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홍 진 기

엊저녁 산등에다 실침을 꽂더니만

이 아침 누가 와서
홑창을 두드리네

볕쬐기
몸 이는 풀잎
잔가지 눈트는 소리

옥매화 꽃잎 벌어 눈이 맑은 해는 떠서

산수유 실눈썹에
살바람 스치는 소리

두견화
속가슴 살이
참다가 또 터지겠네

* 작가 노트

▲ 홍진기 시인

겨울이 깊어지면 봄이야 오겠지만, 우리는 그 봄을 예사롭게, 무관심으로 보아 흘려보내지나 않는가. 자신에게 한번쯤은 물어봄직한 말이다.
계절만 어디 봄이 있던가, 살아 숨 쉬는 것 치고 변화에 예외인 것 내사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사람인들 그 변화에서 한 치 반 치 벗어날 수 있겠는가, 없다는 이 말을 누가 나만의 변설이라 밀어붙여도 나는 그 생각을 접을 수가 없구나. 변하지 않기를 소망할 수야 있겠지만 이룰 수는 없는 허망이라는 내 믿음 또한 굽힐 생각도 없으니 …….
내게도 한때는 봄이 있었다. 아름답고 꿈이 많았던 향그러운 봄이었다. 그런 봄이 저만치 아주 멀리 떠나있으니 더욱 그립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오늘이다. 멀어진 시간에 생각이 자꾸 애착으로, 마음 줄기가 휘감기고 있는 이 현실을 어쩌리.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고 그래서 추억은 눈물도 꽃이 된다는 시도 한 편 쓴 적이 있다. 돌아보면 언제나 그립고 사랑옵기만 한 내 생의 봄이다. 그런 추억을 우리는 가슴 속에 누구나 가득 가득 담고 살아가면서 그 귀하고 소중한 보물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보듬어 가꾸며 다듬기에 소홀하고 무관심하지나 않는지. 삶에 부대끼며 바쁜 탓에 귀한 추억을 흘려버리고 있다면 이는 분명 애달픔일 터다. 내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천주산 발치에 내 삶터가 있다. 사시로, 짬짬이 그 천주산 자락을 나는 찾는다. 걷기도 하고 앉아 놀기도 하는 짓을 수십 년을 해오고 있다. 이름 모를 풀과 나무로부터 기는 벌레 나는 새가 산에 있기에다. 산에 있어 언제나 나를 반겨준다. 그들은 나의 위로요 벗이며 내게서 멀리 떠나가는 계절(봄)의 빈 자리를 불평 없이 메꿔주기도, 대신해주기도 하는 고맙고 은혜로운 인생 길동무가 되어있다. 어쩌면 내가 주는 마음과 눈빛을 그들은 읽었으리라. 내 체온을 그들은 감지했으리라. 자연과 사람과의 가치로운 교감, 말보다 진하게 주고받는, 꾸밈도 가식도 없고 티 없고 때 묻지 않은 순수 그 자체를 나누는 사랑, 그 사랑이 드디어 꽃이 되어 봄날의 보배로운 시詩의 눈으로 내게 크나큰 선물이 되어…….
봄비가 은침이 되고 실침이 되어 내방의 작은 홑창을 두드리기도, 매화의 향그런 눈이 되어 나를 반기기도, 실눈썹 산수유 꽃이 되어 두견화의 고 서럽도록 예쁜 꽃눈을 틔워내어 온통 이 산에 꽃방석을 펼쳐 깔아놓으니, 내 봄을 내사 게서 찾아 벗할 수밖에 더는 없어서 내 졸품에 담아보았다.

* 小井 홍진기

경남 함안 태생.『현대문학』자유시, 『시조문학』시조 각 천료. 『낙엽을 쓸며』(100인선집), 『무늬』, 『거울』, 『빈 잔』등 8집 냄. 조연현문학상, 경남문학상, 경남예술인상 외 받음. 한국문협, 국제펜한국본부, 한국시조시협,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등 자문위원. 한국현대시협 고문.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