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빗방울

                                                허 형 만

빗방울이 무겁다면 저렇게 매달릴 수 없지
가벼워야 무거움을 뿌리치고
무거움 속내의 처절함도 훌훌 털고
저렇게 매달릴 수 있지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나뭇잎에 매달리고
그래도 매달릴 곳 없으면 허공에라도 매달리지
이 몸도 수만리 마음 밖에서
터지는 우레 소리에 매달렸으므로
앉아서 매달리고 서서 매달리고
무거운 무게만큼 쉴 수 없었던 한 생애가 아득하지
빗방울이 무겁다면 저렇게 문장이 될 수 없지
그래서 빗방울은 아득히 사무치는 문장이지

*작가 노트

▲ 허형만 시인

우주의 모든 숨 쉬는 것은 다 하나의 문장이다. 시인이 쓰는 언어는 곧 우주가 불러주는 말에 다름 아니니 한 편의 완성된 시는 시인의 작품이 아니라 우주의 작품일 터. 빗방울이 나무에 매달리고,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허공에 매달리며 나에게 들려주는 소리들은 수만리 마음 밖에서 온갖 것들에 매달렸던 내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침묵의 소리였음을 종심의 나이에야 깨달았으니 참 부끄러울 따름이다.

허형만 시인은『월간문학』으로 등단하여 영랑시문학상 외 다수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비 잠시 그친 뒤』외 16권, 일본어시집『耳を葬る』, 중국어시집『許炯万詩賞析』. 활판시선집『그늘』이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