어? 난 그때 주차장에 간 적도 없어. 너 같은 자식 본 적도 없단 말이야.
최경호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다시 나섰다.
― 피의자는 가만있어요. 왜 자꾸 나서요. 진술할 기회는 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최수환이 다시 큰소리로 핀잔을 줬다.

(이때 다시 피의자에게)
문 : 피의자는 참고인의 진술을 들었지요?
답 : 예.
문 : 피의자는 이래도 마린시티호텔에 간 사실을 부인하는 것인가요.
답 : 나는 절대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사람을 잘못 본 것입니다.

(이때 다시 참고인 신경민에게)
문 : 참고인은 피의자로부터 2000. 4. ××. 11:20경 <까뮈>라는 카페에서 돈 천만 원을 받은 사실이 있지요?
답 : 예.
문 : 피의자가 무엇 때문에 참고인에게 돈을 주었나요? 그 경위를 말씀해 주세요.
답 : 예, 제가 그날 아침에 부서진 차에 대한 변상문제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오히려 제게 욕을 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후에 이 사람이 제게 전화를 하여 <까뮈>라는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문 : 참고인은 그때 돈을 받았나요?
답 : 아닙니다. 그때는 돈이 준비되지 않아 그 다음날 같은 카페에서 다시 만나 돈 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문 : 그때 피의자는 돈을 주면서 무슨 말을 하였나요?
답 : 만약 제가 사고 사실을 발설하는 경우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이때 다시 피의자에게)
문 :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피의자는 마린시티호텔에서 사고를 낸 사실이 있지요?
답 : 아닙니다. 절대로 사고를 내지 않았습니다. 나는 호텔에 간 적이 없습니다.
문 : 사고를 낸 사실도 없고, 호텔에 간 사실도 없는데, 왜 입막음용으로 돈을 주었습니까?
답 : 돈을 준 사실도 없습니다.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이때 조사관이 다시 참고인 신경민에게)
문 : 참고인은 분명히 이 사람으로부터 돈 천만 원을 받았지요?
답 : 예, 분명히 받았습니다.
문 : 참고인은 이 돈 천만 원을 받은 날,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있지요?
답 : 예.

문 : 참고인은 위 돈 천만 원을 받기 전에 피의자의 전화를 받은 사실이 있지요?
답 : 예.
문 : 전화내용은 어떤 것이었나요?
답 : 차 사고를 제가 경찰에 제보하였는지 확인하는 전화였습니다. 만약 제가 제보를 했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저께도 전화를 하여 만약 경찰에 발설하면 애들을 풀어 뼈를 발라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다시 피의자에게)
문 : 피의자가 사고를 내지 않았다면, 피의자가 참고인에게 위와 같은 전화를 할 필요도 없고, 협박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더구나 입막음용으로 천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답 : 누가 협박했다는 거야? 나는 그런 전화 한 적 없어.

(다시 참고인 신경민에게)
문 :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당시 사고를 내고 참고인에게 명함을 준 사람이 피의자가 분명합니까?
답 : 예, 틀림없습니다.

이때 최경호가 다시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나 고함을 쳤다.
― 야! 이 자식아! 사람을 똑바로 보고 말해. 나는 사고를 낸 일도 없고, 너 따위 녀석에게 명함을 준 일도 없어.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거야?
― 앉으세요. 조용히 하세요.
최수환이 다시 최경호를 눌렀다.

(이때 조사관이 참고인 신경민과 박춘만을 퇴실케 한 후, 피의자에게 다시 묻다)
문 : 피의자는 지난 번 조사에서 피의자의 머리카락에 대한 유전자감식에 동의한 사실이 있지요?
답 : (피의자는 대답하지 않다)

(이때 조사관이 수사기록에 편철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결과 회보서를 피의자에게 제시하고)
문 : 피의자의 머리카락에 대한 유전자 감식결과 피살자의 목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이 피의자의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그래도 피의자는 범행 사실을 부인하는 것인가요?
답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머리카락이 왜 거기에 있어? 나는 호텔에 간 적도 없단 말이야. 무슨 미친 소리를 하고 있어.

(이때 참여하고 있던 최수환 경위가 피의자에 묻다)
문 : 호텔에 간 적도 없는 피의자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가서 피살자의 목에 들어갔을까요. 이제는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자백하세요. 피의자는 2000. 4. ××. 자정 경 마린시티호텔 804호실에서 김인환 씨를 살해하였지요?

(이때 피의자가 흥분하여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다)
답 : 무슨 개수작을 하는 거야. 너희 자식들 무슨 조작을 하고 있는 거야. 너희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문 : 피의자는 사건 당일 밤 아홉시 경 사무실을 비웠지요?
답 : 그래서? 그것이 어쨌다는 거야?
문 : 그때 피의자는 식사를 하러 간 것이 아니라, 김인환 씨가 마린시티호텔에 투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나간 것이 아닌가요?
답 : 호텔에는 간 적도 없다고 했잖아. 도대체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듣겠어.

문 : 피의자는 사건 당일 밤 11시 경에 사무실을 나갔다고 하였지요?
답 : 그래, 화가 나서 술 마시러 갔었다. 술 마신 것도 죄가 되냐?
문 : 당시 피의자는 술 마시러 간 것이 아니라 김인환 씨가 투숙하고 있던 마린시티호텔 804호에 간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그곳 804호실에 투숙하고 있던 김인환 씨를 살해한 것이 아닌가요? 이제 자백하는 것이 어때요?

답 : 내가 무엇 때문에 살인을 해. 선거에 졌다고? 무슨 미친 수작들을 하는 거야. 난 아니야. 마린시티호텔에는 간 적도 없단 말이야.
문 : 김인환을 살해할 당시 사용한 도구는 어떤 것이었나요?
답 : (이때 피의자가 다시 책상을 치며 고함을 지르다) 야, 너 이 자식아! 너 지금 나를 살인자로 몰아가는 거야. 난 아니야!

(이때 조사관이 참고인 신경민과 박춘만을 다시 입실케 한 후)
문 : 지금까지 참고인들이 진술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지요?
답 : (두 사람이 동시에) 예.
(조사관이 다시 피의자에게)
문 : 지금까지 피의자가 진술한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까?
답 : 몇 번이나 말해야 되겠어. 난 아니라니까!
문 : 지금까지 피의자가 진술한 내용이 모두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사실인가요?
답 : 그렇다. 왜?

최경호가 사건 당일 있었던 차 사고를 은폐하려고 시도한 사실, 파손된 차 범퍼를 교체한 사실, 심지어 신경민에게 입막음용으로 천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주었던 사실은 그가 범인이라는 유력한 정황증거였다. 그리고 피살자의 목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이 최경호의 것이라는 감정결과는 움직일 수 없는 직접증거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경호는 완강했다. 꼬박 밤을 새며 추궁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어떤 증거를 들이대어도 막무가내로 부인했다.
― 저 새끼, 계속 안 불면 일단 히로뽕으로 잡아넣고 족치자. 제 머리털에서 히로뽕이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거야.

꼬박 밤을 새워 실랑이를 하고 경찰서 후문 앞 돼지국밥집에서 아침을 먹으며 최수환이 말했다. 박경일도 최수환도 잠을 자지 못해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 히든카드로 쓰겠다고 했잖아. 김 검사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아.
― 시간은 없고……, 지독한 새끼, 얼마나 버티는지 다시 가볼까.
최수환이 돼지국밥 그릇을 그릇 채로 들고 남은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일어섰다.

― 2018. 12. 31.(월) 연재 제12회 <진실 게임>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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