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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을 오르다
김 새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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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조원희 |
나무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가을맞이를 하고 있다. 산의 어른처럼 든든하게 서 있는 상수리나무와 산벚나무 사이를 가을바람이 헤집고 다닌다. 튼튼한 칡넝쿨은 탄탄하게 굴참나무를 휘감고 있다. 굴참나무는 아무 불평 없이 우뚝 선 채 상수리를 비 오듯 후드득후드득 떨어트린다.
산벚나무 이파리가 함께 떨어져 상수리를 사뿐히 덮어준다. 산에도 이렇게 상부상조하는 삶이 있다니! 나는 속으로 감탄하면서 산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어디선가 잽싸게 날아온 청설모가 상수리 열매에 눈독을 들인다. 상수리를 살짝 덮고 있는 산벚나무 잎사귀는 행여 열매가 드러날까 봐 바람이 불 때마다 안간힘을 쓴다.
열매를 지켜주려는 잎사귀의 조바심이 모처럼 어릴 때 나를 생각나게 한다. 언니 몰래 물건을 감추어 두고 언니를 골려 먹기도 하고 애를 태우기도 했던 기억에 웃음이 돈다.
산은 계속 이야기를 한다. 아니 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바람을 타는 억새가 옆에 서 있는 하얀 실 같은 포자를 툭툭 친다. 포자식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중으로 제 분신을 날린다. 산도 자기 혼자 힘으로는 새 생명을 얻을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름 모를 포자는 한 많은 여인의 긴 한숨처럼 사라진다. 풀과 나무 바위 등, 산이라고 왜 한이 없겠는가. 그럼에도 서로 등 기대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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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조원희 |
들국화가 피어있다. 쑥부쟁이라고 하던가, 소박한 보랏빛과 흰빛이 서로 어울려 우아하게 얼굴을 들어 올리고 있다. 가을 햇살과 만나는 꽃부리에서 가을 노래가 터진다. 나도 한 곡조 뽑고 싶은 마음이 봇물 터지듯 차오르는데 청솔모가 상수리를 기어이 찾아 물고는 보란 듯이 내 앞을 지나간다. 옛날에 언니가 드디어 내가 감춘 물건을 찾아내어 의기양양해 하던 모습과 똑같다.
언니 생각에 웃음기를 띠며 걸음을 옮기던 중, 나이가 상당히 들어 보인 부부가 떠들썩하게 싸우며 지나간다. 바위라도 굴러 내릴 것 같은 높고 험한 언성이다. 아마 상수리나무에서 상수리가 놀라 한꺼번에 한 바가지쯤은 떨어졌으리라. 집에서 부부끼리 속상한 일을 싸들고 와 산에서 푸는 것이다. 언젠가 부부싸움을 하려면 산으로 간다는 지인이 생각난다.
산이 놀라 잠시 이야기가 멈추고 말았다. 풀잎은 몸을 움츠리고 청솔모도 놀라 멀리 달아나 버린다. 그들 부부가 산의 질서를 깨버린 것이다. 무엇이든 다 받아주고 감싸주고 품어주는 산이라 하더라도 산에서 싸움질하는 것은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다. 나는 그들의 성난 목소리를 잊으려고 애쓰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풀잎을 내려다본다. 몸을 낮춘 풀잎은 내 마음을 아는지 다시 기운을 내 바람을 탄다. 칡넝쿨이 칭칭 감아올렸음에도 여전히 불평이 없는 상수리나무를 바라본다. 사람과의 대비를 잘 보여주는 큰 나무가 더욱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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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조원희 |
사람이 자연을 가까이하면 자연을 닮는다고 한다. 사람도 자연일부이기 때문이리라. 올가을은 멀리 가지 않고도 우리 집 뒷산에서 가을 이야기를 듣는 기쁨을 누리면서 나도 산을 닮고 싶다는 철이 든다. 감히 산을 닮을 수는 없지만 산처럼 서로 어울려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걸 조금 느낀 것이다.
내 속의 불평과 욕심과 또 내가 모른 여러 가지 좋지 않은 것들을 좋은 것으로 바꾸어야겠다는 야무진 생각이 쳐들어온 것이다. 아까 그 부부도 꼭 그러기를 빌면서 다시 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상수리가 툭툭 떨어진다. 걱정스러운 산벚나무 잎사귀도 부지런히 떨어져 상수리를 덮어주고 있다. 언제 뛰어왔는지 청솔모가 내 눈치를 살피며 엿보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낮달이 배시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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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새록 수필가 |
김새록 수필가는 『수필과비평』(2004년) 수필 등단, 『계간문예』(2017년) 시 부문에 등단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 부산문인협회 이사. 계간 『가톨릭문학』편집장, 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수필과비평작가회의 감사. 영호남문인협회 자문위원, 부산수비작가회 회장. 월간『문학도시』기자이다. 부산문학상. 수필과비평문학상. 부산가톨릭문학상. 영호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수필집으로『달빛, 꽃물에 들다』,『변신의 유혹』현대수필가 100인 선집『지구본을 굴리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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