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창가에서

                                                 김 종 명

억수 같은 빗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창문으로 간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흩날리는 비는 어디론가 갈 곳을 정하여 가는 것 같다. 어디로 가는 걸까? 비가 점점 더 세차게 오니 창에 묻어나는 빗방울이 갈 곳이 이 곳인 양 철썩 달라붙었다가 아쉬운 듯 흘러내림에 그 자취를 애써 남기지만, 그 빈자리에 또 다른 빗방울이 자리를 차지한다.

바깥에는 여전히 세찬 비바람이 내리고 있는데 창가의 유연함은 여전하다. 어떨 땐 유유자적하다. 묻었다가 흘러내리고, 흘러내린 그 자리에 또 묻고.

6월의 어느 오후, 세찬 비바람에 일상을 접고 하염없이 바깥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하다. 그런데 시원한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그리움은 무엇일까?

뻣뻣한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쳐다보니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여기저기 색깔을 달리한 구름들이 제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더 많이 보내리라 작정한 듯 뿜어내고 있다. 한 방울 한 방울이 줄기가 되어 내려오다가 창가에 묻으니 한 방울 한 방울이 되어 버린다. 묻었다가 흘러내리고, 묻었다가 흘러내리는 그 모습이 귀엽다.

무엇인가 할 것처럼 잔뜩 머금었고, 확실한 곳을 향하여 가듯 방향을 틀었지만 제각각 자유롭다.

6월의 어느 오후에 비 내리는 창가에서 세상을 본다. 예쁘고 아름다운 꽃이 빗방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흐느적거린다. 연약한 듯 흔들리지만 오히려 비의 무게를 지탱하는 지혜로움이 있다. 비는 꽃에 자리를 잡고 싶지만, 자취를 남기고 싶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성능 좋은 스마트폰 사진기로 한참을 셔터를 눌러보지만 여전하다. 흔들거림은 생존의 모습임을 새롭게 발견한다.

모든 만물이 하늘의 빗줄기를 이기지 못해 흔들거린다. 살기 위한 몸부림인가? 즐거움과 기쁨의 표현인가? 외로움의 아우성인가? 무심한 비는 여전하다.

정신을 차려본다. 내 눈이 어디를 보고 있었는가를 눈치 챈다. 여전히 창가에 묻은 빗방울은 반복하고 있다.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묻었다가 떨어지는 빗방울, 자기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예쁘다. 하늘의 어두컴컴한 구름도 굵직한 빗방울도 두렵지 않다. 가볍게 다가와 창에 묻어 그 자태를 드러냄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도 비가 세차게 내린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잔뜩 찌푸림도 가볍게 여겨진다. 아, 행복하다. 왠지 모를 충만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오늘도 이같이 지나감을 생각해본다. 내일도 이와 같으리라.

주르륵 흐르는 자취 없는 삶인 것 같지만 흔적은 있으며 방향은 있다. ◆

* 작가노트

▲ 김종명 작가

김종명 작가는 2017년 『경남기독문인회』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하여 시와 수필을 쓰고 있으며, 현재 양산영광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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