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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교향곡, 연재 제8회 <개구리와 빈대>
김영미안  |  anteaj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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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3  07: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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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교향곡, 연재 제8회 <개구리와 빈대>
Symphony in C minor ‘Fate’
 

   
 


개구리와 빈대

― 부검하기 전에 사체를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부검 준비를 마치자, 김용훈 검사가 집도의사에게 말했다. 집도의사가 거의 반이 넘게 잘려버린 피살자의 목에 난 자상 부위를 실측하고 피에 엉켜 붙은 상처를 수술용 집게로 벌렸다.
― 잠깐만요, 저거? 머리카락 같은 데요.

박경일이 사체 좌측 쇄골 쪽 절단된 피부 사이에 끼여 있는 검은 이물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절단된 피부와 피부사이 끝에 박혀 있어 얼핏 육안으로는 핏자국과 쉽게 구별되지 않았다. 집도의사가 절단된 피부 사이에 끼어 있는 검은 이물질을 수술용 집게로 꺼냈다. 집게 끝에는 피가 엉켜 붙은 머리카락 한 올이 들려 있었다.
 

   
 

 *

―――――――――――――――
부검조서
(주요부분만 발췌)

김인환 피살 사건과 관련하여 2000. *. *.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김용훈은 해운대경찰서 사법경찰관 경위 박경일, 최수환을 참여시키고 법원판사 변경훈의 영장을 발부받아 부산대학병원 특별수술실에서 경찰공의 부산대학병원 외과의사 박상훈의 집도로 다음과 같이 부검하다.

1. 부검 일시 및 장소
2000. *. *. 13:00경부터 동일 14:30경까지.
부산대학병원 특별수술실.
2. 부검 목적
사인을 판명하여 자, 타살 여부를 규명하고 사체에 나타난 범행단서를 조사함.
3. 부검 대상(피살자)
김인환 ; 인적사항(생략)
4. 집도의사
부산대학병원 외과의사 박상훈(면허번호 : 1****)
5. 부검 참여인(유족측)
1) 김경환(피살자의 동생) ; 인적사항(생략)
2) 김우렬(피살자의 조카) ; 인적사항(생략)

6. 부검사항
가. 외견상 소견
O 신장 175㎝
O 후두부 좌측 찰과상 2㎝ X 0.5㎝ 및 타박상(멍자국) 4㎝ X 3.5㎝
O 후두부 중앙 두피 상흔 3.5㎝ X 3.5㎝, 출혈, 두개골 함몰 3㎝ X 3㎝
O 우측 귀 아래에서 좌측쇄골상부에 이르는 자상 길이 15.2㎝ X 폭 0.5㎝ X 깊이 3㎝, 기도 절단
O 기타 안면부 동공 확장외 특이 소견 없음, 좌측하지 경골 후부 화상흔 2곳(앞 1㎝ X 0.5㎝, 뒤 0.3㎝ X 0.2㎝), 우측하복부 수술흔(맹장), 하복부중앙(배꼽) 타박상(멍자국) 15㎝ X 10㎝, 우측주관절(팔꿈치) 타박상 1.5㎝ X 1㎝, 우측손목관절 골절흔(어릴 적 생성된 것으로 보임)

나. 내표상 소견
1) 두부
O 두피하출혈 - 후두정부 좌측 4㎝ X 3.5㎝
O 두개강내소견 - 경막 상하 혈액 및 혈종
O 후두부 중앙 두개골 함몰(직경 3㎝)에 의한 출혈
O 대뇌무게(310㎎), 소뇌무게(185㎎) ; 각 특이 소견 없음

2) 흉복부 소견
O 흉부 : 흉골하 근육하 출혈(외부충격에 의한 것으로 보임)
O 심장 : 무게 395㎎ - 크기 15㎝ X 폭 13㎝ X 높이 5㎝, 대동맥 직경 2.4㎝, 관상동맥 기시부 직경 4㎜, 대동맥후 외벽 출혈 2㎝ X 1.5㎝
O 폐 : 무게 990㎎ - 크기 28㎝ X 폭 15㎝ X 높이 4.5㎝, 심한 울혈, 좌, 우측 폐장 늑막과 심한 유착, 전반적 울혈
O 기타 좌측신장(250g, 크기14㎝ X 폭 7㎝ X 높이 4㎝), 간장, 담낭(50g), 소장, 대장, 위장(내용물 쌀알과 고기 찌꺼기 있는 내용, 위 점막 일부 출혈), 비장(125g, 크기 11㎝ X 폭 6.5㎝ X 높이 2㎝), 췌장, 생식기 등 ; 특이 소견 없음

다. 직접 사인
O 직접사인 : 출혈과다로 인한 심폐정지
O 중간 및 선행사인 : 두개골 함몰로 인한 뇌기능 정지(의증)

라. 가검물 채취 및 감정의뢰(독극물 함유여부)
혈액 및 간, 뇌, 심장, 신장, 위액, 좌측 배부(어깨, 종아리, 허벅지), 우측 배부 표피를 채취, 국립과학연구소에 감정 의뢰함.

* 특히 우측 쇄골상부(목) 자상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이 피살자의 것과 동일한 것인가의 여부에 대하여 국립과학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함.

* 본 부검을 명백히 하기 위하여 사진 50매를 촬영하고 본 조서 말미에 첨부하다. 이 부검은 2000. *. *. 13:00경에 시작하여 14:40경에 끝나다.
―――――――――――――――

 *

부검에서 나타난 피살자의 외견상 소견에 의하면 범행에 사용된 도구는 세 가지였다. 이 사실에 의하면 범행은 최소한 두 명 내지 세 명 이상의 공범에 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먼저 피살자의 후두부 좌측 찰과상 및 타박상을 입힌 도구였다. 피살 현장에는 깨진 샴페인병 조각이 산재해 있고 손잡이로 삼은 병주둥이가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이 상처는 이 유리병에 의해 생긴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시신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과일이 든 꽃바구니가 바닥에 놓여 있었지만 이것을 살해 도구로 볼 수는 없었다.

다음으로 피살자의 후두부 중앙 두개골 함몰을 가져오게 한 도구였다. 두개골 함몰 부분이 직경 3㎝ 정도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이 상처는 머리가 둥근 쇠망치에 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피살자의 직접 사인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측 귀 아래에서 좌측 쇄골 상부에 이르는 절단 상처를 일으킨 도구였다. 이것은 일견하더라도 예리한 칼에 의한 상처가 분명했다.

그런데 범행이 한 사람에 의한 단독범행이라면, 적어도 유리병과 망치 또는 유리병과 칼이라는 두 가지 도구만을 사용하더라도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유리병과 망치, 칼이라는 세 가지 도구가 사용되었고, 한 사람이 이 세 가지 도구 모두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살인은 최소한 두 명 이상의 공범에 의한 범행이라는 추론이 가능했다.

즉 이 살인은 샴페인병으로 피살자의 후두부 좌측을 내려친 사람, 망치로 뒷머리 중앙을 가격한 사람, 칼로 목을 벤 세 사람의 공범에 의한 것이거나, 유리병과 망치, 망치와 칼, 칼과 유리병이라는 두 개의 도구를 한 사람이 사용하고 나머지 도구를 다른 한 사람이 사용한 두 사람의 공범에 의한 범행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부검조서를 작성하면서 박경일은 피살 현장 및 범행에 사용된 도구를 통하여 피살자가 살해될 당시 상황을 몇 가지 관점에서 추리하고 재구성해 보았다.

먼저 피살 현장에 산재해 있던 깨진 유리조각은 샴페인병 파편이었다. 샴페인은 대개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음료다. 그렇다면 범인은 어떤 일에 대한 축하인사를 명분으로 삼페인병이 담긴 꽃바구니를 들고 피살자에게 접근했을 것이다. 피살자에게 축하할 일은 물론 피살자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일이다. 당선축하를 핑계로 피살자의 지근에까지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피살자와 아주 가까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당선축하 인사를 명분으로 피살자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피살자의 가족이나 친척, 피살자 진영의 선거관계종사자 또는 피살자와 개인적으로 아주 친한 사람, 그리고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사건 발생 당시 피살자가 피살 현장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수사는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범위를 축소해 나가야 한다.

이런 사람들 외에 피살자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특히 범인이 피살자와 정적 또는 대립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가정했을 때, 피살자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피살자와 정적 관계에 있는 사람은 국회의원 정해현이다. 정해현 진영의 사람이 피살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당선축하 인사이다.

정해현 진영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누군가가 당선축하 인사를 왔다는 명분으로 접근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때 피살자는 승리한 기분에 들떠 축하객의 살해 의도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피살자의 피살 시점을 전후한 정해현의 보좌관 최경호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공범 중의 한 사람이 최경호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최경호는 공범과 함께 피살자의 소재를 파악한 후 당선축하 인사를 하러 왔다는 명분으로 샴페인병이 든 꽃바구니를 들고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 최경호가 꽃다발을 건네는 척 하면서 전혀 무방비 상태에 있는 피살자를 샴페인병으로 가격한다. 그리고 공범 중의 하나가 망치로 머리를 가격하고, 마지막으로 둘 중 하나 또는 다른 제3의 공범이 피살자의 목에 칼을 꽂는다.

부검에서 나타난 사실을 통하여 살해 당시 상황을 추측해 보면서 박경일은 부검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이 피살자의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살자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반대로 범인의 머리카락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머리카락의 주인공만 밝혀내면 사건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것이다. 박경일은 국립과학연구소에 그 머리카락이 피살자의 것이냐의 여부에 대한 감정의뢰를 했다.

부검조서를 작성하여 수사과장과 함께 김용훈 검사에게 가서 앞으로의 수사방향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여기에서 피살자의 목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공개할 것이냐의 여부가 검토되었다.

범인들은 범행 현장에 수사단서가 될 만한 것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범행과정에서 범인의 머리카락 한 올이 피살자의 목에 떨어졌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언론에서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수사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수사진을 질타하고 있었다.

언론을 무마하기 위해서나 범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공개할 필요가 있었다. 공개방법은 내일 오후 1시 검찰청에서 김용훈 검사가 직접 중간수사보고 형식으로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수사에 나타난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최경호이다. 언론을 통하여 범인의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분명 이제까지와는 다른 태도나 행동을 취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경호를 더욱 면밀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수사진은 기자회견이 있은 후부터 최경호의 일과를 놓치지 않고 밀착 감시하기로 하였다. 

   
 

*

박경일이 퇴근시간이 훌쩍 지나 다시 경찰서로 돌아오니 최수환이 기다리고 있다가 말했다.
― 감식반 애들이 기다리고 있어. 개구리 비린내 좀 씻어야 되지 않겠어.

부검은 어릴 적 중학교 생물 실습시간에서 해본 개구리 해부와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박경일이나 감식반원들은 부검을 개구리 해부라고 빗대어 말했다. 최수환이 개구리 비린내라고 한 것은 부검에서 어쩔 수 없이 맡게 되는 시신에서 풍기는 체취와 피비린내 등 악취를 말했다.

죽은 시체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에 더 나아가 시신의 복부와 가슴을 절개하여 위장, 대장 등 장기와 심장, 허파들을 속속들이 살펴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지독한 악취까지 풍기는 장속 분비물까지 검사하는 일에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현장에서 토하는 일도 흔했다. 그래서 보통은 부검에 참여하는 것을 꺼렸다. 부검에 참여하고 비위가 상해 거의 한 달 동안이나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두 사람이 경찰서 후문 근처 식당에 들어섰을 때 함께 부검에 참여하였던 감식반의 이호일 경사와 최우찬 경장이 삼겹살을 안주로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낮에 그만큼 포식했으면 됐지, 또 삼겹살이야.
최수환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 삼겹살은 최 경위님이 드셨고, 우리는 순대밖에 못 먹었거든요. 그리고 박 경위님은 목살을 드셨잖아요.

최우찬이 상추에 싼 삼겹살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부검에서 피살자의 복부를 절개하는 일을 삼겹살에, 절개된 복부 속의 장기를 순대에 비유하는 말이었고, 목살이란 박경일이 피살자의 목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호일이 박경일에게 잔을 건네고 소주를 따랐다.

박경일은 부검 장면이 떠올라 메스꺼워지려는 속을 달래기 위해 소주를 단숨에 마셨다. 목을 타고 내려간 소주가 텅 비어있는 위벽에 닿으면서 주는 짜릿한 접촉감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네 사람이 주고받는 소주잔의 속도에 따라 바닥을 드러낸 소주 몇 병이 해부를 기다리는 개구리처럼 배를 뒤집고 누워 있었다. 얼큰하게 취한 최수환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비꼬는 어투로 말했다.

― 야, 인권변호사가 뭐야. 인권변호사라고 하는 작자가 한 끼 죽도 못 끊여먹는 사람에게서 변호사비라고 돈을 우려낸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야. 내 참 더러워서…….
― 누구보고 하는 소리야?
박경일이 최수환의 말을 받아 물었다.

― 오늘 해부한 개구리변호사 말이야. 선거 유세를 하면서 인권변호사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지 않아. 그런데 이번에 조사해 보니까, 이건 숫제 빈대야, 빈대. 아니 이건 아예 흡혈귀야. 흡혈귀!
―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최우찬이 소주잔을 최수환에게 건네며 물었다. 단숨에 소주를 마신 최수환이 입술을 문지르며 말했다.

― 우리 이웃에 폐지를 주워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사는 일흔 넘은 할머니가 한 분 계셔. 재작년에 그 할머니 아들이 교통사고를 낸 일이 있었지. 음주운전도 아니고 5주 진단 나온 단순 교통사고였어. 합의만 되면 곧바로 석방되는 그야말로 변호사가 전혀 필요 없는 ‘자동빵’사건이었지. 아, 이거 말을 하려니까 열불이 터지네.
최수환이 스스로 소주를 따라 한 잔을 더 마시고 말을 이었다.

― 그런데 오늘 그 할머니가 날 찾아와 뭐랬는지 알아? 개구리를 죽인 범인을 꼭 잡아달라는 거야. 그때 개구리변호사가 도와줘서 아들이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하면서.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참 가관이었어. 아, 글쎄 개구리변호사가 그 할머니에게 변호사비로 돈 오백만 원을 받아 쳐 먹었다는 거야.

― 아, 흥분하지 마시고 안주도 좀 더시고 하세요.
이호일이 상추에 삼겹살 쌈을 싸서 최수환에게 건네며 말했다. 최수환이 서둘러 안주를 씹어 삼키고 다시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잔을 탁, 놓으며 말했다.

― 그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열 받았는지 알아. 아무리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라 하지만 명색이 변호사라는 인간이 그래도 되는 거야. 변호사가 전혀 필요하지도 않고 폐지를 주워 팔며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노인네에게 그렇게 사기를 쳐도 괜찮은 거야. 벼룩의 간을 빼먹어도 유분수지. 흡혈귀가 따로 없어! 아주 악질이야.

한참 열변을 토하던 최수환이 분을 삭이려는 듯 다시 소주잔을 들었다. 술을 마시는 최수환의 목 줄기 정맥이 터질 듯 했다.
― 아니, 그런 할머니가 무슨 돈이 있어서요?
이호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최수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 하, 내 참,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월부로 했대, 월부로. 지금도 월부 변호사비로 매달 십만 원씩 꼬박꼬박 갖다 바치고 있대나. 그때 교통사고로 무릎을 다쳐 거동조차 불편한 늙은 홀아비 아들과 함께. 월부라니! 내 월부 책값이라는 소린 들어봤어도, 월부 변호사비란 소린 오늘 처음 들어봤다. 아, 이거, 얘기를 하려니 속에 열불이 터지네. 야, 소주 한 잔 더 줘. 이거 술이 어디 다 도망갔어. 야, 빨리 소주 한 병 체포해 와.

최우찬이 직접 냉장고에서 꺼내온 소주병 뚜껑을 따면서 최수환이 다시 울분을 토했다.
― 그 개구리! 인권변호사라고? 인권은 무슨 말라 죽을 인권이야. 그 인간은 아예 돈이라면 마누라자식새끼라도 팔아넘길 인간이었어. 그런 인간이 인권변호사라고? 제 마누라, 제 자식, 제 어미까지도 죽게 만든 그런 인간이 인권변호사라고? 이 대한민국 천지에 어디 인권변호사가 말라 죽었어. 그런 인간이 인권변호사이게.
 

   
 

남달리 정의감이 강한 최수환이 술에 취해서 그런지, 아니면 악덕변호사의 부도덕에 분노를 표시할 기력마저 상실해 버렸는지 그의 술 취한 표정에는 짙은 무력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세상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사건이 터지고, 이런 사건이 빨리 해결되지 않을 때, 여론은 경찰의 무능과 무사안일에 젖은 보신주의를 질타한다. 반면 그런 비난을 감내하며 수사 업무에 종사하는 경찰의 희생이나 어려움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수사란 자기희생을 토대로 음지에서 행하여지는 업무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찰의 자기희생이 바탕이 된 개별 사건에서 누구보다도 더 큰 도덕성을 갖추어야 할 인물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범죄에 가까운 치부를 하고 있고, 이러한 치부행위가 오히려 사회적으로 미화되고 있을 때, 그 누구보다도 정의감이 강한 최수환 같은 경찰이 느끼는 절망감과 무력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박경일과 세 사람이 음식점을 나왔을 때, 이미 밤은 깊어 있었다. 그들의 업무는 인간의 오도된 욕망을 찾아내어 세상에 전시하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이 하는 전시 작업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세상의 관심은 오직 그들이 차려 놓은 전시물에만 있다. 오늘 그들이 해부한 개구리의 살해범을 잡더라도 그들의 노고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전시물은 오직 개구리와 범인이기 때문이다.

박경일이 아파트 현관문을 막 들어서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시간은 이미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전화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예상대로 정시영이었다.
― 오늘 부검이 있었다며? 마, 그런 소식 미리 좀 알려주면 어디 덧나나.
― 너에게 시시콜콜 보고라도 해야 하냐. 괜히 피곤하게 싸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집에 들어가 해골이나 눕혀.

― 자식, 되게 까칠하게 구네. 그래, 부검에서 뭐 새롭게 밝혀진 것은 없어?
― 몰라, 자식아. 자세한 것은 내일 기자회견에서 들으렴.
― 기자회견? 부검과 관련한 기자회견이라는 말이야? 언제? 어디서?
― 내일 오후 한시. 검찰청.

박경일은 짤막하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내일 김용훈 검사의 기자회견이 있다는 사실은 출근 즉시 각 언론사에 통보가 갈 것이다. 그것을 정시영에게 몇 시간 먼저 알렸다고 하여 별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박경일은 샤워를 하고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시간은 어느 새 자정이 넘어 심야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매일 듣는 총선과 관련한 정치권 소식이 전해지고, 대구 어딘가에서 한 노인이 살해되었고, 인천 어느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등 어두운 소식만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박경일이 TV전원을 끄려는 순간, 부산대학병원 응급실 로비에 서 있는 정시영의 모습이 나타났다.
― 피살된 김인환 씨에 대한 부검이 오늘 이곳 부산대학병원 특별수술실에서 있었습니다.

정시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오늘 부검을 했던 집도의사가 가운을 입은 채로 화면에 나와 말했다.
― 피살자의 직접 사인은 목에 난 자상과 이로 인한 출혈과다에 의한 심폐정지로 추정됩니다.

화면이 바뀌어 정시영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 이와 관련하여 특별수사본부 김용훈 검사는 내일 오후 1시 검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부검 결과와 그동안의 중간수사결과를 공식 발표한다고 합니다.

박경일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통화한 지 불과 한 시간여가 지났을 뿐인데, 기자회견 사실을 타방송사보다도 먼저 알리기 위해 뛰고 있는 정시영의 순발력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이 느껴졌다.

박경일은 TV를 끄고 안방으로 가 침대에 누웠다. 머릿속으로 빈대 한 마리가 슬슬 기어 나왔다. 기자는 특종을 쫓아다니고, 경찰은 범인을 추적하고, 악덕변호사는 돈을 갈취하고, 단지 그 대상만 다를 뿐이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종사하는 일에 달라붙어 살고 있다. 이것이 빈대와 무엇이 다른가.

박경일은 밀려오는 잠 속에서 범죄라는 거대한 생명체에 달라붙은 한 마리 빈대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 피를 빨아도 그 거대한 생명체는 미동조차 않았다.

― 2018. 12. 10.(월) 연재 제9회 <욕망의 그늘>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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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의 짧은 소통

참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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