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김 상 윤

같은 계절 함께 왔으니 같은 바람일거라 생각했는데 인사하는 몸짓이 달라 이팝나무에 온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나선형으로 맴돌고, 벚나무에 온 바람은 나뭇잎들 까딱이며 온 몸 파르르 떠네 눈금 없는 사랑은 어디까지 차올라야 멈추게 되는 걸까

너에게 가도록 하는 것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너에 대한 상상이야 그러니까 너는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나의 모든 것은 하나의 줄기세포가 되지 온 몸을 흐르는 액체가, 신경섬유로 퍼져나가는 전류되어 습관과 운명과 슬픔까지 관통할 거야 삶과 죽음도 동시에 공존할 거야

서로 다른 바람이 겹쳐질 수는 없듯, 개기일식의 해와 달이 사실은 겹쳐진 것이 아니듯, 서로 합일할 수 있는 세계는 어디에도 없기에 상상만이 모든 것일지 모르지 상상 속의 너와 내가 진정한 너와 나일까 우리는 그 어느 것도 확정지을 수 없는데,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 작가 노트

▲ 김상윤 시인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우리 집엔 강아지와 고양이 둘 중 하나는 꼭 함께 살고 있었다. 강아지가 있을 땐 고양이가 없었고 고양이가 있을 땐 강아지가 없었던 것 같다. 식구들 모두 고양이에게 피부병이 옮아서 가렵고 물집이 생기고 잘 안 나아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도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모두들 고양이 그림이 나오는 공책, 옷, 지갑, 가방 사기를 좋아했다. 그러니‘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양자물리를 소개한 책은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고교 때 물리교과서에서 불확정성의 원리를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그래, 바로 이거야’하며 무척 반가워했던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 여고 시절 내겐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수학의 풀이마저도 왜 꼭 그렇게 풀이를 해야 하는지 의구심을 품고 있었기에‘~은 확실하지 않다’라는 그 말이 참 마음에 와 닿았었다. 그리고 수십 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또 다른 나의 상황과 생각들이 여전히 불확실한 가운데 있었기에, 상자 속의 고양이가 살아 있을지 죽어 있을지 상자를 열기까지는 알 수가 없고, 그러기에 그 전까지는 두 가지의 상태가 중첩된다는, 슈뢰딩거의 사고실험은 내게 철학과 문학의 옷을 입고 한 편의 시로 다가왔다.
우리 삶은 언제나 불확실성 속에 유지되고 있다. 항상 선택의 연속이고 결정의 연결이며, 미래는 확실히 알 수가 없어 다만 추측하고 기대할 뿐이다. 마음을 확정한다는 것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쩌면 상상 속에서만‘확정’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김상윤 시인은 영월에서 태어나 구룡포에서 소녀시절의 한 때를 보냈다. 2002년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한 고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대구 시인협회 회원이다. 시집으로는『그대 손은 따스하다』(2003),『슈뢰딩거의 고양이』(2012)가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