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병

                                                  박 종 해 

나는 쓰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바람의 노래를 부른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때
일어서서 오만했던 자신을 돌아본다.

용서해다오, 그러나 내 주위엔 아무도 없다.
다시는 차오를 수 없는 빈 몸의 흐느낌
그것이 바람의 노래다.

쓰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바람의 노래를 부른다. 

＊작가 노트

▲ 박종해 시인

병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빈병이 쓰러져 누워 있을 때 바람이 돌아나가면서 소리를 낸다. 사람이 지식과 재산, 명예 따위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오만해지기 쉽다. 세속의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겸허해질 때 참다운 인간이 된다. 그러므로 빈병처럼 겸허해질 때 참다운 시가 써진다. 사르트르는 세속의 부귀공명에 실패할 때 참다운 예술가가 된다고 했다.

박종해 시인은 1980년『세계의 문학』에 김종길, 유종호 선생 추천으로 등단하였고,
울산문협회장, 울산예총회장, 북구문화원장 역임, 대구동부여고 교장 역임하였다. 이상화시인상, 한국예총예술문화대상 등 다수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고로쇠 나무아래서(민음사)』등 12권이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