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빌』과 브람스

                                                         임 재 도

싹둑, 싹둑, 육절기는 좌우 횡으로 반복운동하며 언 살을 얇게 벤다

육절기에서 영화 『킬빌』*의 주제 음악이 들린다고 하자 여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뇨! 제겐 브람스의 자장가로 들리는데요 20년 맛집 식당의 비결을 그때 알았다

베지 않고 마음 손으로 쓰다듬는 것,

그곳에는 항상 브람스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 『킬빌』 ; 쿠엔틴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잔혹 복수극 영화이다. 영화 전편에 걸쳐 칼과 살과 피가 난무한다.

* 작가 노트

▲ 임재도 작가

아내는 식당을 운영한다. 처음 아내가 식당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한사코 만류했다. 경제적으로 항상 쪼들리는 가장 탓인 것 같아 자격지심마저 들었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베품 중에 가장 근본적인 베품이 먹거리를 서로 나누는 것이라고.

그렇게 시작한 아내의 식당이 벌써 15년을 지나 20년 가까이로 접어들었다. 김해 장유 신도시의 생성과 더불어 시작한 아내의 식당 <천지가>는 이제 어엿한 지역명소가 되었다. 인터넷을 타고 맛집으로 소문이 나 먼 외지 사람들도 자주 찾는다. 얼마 전에는 초등학생 딸과 어머니가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제일 먼저 찾아왔다면서 말했다. 딸을 임신했을 때 입덧이 너무 심해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는데, 아내의 식당 소고기 국밥만은 맛있게 먹을 수 있어 딸을 건강하게 순산할 수 있었다고. 출산 직후 남편의 직장 때문에 미국으로 가서 10년 동안 살면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이 천지가 국밥이었는데, 식당이 그때 모습 그대로고, 맛도 그대로라서 너무 고맙다고.

아내의 식당에서 싹둑, 싹둑, 피처럼 붉은 냉동육을 얇게 썰어내는 육절기 소리를 들으면서 얼핏 영화 『킬빌』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 소리에서 브람스의 자장가를 듣고 있었다. 맛집 성공비결의 전제는 물론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 맛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정신에너지가 아닐까. 자장가를 부르는 어머니의 사랑손길로 음식을 쓰다듬어 만드는 것, 그 어떤 부정적인 생각도 강한 긍정에너지로 바꿔버리는 아내의 평소 생활습관이 20년 맛집 성공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하물며 한 끼 식사가 누군가의 추억이 되고, 누군가의 생명의 일부가 된다면, 그것이 한편의 시와 무엇이 다를까. 거칠어진 아내의 손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또 미안하다.

임재도는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장편소설 『피터 팬, 법정에 서다』(2014년), 『코리아타워(상/하)』(20115년) 등을 펴냈고, 기타 다수의 중, 단편소설과 시를 발표했다. 2017년 <영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신작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신작시를 작가가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발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