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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영

                                               이 숙 경

턱 괴고 생각한다느니 한턱 낸다는 말
그녀에겐 당찮은 슬픔의 관용어였지
씹어서 삼키지 못할 아픔이 우물거렸네

따뜻한 포유류의 둥근 턱이 사라진 뒤
어류의 아가미처럼 변해버린 입 언저리
죄 없는 사람이었다고 조아릴 틈 없었네

살아야 할 신념에 비할 바 없던 이념
오랜 총성 그 환청 무시로 관통하는
무명천 얼굴에 감싼 미안한 역사였네

＊4․3 사건 당시 토벌대 총탄에 턱이 소실되어 평생 무명천으로 턱을 감싸고 살다 가신 할머니 이름

* 작가노트

▲ 이숙경 시인

우리나라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부처의 모습 중에 ‘반가사유상’이나 로뎅의 작품인 ‘생각하는 사람’은 턱을 괴고 깊은 사유에 잠겨 있다. 턱은 생각을 받쳐주는 주춧돌로써 인간이 관념의 세계인 유토피아에 이르도록 하는데 도구적 역할을 한다. 또한 턱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둥뿌리라도 뽑아주고 싶을 만큼 기쁜 일이 있을 때 한턱 낸다는 표현에 자주 동원되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관용어인 이런 표현을 함부로 쓸 수 없는 사람. 평생 씹어서 삼키지 못할 아픔을 우물거리며 살다 슬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사람이 있으니 그녀가 바로 ‘진아영’이다.

살아야 할 신념이 강했던 평범한 사람이기에 이념이 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느닷없이 닥친 4․3 사건으로 말미암아 따뜻하고 둥근 여성성을 상실한 여자는 자신이 죄 없는 사람이었다고 조아릴 말조차 잃어 버렸다.

토벌대가 쏜 총에 소실된 턱을 무명천으로 감싼 채 무시로 관통하는 총성을 환청으로 느껴야 했다. 제대로 섭생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55년의 삶을 약으로 지탱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결국 2004년 90세의 나이로 고달픈 삶을 마감했다.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 역사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아픈 역사의 생채기를 되새기며 이 가을 그녀에게 국화 몇 송이를 올린다.

이숙경 시인은 전북 익산 출생으로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조집으로 『파두』, 『흰 비탈』, 시론집으로 『시스루의 시』를 펴냈다. 2015년 대구시조문학상을 수상했고,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작가이다. 현재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대구시조시인협회 이사, 영언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동초등학교 교사이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