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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첫 정재 레퍼토리 정기공연
“1400년 무동정재 역사의 맥을 잇는 아름다운 춤의 향연 ”
2012년 06월 15일 (금) 19:58:43 마스터 -

□ 남성춤꾼들이 선보이는 ‘가인전목단’의 색다른 매력속으로!

정재는 ‘재예(才藝)를 바친다’는 뜻으로 궁중무용을 말한다. 궁중잔치에서 추었던 춤으로, 고상하고 우아하면서 무게감이 있다. 예를 갖춘 동작과 절도 있으면서도 화려한 춤사위가 특징이다. 궁중에서 추던 춤인 만큼 옷차림, 치장, 의물(의장) 또한 화려하다. 이러한 춤의 향연이 오는 6월 22일(금) 오후 7시30분 국립부산국악원 대극장(연악당)에서 펼쳐진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제4회 정기공연으로 마련하는『순조기축진찬의궤(己丑進饌儀軌)의 정재』“효명세자의 꿈”은 부산 초연 정재 레퍼토리 공연으로『순조기축진찬의궤』에 수록된 정재 중 전승되고 있는 정재를 중심으로 여령정재와 무동정재의 옛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공연구성은외연의 무동(남자)정재내연의 여령(여자)정재를 함께 올린다. 또 효명세자가 등장하여 의례형식으로 공연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을 고하며 공연을 연다. 무동정재에는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었으며 큰 북을 가운데 두고 원형으로 둘러서서 북을 치거나 주변을 돌면서 춤추는 ‘무고’, 처용의 탈을 쓰고 악귀를 쫓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처용무’, 꽃 중의 왕이라고 하는 모란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 가인전목단’이 추어지고, 여령정재에는 이름 그대로 다섯 마리의 양을 타고 내려온 신선이 군왕을 송축하는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오양선’, 봄날 버드나무 가지위에 앉아 노래하는 작고 귀여운 꾀꼬리를 표현한 춘앵전’, 신라시대 민중속에서 발생되어 다듬어지고 성장하여 궁중으로 전해진 검기무’, 궁중 큰 잔치가 있을 때마다 연행되었으며 군무로서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정재 중 가장 화려한 선유락’ 등 총 7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주목해 볼만한 점은 국립국악원 개원이후 처음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모란꽃을 꺾는다’는 내용의 ‘가인전목단’을 무동(남자)의 춤사위로 초연한다. 이는 기록에 남아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음악기관인 신라시대 음성서(音聲署)에서 출발하여 오늘날까지 1400년 무동정재 역사의 맥을 잇는 매우 뜻 깊은 무대이다. 또, 오양선, 무고, 선유락 등 새로운 정재 작품 레퍼토리 개발을 통해 지역민들의 오랜 갈증을 해소하게끔 물꼬를 틔우는 첫걸음이다.

국립부산국악원 박영도 원장은 “지역민들에게 생경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정재를 심도 있게 접근, 새로운 관심으로 환기하여 궁중춤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자 기획하였으며, 지역 춤의 활성화를 위해 춤을 사랑했던 효명세자의 춤에 대한 창작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번 공연은 다양한 한국춤 레퍼토리 개발을 통해 춤 특성화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당대의 역사적 인물조명을 통해 정재(궁중춤)의 역사와 가치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여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를 높이며 활성화에 기어코자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국립부산국악원 정재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여 한국문화의 정수인 “예(藝)”와 “효(孝)”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장중한 음악과 화려한 춤이 어우러진 조선시대 궁중예술의 격조와 감동이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연주단,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무용학과 학생, 객원 등 총 80여명 출연진의 연주와 몸짓으로 펼쳐진다. 악․가․무 일체에 화려한 궁중복식과 국립부산국악원만의 스펙터클한 회전무대, 슬라이드무대 전환까지 보고 듣고 느끼는 공감각의 화려한 세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예술감독 엄옥자선생의 지도아래 정재교육은 심숙경선생(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무자)이 도왔으며, 간결하고도 품격있는 연출에는 김경화선생이 맡았으며, 아울러 공연감상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공연의 의미를 함축적인 글로 엮는데 강은교 시인이 함께한다.

공연관람은 취학아동 이상으로 전석 8,000원이며, 국립부산국악원 홈페이지 또는 전화예약 가능하다. 그리고 만22세 이하 청소년, 만65세 이상 경로우대(동반1인), 장애인(동반2인), 유공자(동반1인), 생활보호대상자, 병역명문가 및 다자녀가정은 50%의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국내거주 외국인, 20인 이상 단체관람은 20%할인혜택이 적용된다.

[부연설명]

“천년의 맥을 이어온 왕조 예술의 꽃, 정재(呈才)”

정재(呈才)는 ‘높은 분께 재주를 보여드린다’는 의미로, 고대 봉건왕조의 중앙집권제도 아래서 연행된 궁중무용이다. 형식미와 절제미가 뛰어난 정재는 일무와 함께 궁중무용의 양대 축을 이루며 왕조 예술의 꽃으로 피어났다. 천년을 이어온 우리나라 정재의 역사는 삼국시대 향악정재의 발생기, 고려시대 당악정재의 도입기, 조선초기 자주적 정재 문화의 정립기, 조선후기 정재 레파토리 확립기의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재의 맥은 현전하는 처용무, 검기무 등 삼국시대부터 전래되는 우리의 향악정재(鄕樂呈才)에서 먼저 찾아볼 수 있다. 향악정재는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발전하여 궁중무용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고려시대에는 중국 송나라로부터 형식미 넘치는 당악정재(唐樂呈才)가 유입됨으로써 향악정재와 당악정재가 양립하는 우리나라 궁중 정재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조선왕조의 개국과 더불어 정재는 새로운 발전기를 맞이하였다. 고려와 변별되는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개국한 조선은 새로운 문화의 정립이 필요했고, 이에 발맞추어 궁중정재도 새로운 발전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조선초기에 창제된 정재 양상은 몇 가지 특징을 나타낸다. 먼저, 정치적 도구로서의 이념화된 춤으로서의 특징이다. 조선 개국 직후에 정재는 태조 이성계와 개국공신들이 그들의 역성혁명을 정당화·합리화하고, 중국의 유교 예악관념을 수용하여 봉건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치적 목적의 왕조예술로 활용되었다. 금척(金尺)과 수보록(受寶籙)은 이성계가 천명(天命)을 받아 왕이 될 것이라는 도참설(圖讖說)을 반영하여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나타내었고, 근천정, 수명명, 하황은, 하성명, 성택 등은 모두 명나라에 대한 사대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두번째는 우리 정서를 반영하여 문화적 자주 정신을 표방한 새로운 정재 양식이 창출된 점이다. 세종조에 창제된 봉래의(鳳來儀), 정대업(定大業), 보태평(保太平)은 그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기존 정재를 뛰어넘는 독창적 예술성으로 조선왕조의 문화적 자긍심과 권위를 높이고 있다.

조선후기는 기존의 전승되는 작품 외에 약 20여종의 정재가 새롭게 창작된 ‘정재의 황금기’이다. 순조(1790~1834)의 아들인 효명세자(추존익종:1809~1830)는 19세에 대리청정(代理聽政)을 맡아 3년간 의욕적으로 국정을 주도하는 가운데 부모인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해 매년 행한 궁중 연향을 베풀어 정재의 황금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대리청정 이듬해인 1828년(戊子:순조28)에 어머니 순원왕후의 40세를 경축하는 진작례를 베풀면서 약 20여종의 새로운 정재가 창제되었는데, 이번에 공연되는 ‘춘앵전’과 ‘가인전목단’ 또한 이 시기에 새롭게 창제된 것이다.

대리청정 마지막 해인 1829년(己丑:순조29) 명정전(明政殿)과 자경전(慈慶殿)에서 순조의 40세 겸 즉위30년 축하 진찬례(進饌禮)를 베풀었다. 이때 내.외연의 6차례 잔치에서는 이전보다 더 규모 있고 다양한 정재가 추어졌다. 이렇듯 효명세자가 매년 궁중 연향을 베푼 것은 그의 효심의 발로이기도 하나 내면적으로는 안동김씨 외척세력을 견제하는 한편, 실추된 왕실의 권위회복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담긴 현실적 의지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초기 정재가 새로운 왕조 건국에 따른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부합된 목적성 경향이 짙은 것과 달리 이 시기 정재는 대부분 순수한 악무예술로서의 서정성과 예술적 표현을 중시한 향악정재가 창제되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될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선후기 순조 기축년(기축:1829) 진찬례에 연향된 정재를 무대에 올린다. 명정전 외연(外宴)에 추어졌던 처용무, 무고, 가인전목단은 남자 무동정재(舞童呈才), 자경전 내연(內宴)에 연행되었던 오양선, 검기무, 춘앵전, 선유락은 여령정재(女伶呈才)로 그 옛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더 이상 왕실의 위엄도 궁중의 연향도 존재하지 않지만 왕조 예술의 꽃, 정재는 아직도 우리 곁에서 천년의 맥을 이어오며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공연내용 및 구성

순서

작 품 명

내 용

비고

1

서설

기축년에 성상(聖上)의 보령(寶齡) 또한 40에 올랐으므로, 2월 계축(癸丑)에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명정전(明政殿)에서 진찬(進饌)하며 구작례(九爵禮)를 행하고 3일 뒤에 또 자경전(慈慶殿)에서 소작(小酌)을 올렸으며 이어서 내연(內宴)을 행하였다.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은 치사를 올린다.

“교화를 베푼 지 30년이 되었고, 수는 4순(四旬)을 더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오래오래 뻗어 나가서 1만 8천 년 동안 사소서. 큰 술잔으로 유하주(流霞酒)를 잔질하니 남극성의 빛이 면류관에 빛납니다. 한 전당(殿堂)에 기쁨이 넘치니 온 나라가 함께 즐거워합니다.” 하였다.

처용무

처용무(處容舞)는 처용의 탈을 쓰고 추는 궁중무용으로 악귀를 쫓고 궁중 연회 때 평화를 기원하거나 새해 전날 행운을 빌기 위해 연행되었다. 춤의 발생에는 여러 가지 설화가 있는데『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한 사람이 검은 도포를 입고 사모를 쓰고 추었다고 되어 있다. 또한 『목은집(牧隱集)』에는 고려 초에는 국가적인 행사인 팔관회와 연등회에서 함께 연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전해진 처용무는 조선 세종때에 이르러 동․서․남․북․중앙을 뜻하는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로 크게 발전되었고, 성종때에는 더욱 발전하여 학무, 연화대무와 합설해서 궁중나례에서 연희하기에 이르렀다. 춤사위는 무용수의 몸의 자세와 태도가 정대하고 당당하여 위엄이 풍기고, 걸음걸이는 꿋꿋하고 활발하여 쾌활한 남자의 기상이 도도하다. 그리고 팔동작에서는 활기와 호탕한 기운이 넘쳐흐른다. 너울대는 한삼은 공중에서 표출되어 공간에 형성되는 모습은 청정하고 간결한 느낌이 든다. 반주로 사용되는 음악은 수제천, 관악영산회상, 세령산, 가락덜이, 삼현도드리, 염불도드리 등으로 연주하며 창사는 전반부에는 가곡 중 언락, 후반부에는 우편을 부른다. 처용무는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2

춘앵전

춘앵전(春鶯囀)은 봄날 버드나무 가지위에 앉아 노래하는 작고 귀여운 꾀꼬리를 춤으로 표현한 궁중무용으로, 조선 순조(純祖) 때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孝明世子)가 모친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의 보령(寶齡)40세 탄신(誕辰)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전한다. 꾀꼬리 색상인 노란색 의상을 입고 붉은 띠를 허리에 두른 무용수가 꽃무늬를 수놓은 화문석위에서 혼자 추는 춤이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꾀고리를 상징하는 앵삼(鶯衫)을 입고 양손목에는 한삼(汗衫)을 끼고 춤을 춘다. 꾀꼬리의 움직임을 크기가 작은 화문석의 움직임이 제한된 공간에 어울리도록 크지않은 춤사위로 우아하게 표현하였다. 음악이 발라지면 무용수가 두 팔을 뒤로 여미며 조용히 미소 짓는 ‘화전태(花前態)’라는 동작이 가장 아름다운 표현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춤추는 중간에 한삼으로 입을 가리고 노래를 하는데 우아한 춤사위에 임금의 마음도 매료된다는 내용이다.

3

무고

큰 북의 일종인 무고(舞鼓) 하나를 가운데 두고 무동들이 원형으로 둘러서서 북을 치거나 주변을 돌면서 춤을 추는 궁중무용으로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어 왔다. 8명이 춤을 추는데, 4명은 양손에 북채를 들고 시종 북을 애워싸며 북을 어르거나 두드리고, 나머지 4명은 꽃방망이를 들고 원 밖에서 방위(方位)를 짜고 돌거나 춤을 춘다. 그 중에서 북을 치는 모습은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모습에, 그리고 꽃을 든 모습은 나비가 꽃 주변을 맴도는 모습에 비유되며 우아함과 씩씩함이 골고루 담겨있는 매우 품위 있는 춤이다. 춤의 구성은 반주음악인 삼현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에 맞춰 ‘느리게-빠르게-아주빠르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잦아지는 북소리와 함께 춤의 빠르기가 고조되었을 때 끝을 맺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무대는 4명의 무동(남성) 춤사위로 감상할 수 있다.

4

상주

나는 이번 경사의 예절에 대하여 스스로 성심 성의를 다하려고 하였다. 비록 한 가지의 절차나 한 가지의 의식이라도 반드시 몸소 보살피려고 하였다. 그리고 음악과 정재는 전악 김창하가 도왔다. 김창하는 대대로 음악을 전공하던 음악가 집안의 자손으로, 정재의 안목이 뛰어나다. 나는 효성을 다하여 부왕을 즐겁게 하고자 김창하에게 명하여 새로운 정재를 만들게 하였으니, 모두 23개이다.

궁궐 동산의 따스한 바람은 푸른 발 스치고

곤룡포 깊은 팔짱 용문이 수 놓였네

대궐문의 채색의장에 상서로운 아침해가 비치니

봉래의 대궐 신선의 조정엔 상서로운 구름이 열렸네

대궐의 요임금 술잔은 북두를 기울인 듯 하고

옥루의 순임금 음악은 남훈전을 울리네

해동의 오늘날 승평한 세상에

춘추 만세토록 성군을 받들리라

1828년〈진작의궤 進爵儀軌〉와 1829년〈진찬의궤〉에 전한다. 1848년〈진찬의궤〉에 기록되어 있는 향악정재를 살펴보면 가인전목단(佳人煎牧丹)·경풍도(慶豊圖)·고구려무·만수무(萬壽舞)·망선문(望仙門)·무산향(舞山香)·박접무(撲蝶舞)·보상무(寶相舞)·사선무(四仙舞)·영지무(影池舞)·첩승무(疊勝舞)·춘광호(春光好)·춘태옥촉(春台玉燭)·춘앵전(春鶯轉)·심향춘(沈香春)·첨수무(尖袖舞)·향령무(響鈴舞)·헌천화(獻天花) 등이 있고, 당악정재로는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제수창(帝壽昌)·최화무(崔花舞) 등이 있다.

오양선

오양선은 중국 당나라 때 이군옥의 창포간 시에 다섯 신선이 양(羊)을 타고 내려왔다고 하여 오양선이란 춤 이름이 유래했다. 이름 그대로 다섯 마리의 양을 타고 내려온 신선이 군왕을 송축하는 뜻의 노래를 부르고 춤춘다.

5

검기무

검기무는 관창이 전사한 서기 660년 이후 신라사람들이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가면을 만들어 쓰고 춤을 춘데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당시에 마을제사와 대동굿에서 무당에 의해 관창의 영혼을 위로하고 넋을 풀어주었을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처럼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민중속에서 발생되어 다듬어지고 성장되어 전해진 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원을 둔 검기무는 신라 천년을 지나 고려말까지도 가면을 쓰고 추었고, 처용무와 같이 출연한 기록이 있다. 1910년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후 민간으로 전락되어 각 지방에 분포되었던 것이 거의 소멸되어 없어졌으나 진주지방의 검무가 궁중의 원형이 가장 충실하게 전승되어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6

가인전목단

가인전목단은 ‘아름다운 사람이 모란꽃을 꺾는다’라는 뜻을 가진 궁중무용이다. 꽃 중의 왕이라고 하는 모란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다. 순조 28년(1828) 효명세자가 궁중악사 김창하와 더불어 창작한 작품으로 활짝 핀 모란꽃을 꽂은 화준반(花罇盤)을 가운데 놓고 무인이 춤을 추며 꽃을 한 가지씩 뽑아 들고 전진 후퇴하며 주위를 돌아가며 추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춤이다. 이번 무대는 남성무용수의 춤사위로 감상할 수 있다.

7

선유락

선유락은 무용수들이 화려하게 채색된 배(彩船)를 끌고 나와 집사(執事)의 호령에 따라 채선의 밧줄을 잡고 겹으로 둘러서서 어부사(漁父詞)를 부르며 추는 향악정재(鄕樂呈才)이다. 춤의 유래는 신라시대부터로 보고 있으나 실제로 영조 이후로 전승되어 온 기록이 전하고, 무보(舞譜)는 고종 30년 계사년(1893)『궁중정재무도홀기』에 전한다. 선유락은 궁중에 큰 잔치가 있을 때마다 연행되었으며 군무로서의 화려함이 단연 돋보인다. 특이할 점은 도입부분에 군대와 관련된 관리복식을 차려입은 2명의 집사가 출연하여 반주와 무용의 전체적인 진행을 맡아서 호령을 지시한다. 반주음악도 다른 정재에서는 볼 수 없는 편성으로 취타대가 나와 웅장하게 춤의 시작을 알린다. 처음에 징을 세 번 쳐서 시작하고, 배가 떠나면 ‘어부사’를 노래하면서 본격적인 춤이 시작된다. 배의 앞뒤로는 각각 두명의 동기가 배의 돛과 닻을 잡고, 배 뒤에는 좌우 여령이 서서 뱃줄을 잡고 춤을 추며, 그 주위를 둘러서서 집사기의 호령에 맞춰 춤을 추게 된다. 장중한 규모와 화려한 의상과 춤동작으로 궁중정재 중 가장 화려한 춤이다.

부울경뉴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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