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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뉴스 디카수필> 김성한, 동이감
김영미안  |  anteaj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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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5  07: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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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감

                                                김 성 한

   
 
아내가 부쩍 가을을 탄다.
지난주에는 “여보, 저 앞산을 좀 봐요. 단풍이 마을로 내려오고 있어요.”라며 문학소녀 티를 내는가 싶더니, 갑자기 둘째 아들 생각이 나는지 “욱동이가 객지에서 밥이나 제대로 챙겨 먹는지 모르겠어요.”라며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그제만 해도 그렇다. 창문 너머로 빨갛게 익은 감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팔순의 친정엄마가 보고 싶다.”며 느닷없이 시골에 가지를 않나.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가을은 남자가 탄다는데.

어제 새벽녘이다. 아내 자리가 어쩐지 허전했다. 눈을 떠보니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거실 불빛 한줄기가 문틈을 비집고 안방까지 들어온다. 그냥 누워 있기가 뭣해서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오니 아내가 감을 손질하고 있다. 그저께 친정에서 가져온 동이감이다. 물동이처럼 푸짐하게 생겼다고 해서 ‘동이감’이라 부른다. 엉덩이가 펑퍼짐한 것이 대(代)를 이을 후덕한 종가댁 맏며느리같이 생겼다.

초등학교 시절, 이맘때쯤이면 고향 집 장독대 옆 늙은 감나무에는 동이감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얼추 끝나고 새색시 볼 같은 감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날이면, 아버지는 망태기와 기다란 대나무 장대를 들고는 감나무 위로 오른다. 근심 어린 눈으로 이를 지켜보던 어머니가 한마디 한다.

“이녁, 감나무는 가지가 잘 부러진다는데 조심하구려.”
“허허 참 알았어요. 별걱정도 다 하네.”
웃으시는 아버지의 입꼬리가 귀 뒤까지 걸린다.

갈고리 모양의 뾰족한 장대 끝을 뱅뱅 돌리며 아버지의 감 따는 솜씨를 보니 일등저격수가 따로 없다. 감을 잔뜩 머금은 망태기도 외줄 타는 맛이 좋은지 춤을 추며 내려오자, 샘 많은 가을 햇살도 덩달아 외줄을 탄다.

가끔 홍시라도 보이면 어머니는 반을 뚝 잘라 우리 입으로 넣어준다. 자식 입 오물거리는 모습이 좋은지 빙긋이 웃기까지 하시며.

이렇게 감 따는 일도 점심나절쯤이면 거지반 끝이 난다. 한 대여섯 접(한 접 100개) 되는 것 같다. 감나무 가지 끝에는 붉은 감 네댓 개가 매달려 있다.
“아버지, 저 위 감나무 끝의 감은 왜 안 땁니까?”
“음, 그건 까치밥이다. 날짐승도 한겨울에는 먹을 것이 없어 일부러 남겨놓은 거란다.”

그런 아버지가 사십 년 전에 돌아가셨다. 장독대 옆 동이감이 빨갛게 익어가는 늦가을에 눈을 감으셨다. 상두꾼들이 떠받쳐주는 꽃상여를 타고 멀리 떠나는 날 아침, 감나무에는 붉은 등(燈) 같은 홍시가 점점이 박혀 있었다. 일평생 농투성이로 뼈 시리게 땅만 파다 가는 당신의 마지막 길을 밝혀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허 야, 어허 야, 어화 넘차 어허 야,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요령잡이 선소리에 동구 밖 감나무 위에는 까치 한 마리가 까악까악 울어댔다.

이번 아버지 기일(忌日)에는 탐스러운 동이감을 제사상에 올려놓아야겠다. 입으로만 지껄이는 알량한 지식보다는 감나무 가지 끝에 까치밥을 남겨 놓던 아버지의 지혜가 그립다. 그래서 앎(知)에다 세월(日)이, 연륜의 때가 끼어야 지혜(智慧)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동이감처럼 푸근한 마음보가 당신 손자들 마음자리(心地)에도 똬리를 틀고 앉았으면 좋겠다. 마른 촛농처럼 박혀 버렸으면 더욱더 좋겠다. 

   
▲ 수필가 김성한(金成漢)
김성한 수필가는 경북 성주 출생으로 2008년『문학세계』에 수필로 등단하였으며 포항소재문학상, 공무원연금수필문학상, 매일시니어 문학상, 경기수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수필집으로『잉걸불』외 2권이 있다.

* 부울경뉴스에서는 《디카수필》 원고를 모집합니다. 디카사진과 함께 편집한 원고를 보내주시면 검토를 거쳐 부울경뉴스에 소중하게 게재하겠습니다. 디카소설과 디카동화도 모집합니다. 작품을 보내실 때는 간단한 작가프로필과 함께 연락처(휴대전화), 메일 주소를 기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원고 보낼 곳 sense68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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