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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뉴스 디카수필> 조원희, 팽나무
김영미안  |  anteaj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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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7  07: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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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조 원 희  

   
 
팽나무에 바람이 머문다. 주렁주렁 매달린 잎들이 일제히 바스락거린다. 그러면 엉거주춤 매달린 덜 여문 파란 열매가 그네를 탄다. 짓궂은 손님 마냥 잊지 않고 찾아와 온몸을 흔들어 놓고 떠나는 바람. 그런 바람이 얄미울 때도 있으련만 이내 쓰다듬고 있다.

청솔수변공원에는 아름드리 잘생긴 나무들과 화초들이 열을 지어 손님을 맞는다. 더 끼어들 수도 없이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한 나무들과 개울가를 수놓은 형형색색의 꽃들은 사람이나 벌과 나비가 자주 찾아와 주었다. 반면에 개울 건너편에는 팽나무 한그루가 외따로 홀로 서 있다. 일부러 심은 것 같지는 않고 자생한 듯했다. 어린 수령(樹齡)탓에 둥치가 작은 나무였지만 왠지 모를 위엄과 의연한 기상이 느껴지곤 했다.

어린 팽나무는 개울 건너편에 외따로 서서 몰아치는 세찬 비바람을 홀로 견디었다. 가지가 꺾이고 널뛰기를 하는, 무시무시한 밤도 당차게 이겨냈다. 겨울 끝자락을 붙잡고 화풀이라도 하듯 무지막지하게 퍼붓던 지난 폭설도 꿋꿋하게 물리치고, 보란 듯이 가지를 하늘 높이 치켜세웠다.

나는 공원의 나무들과는 너무도 다른 운명을 지닌 외로운 팽나무를 바라보며 함께 나이를 먹어갔다. 애처롭던 작은 나무는 횟수를 거듭하면서 펑퍼짐하게 몸을 불려갔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제법 큰 우람한 나무로 자라 주었다.

언제부턴가 청솔수변공원의 주변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도시 철도니 뭐니 하면서 연일 공사가 시시때때로 이어지면서 팽나무에게 위기가 닥쳤다. 언제 베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나는 팽나무의 실낱같은 운명을 애타게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다행히 공사는 팽나무를 비껴갔고, 나는 여느 때처럼 먼발치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소리 없이 웃었다. 

   
 
화창한 어느 봄날이었을 것이다. 눈부시게 하얀 백로 한 마리가 팽나무 아래 개울에서 홀로 먹이를 찾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서너 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더니 요사이는 심심찮게 홀로 하늘을 비행하는 새들을 더러 본다. 환경오염 탓인가. 무자비한 개발 탓인가. 먹이를 구할 터전이 줄어 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세태에 맞춰서 그들에게도 왕따가 존재하나 싶어 사뭇 마음이 쓰렸다.

홀로인 팽나무 아래에서 먹이를 찾는 또 하나의 홀로인 백로. 그들이 자아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뭉클함이 밀려와 눈가를 적셨다. 나무와 새와 개울가를 덮은 푸른 풀들과 쉼 없이 흐르며 알 수 없는 수다를 늘어놓기 좋아하는 개울물들. 그리고 말없이 내려다보는 신비로운 하늘과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하늘 속을 헤집는 구름들. 사람인 내가 몰래 선계(仙堺)를 훔쳐보고 있는 듯 감개무량했다.

짬을 내어 팽나무와 상봉을 했다. 녹두알 크기의 파랗고 작은 열매를 대롱대롱 매단 팽나무는 회색빛 가지를 사방으로 쭉쭉 뻗어내었다. 톱니 달린 타원형 초록 잎을 제법 무성하게 달아놓으니 건너편의 울창한 나무들에 지지 않을 만큼 운치가 있었다. 팽나무는 느닷없이 찾아온 불청객이 그리 밉지 않은가 보다. 작은 잎사귀의 부채질이 분주하다. 살갗에 머무는 시원한 바람, 가슴속까지 상쾌해진다. 나무로서 할 수 있는 곡진한 대접이다. 고맙다.

팽나무 아래에 서니 건너편의 사람들이 내지르는 제법 시끄러운 수다도 잘게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진다. 문득, 사람들이 연일 쏟아내는 무수한 말들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무언의 대화조차 없이 그저 함께 서 있을 뿐인데도 오랜 벗을 대한 듯 마음이 절로 평화롭다.

어젯밤에는 세찬 비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시커멓게 찌푸린 하늘에서는 번개와 천둥까지 동반하고 연신 비를 퍼부었다. 공원의 나무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억수같이 내리는 비와 몰아치는 바람에도 별 탈 없이 건재함을 뽐냈다. 그러나 개울 건너편은 어젯밤의 참상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참히 찢겨져나간 팽나무의 가지들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칼날같이 내리꽂는 빗줄기와 매몰차게 패대기치는 바람.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팽나무는 이번에도 꿋꿋하게 이겨내고, 의연하게 살아남았다. 광야에서 조국을 찾겠노라 다짐하던 선구자의 모습이 저러 했을까. 마음이 짠했다. 

   
 
숱한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도 내 나이를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온갖 세상의 풍진과 삶의 굽이굽이마다 목을 빼며 기다렸던 시련, 가슴이 찢겨나가는 아픔을 씩씩하게 견디어낸 훈장이라고 생각한다. 팽나무가 일궈낸 나이테가 그러했듯이. 그러나 처절한 고독의 시간을 견디며, 모진 풍파를 홀로 맞아야 했던 팽나무와 어찌 비할 수 있으랴!

어딘가에서 홀로 세파를 견디고 있을 또 다른 팽나무를 응원한다. 
 

   
▲ 조원희 작가
조원희 작가는 월간 『문학도시』 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인이자 수필가이자 시낭송가이다. 부산문학인아카데미협회 문예지 「문심」 편집국장이며, 「도덕윤리 시 공모 우수상」,「영·호남예술축제 시낭송부문 대상」외 다수 수상하였다.

 * 부울경뉴스에서는 《디카수필》 원고를 모집합니다. 디카사진과 함께 편집한 원고를 보내주시면 검토를 거쳐 부울경뉴스에 소중하게 게재하겠습니다. 디카동화와 디카소설도 모집합니다. 작품을 보내실 때는 간단한 작가프로필과 함께 연락처(휴대전화), 메일 주소를 기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원고 보낼 곳 sense68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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