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정보

마린시티호텔 904호실.
열린 창문으로 습기 머금은 해풍이 밀려왔다. 창밖을 바라보고 서 있던 장발사내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창문을 닫았다. 사내가 응접탁자 위에 놓인 검은 서류가방에서 소형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다시 가방을 닫은 사내가 어두운 창밖을 응시한 채로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사내는 오른손에 휴대전화를 들고서 왼손에 든 소형녹음기로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있었다.
 

*

같은 시간, 국회의원 정해현 선거사무실.
여직원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정해현에게 말했다.
― 의원님, 최 보좌관님 전화입니다.
정해현이 전화를 받았다.
― 무슨 일이야?
― 바로 작업에 착수하겠어. 지금 바로 처치해 버리겠어.

정해현은 전화 속 목소리가 최경호의 평소 음성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자식이 그새 또 술을 퍼마시고 횡설수설하고 있구나. 정해현은 성가신 물건을 치우는 것처럼 버럭 소리쳤다.

― 그래, 자식아. 죽여 버려. 반드시 죽여 버려! 그 벌레보다 못한 인간, 그 인간이 나 대신 의원이 되는 것을 어떻게 봐. 내 자리를 뺏어간 그 인간, 당장 없애 버려!

*

정해현과 통화를 마친 사내가 휴대전화와 녹음기를 서류가방에 넣고 가방에서 얇은 수술용 고무장갑을 꺼내 꼈다. 그 위에 다시 하얀 면장갑을 또 포개어 꼈다. 사내가 서류가방을 들고 비상구 계단을 통하여 한 층을 내려가더니 804호실 앞에 멈추었다. 사내가 노크도 없이 804호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에는 TV가 켜진 채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바닥에는 실내가운을 입은 남자가 눈을 부릅뜬 채로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핏기가 완전히 가신 얼굴 우측 귀 아래에서 좌측 쇄골 쪽으로 비스듬하게 기도가 완전히 절단된 목에서 여전히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내가 응접탁자 위에 가방을 올려놓더니 가방 안에서 하얀 수건에 감싼 물건 하나를 꺼냈다. 수건을 풀자 길이 약 20cm 정도 되는 자루가 달린 쇠망치가 나왔다. 사내가 망치를 들고 시신의 머리 옆에 쭈그려 앉았다.

사내가 왼손으로 시신의 머리카락을 잡고 상체를 일으켰다. 사내의 오른손에 들린 쇠망치에서 짧고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났다. 퍽, 망치에 부딪힌 뒤통수에서 두개골이 함몰하며 깨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사내가 시신을 처음 자세대로 다시 반듯하게 눕혔다.

사내가 일어나 피 묻은 쇠망치를 탁자 위에 펼쳐놓은 수건 위에 올려놓았다. 사내가 양복안주머니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 봉투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사내의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 들린 것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 올이었다.

사내가 다시 시신 허리쯤에서 허리를 걸터앉는 자세로 쭈그려 앉았다. 사내가 왼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수술집게처럼 시신의 목 상처 부위에 넣어 절단 부위를 벌렸다. 사내가 오른손에 든 머리카락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좌측 쇄골 쪽 절단 부위 속에 밀어 넣었다.
 

사내가 피 묻은 면장갑을 벗고 새 면장갑을 다시 꼈다. 벗은 면장갑을 쇠망치와 함께 조심스럽게 수건으로 감쌌다. 가방에서 검은 비닐봉지와 테이프를 꺼내 쇠망치를 감싼 수건을 비닐봉지에 넣고 테이프로 감아 단단히 밀봉했다. 그것을 가방에 넣은 사내가 방문을 나섰다.

잠시 후, 1층 중앙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내가 로비를 가로질러 걸어 나갔다.
― 안녕히 가십시오.
호텔 프런트에 있던 젊은 남자직원이 사내에게 인사를 했다. 프런트에는 그 직원 혼자 있었다. 사내가 가방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엄지와 검지 끝을 붙여 만든 동그라미를 무슨 신호처럼 살짝 들어 보였다. 직원이 알았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떡였다.

*

호텔 후문 앞 주차장으로 나온 사내가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차가 서서히 주차장을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으로 나오던 차가 덜컥 멈추고, 부르릉, 공회전을 하며 굉음을 울리더니 갑자기 후진을 하여 주차되어 있는 차 한 대를 들이받았다. 사내가 다시 전진기어를 넣고는 빠른 속도로 주차장 입구로 차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주차장 입구 관리실에 있던 주차경비원이 뛰어나와 입구를 막아섰다. 끼익, 날카로운 급정거 소리를 내며 차가 경비원 앞에서 가까스로 멈춰 섰다. 사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차에서 내렸다.
― 아이구야, 까딱했다간 사람까지 칠 뿐 했네. 이 양반아, 사고를 내고 도망갈라카모 우짜겠단 말이고.
경비원이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사내를 몰아 세웠다.
― 도망가긴 누가 도망간다고 그래요?
사내가 화난 어조로 말했다.

그때 호텔 프런트에 있던 남자직원이 달려 나왔다. 조금 전 사내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신호를 보냈던 청년이었다.
― 무슨 일이에요?
― 아, 글씨, 이 양반이 너무(남의) 차를 박아놓고 도망갈라 안카나. 얼른 경찰 불러라 마.
직원이 가세하자 경비원이 더욱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 아, 그러실 것 없어요.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사내가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직원에게 내밀었다. 직원이 명함을 보고는 이내 공손해졌다.
― 아, 예, 알겠습니다. 어, 이 차도 여기 범퍼가 부서진 것 같은데, 어디 다친 데는 없으세요? 괜찮으시겠어요?
직원이 사고를 낸 차의 뒷범퍼를 살펴보고 말했다.

― 괜찮아요. 자, 경찰을 부를 필요는 없고……. 내 차 번호를 적고 내일 아침 사무실로 연락하면 모두 변상할 테니까, 소란 떨 거 없어요.
― 예, 알겠습니다.
직원이 사내가 준 명함에 차번호를 적으면서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 자, 이걸로 아침 해장이나 하세요.
사내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 경비원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 뭐, 이러실 것까지야.
경비원이 사내가 내미는 지폐를 받으면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직원과 경비원을 무마시킨 사내가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호텔로 이어지는 외진 해안도로를 따라 어둠 속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며 경비원이 직원에게 말했다.
―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데?
― 국회의원 보좌관이라고 되어 있네요.
직원이 사내가 준 명함을 경비원에게 내보이며 말했다.

*

호텔에서 나와 꾸불꾸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을 나아가던 사내의 차가 갓길 공터에 멈췄다. 운전석에 앉은 채로 사내가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 예, 정해현 선거사무실입니다.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나 최경호야. 정해현이 바꿔.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것 같은 변조된 음성이었다. 여직원이 깜짝 놀라 정해현에게 전화를 돌리는 것 같았다. 사내가 호주머니에서 소형녹음기를 꺼내 휴대전화 가까이에 대고 녹음버턴을 눌렀다.

*

― 의원님, 최 보좌관님의 전화입니다.
아직도 겁을 먹고 있는 여직원이 정해현의 방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등받이 의자 팔걸이에 턱을 괴고 앉아 있던 정해현이 전화를 받았다.

― 나, 경호다. 씨팔! 그래, 내가 니 시키는 대로 김인환이 목을 따 놓았다. 이제 속이 시원하냐? 씨팔!

송수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귓속이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악에 받친 목소리였다. 이 자식이 취해도 단단히 취했구나. 지금쯤 수많은 지지자와 보도진에 둘러싸여 있을 김인환을 네 놈이 무슨 재주로 죽인단 말이야. 선거패배로 인하여 모두가 망연자실해 있는 판에 제일 가까운 보좌관이라는 자식이 혼자 밖에 나가 술이나 퍼 마시고 있다니.

정해현은 가슴 속에서 불길이 확 일었다. 곁에 있다면 대뜸 따귀라도 올려붙여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 그래? 정말 김인환의 목줄을 끊었다는 말이지! 정말 수고 하셨소. 최 보좌관님, 정말 장한 일을 했소.
정해현이 빈정대며 쏘아붙이고는 송수화기를 거칠게 꽝 내려놓았다. 

*

정해현과 통화를 끝낸 사내가 녹음기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 첫 번째 정보, 마린시티호텔 804호.

이번에는 술 취한 목소리가 아닌 음울하고 탁하게 울리는 저음이었다. 통화를 마친 사내가 트렁크를 열고 자동차번호판 하나를 꺼냈다. 사내가 빠른 손놀림으로 차에 부착된 번호판을 떼어내고 트렁크에서 꺼낸 다른 번호판을 달았다.

사내가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어두운 해안도로를 따라 나아가던 차는 이내 멀어져 어둠에 묻혀 사라졌다. 차가 지나간 해안도로 아래 바다 수면 위로 졸음에 겨운 별빛이 스러지고 있었다.

― 2018. 10. 29.(월) 연재 제3회 <특종> 에서 계속됩니다.

======================================

* 작가와의 짧은 소통

빛을 품고 오르는
담쟁이처럼
나의 시선은 아무 이유도 없이
늘
희망 쪽으로 향한다
내쉬고 들이쉬는 매 한 숨결마다
생명은 희망이다
또
또
축복이다
― 작가의 졸시 「시선」 전문

― 사진 제공 임재수 작가 ―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곧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축복입니다.
요즈음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임재도 작가는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경남 창녕 길곡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부산 동아대학교 법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코리아타워(상/하)」, 『피터팬, 법정에 서다』 등이 있고, 기타 다수의 중, 단편소설과 시를 발표했다.

 




▲ 한반도 정기를 끊는 108개의 대못을 제거하고
일본 우익들로부터 코리아타워를 지켜라.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관문에서
한국혼韓國魂과 일본정신日本精神의 거대한 충돌이 시작된다.
임재도 작가가 해박한 법률지식을 토대로 그려낸 한국형 법률추리소설의 원형!

 





▲ 오직 가진 것이 많고 적음이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린 시대에 여기, 영혼의 날개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종합병원 VIP실에서 단지 연명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야생의 바다에서 영혼의 날개를 펴고 훨훨 날게 할 것인가.
혼자 남겨진 어린 아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